조선시대 사람들은 말했다, 이 강 물맛이 최고라고

[속리산에서 탄금대까지 달래강 인문학 기행 ①] 달래강 123 프로젝트

등록 2018.06.22 08:21수정 2018.06.2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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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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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 ⓒ 이상기


4월 14일 달래강을 사랑하는 사람들 30여명이 속리산 정이품송 앞에 모였다. 달래강 123 인문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 가로수길에 벚꽃이 떨어진다. 올해는 봄비가 잦고 기온이 낮아선지 벚꽃이 늦게 피었다. 정이품송도 비를 맞은 채 서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가지가 부러지고 수세가 많이 약해졌지만, 속리산과 법주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손짓을 한다.

운무로 속리산은 보이지도 않는다. 비를 피해 회원들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 회의를 진행한다. 물길 지도를 통해 달래강 상류를 이해하는 게 첫 번째 일이고, 달래강의 역사와 지리를 문헌을 통해 확인하는 게 두 번째 일이다. 세 번째는 달래강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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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암 석간수 ⓒ 이상기


주최측에서 두 개의 지도를 준비했다. 하나는 달래강 발원지고, 다른 하나는 달래강 보은구간이다. 달래강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천왕봉 서쪽 상고암(해발 940m) 석간수에서 발원한다는 게 그동안 정설이었다. 그런데 천왕봉 아래 천왕샘(해발 1020m)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2008년 '달래강의 숨결' 탐사팀에 의해서다. 6번의 탐사를 거쳐 천왕봉 아래 봉수대터 샘물을 달래강의 발원지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나온 <우리 가람 길라잡이> 지도책 "우리 강을 찾아서"에 보면 달래강의 유로시점을 청법대와 신선대 서쪽 아래로 보고 있다. 이 물은 금강골이라 불리는 골짜기를 따라 경업대, 금강골휴게소, 비로산장, 세심정으로 흘러 내려간다. 그리고 달래강의 하천연장 기점은 법주사 위 상수도수원지로 잡고 있다. 기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하천의 길이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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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천왕봉 ⓒ 이상기


하천의 발원지 역시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연지리적으로는 하천의 유로 종점에서 거리가 가장 먼 지점이다. 그러나 인문지리적으로는 인간이 사용하는 샘이 발원지가 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연지리적으로 속리산의 발원지는 천왕봉 또는 신선대 아래가 된다. 그에 비해 인문지리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솟아나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상고암이 될 것이다.

달래강의 어원에 대한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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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문장대 ⓒ 이상기


달래강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는 박종석 서원대학교 객원교수가 발제를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나오는 속리산과 달천 자료를 인용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보은현 '산천'조 자료에 따르면, 달래강의 발원지는 문장대가 된다.

"속리산(俗離山): 산마루에 문장대(文藏臺)가 있는데, 층이 쌓인 것이 천연으로 이루어져 높게 공중에 솟았고, 그 높이가 몇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 넓이는 사람 3천 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구덩이가 가마솥만한 것이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불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半空)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錦江)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達川)이 되어 금천(金遷)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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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속리산 ⓒ 이상기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 '산천'조에 따르면 속리산은 달천의 상류다. 물이 돌에서 나오는 까닭에 물맛이 달고 차다. 색은 맑고 푸르다고 했다.

"감여가(堪輿家)는 속리산을 돌 화성(火星)이라고 한다. 그러나 돌의 형세가 높고 크며, 겹쳐진 봉우리의 뾰족한 돌 끝이 다보록하게 모여서 처음 피는 연꽃 같고, 또 횃불을 멀리 벌여 세운 것 같다. 산 밑은 모두 돌로 된 골이 깊게 감싸고 돌아서 여덟 굽이 아홉 돌림이라는 이름이 있다. 산이 이미 빼어난 돌이고, 샘물이 돌에서 나오는 까닭에 물맛(水味)이 맑고 차갑다(淸冽). 색은 달고 푸르러(泔碧) 가히 사랑할 만하다. 충주 달천의 상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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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지역의 달천 ⓒ 이상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충주목 '산천'조 자료에 따르면, 달천은 속리산 삼파수 중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달천 물맛을 최고로 여겼다고 한다. 이 세 자료를 종합하면 달천 물은 맑고 달아 조선 제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달천(達川): 덕천(德川) 또는 달천(獺川)이라 부른다. 주 서쪽 8리에 있다. 근원이 보은현(報恩縣) 속리산(俗離山) 꼭대기에서 나와서 그 물이 세 갈래로 나뉘는데, 그 하나가 서쪽으로 흘러 달천이 되었다. 배를 띄우고 겨울에는 다리를 놓는다. 본조(本朝)의 이행(李行)이 능히 물맛을 변별하는데, 달천 물을 제일이라 하여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달천, 달래강이라는 단어는 물맛이 단 내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단내였는데, 이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음운학적으로 달래로 변했다. 그리고 달래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달천(達川)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렇게 해서 달래와 달천이 공존하게 된다. 그런데 달래와 달천은 하류인 충주지역에 이르면 강처럼 폭이 넓고 수량이 많아진다. 그 때문에 강이 붙어 달래강 또는 달천강(達川江)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은 생명을 잉태하고 문화를 일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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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팀 김기혁이 그린 "법주사 풍경소리" ⓒ 김기혁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 후 회원들은 각자 임무에 맞춰 법주사와 속리산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학술적으로 탐사하기로 한다. 크게 세 팀으로 나눠진다. 문화와 역사팀, 예술팀, 환경과 생태팀이다.

3시간 정도 각자 임무를 수행하고 오후 4시 다시 만나기로 한다. 만날 곳은 법주사에서 3.3㎞ 떨어진 비로산장이다. 비로산장은 속리산 내에 있는 유일한 대피소 겸 숙소다. 세심정을 지나 신선대 방향으로 600m 지점에 있다.

비오는 날 물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 일은 운치 있다. 오리숲을 통해 일주문에 이르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는 현판을 볼 수 있다. 길은 수정교를 통해 법주사로 이어지고, 또 다른 한 길은 법주사 위쪽 상수도수원지 옆으로 이어진다. 예술팀은 법주사로 들어가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역사문화팀은 절을 문화유산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생태팀은 자연관찰에 중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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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 최상류 속리산의 물 ⓒ 이상기


수정교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달래강의 하천연장 기점인 상수도수원지가 나온다. 댐 형태로 둑을 쌓아 만든 호수로 법주사와 사내리 지역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이곳이 바로 달래강의 젖줄이고, 속리산면의 젖줄이 된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길은 하천의 왼쪽으로 이어진다. 자동차길 옆으로는 데크를 깔아 세조길이라는 이름의 걷기길을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이 세조길이 된 것은 조선시대 세조대왕이 국운융성 법회를 위해 복천암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때 세조는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목욕소 위에는 마두암(馬頭巖)이 있어 그때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세심정(洗心亭)까지 올라가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으로 가면 복천암, 중사자암, 냉천골을 지나 문장대에 이르게 된다. 오른쪽으로 가면 상환암을 거쳐 천왕봉에 오를 수도 있고, 비로산장, 금강골, 경업대를 거쳐 신선봉으로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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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화상탑과 학조화상탑 ⓒ 이상기


복천암에는 수암화상탑과 학조화상탑이 있다. 수암화상은 신미대사로 한글 창제의 숨은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석가의 일대기를 한글로 적은 <석보상절>의 편찬에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세조 때 이뤄진 불경 간행 및 언해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승탑이 복천암 동쪽 언덕에 학조화상탑과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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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대왕 태실 ⓒ 이상기


세심정에서 비로산장을 향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순조태실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개울을 건너 산길을 300m쯤 오르면 순조태실을 만날 수 있다. 정조 11년(1787) 왕자로 태어난 순조의 태를 이곳에 묻고 태실을 만들었다. 태실 앞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로 이루어진 태실비가 서 있다. 앞면에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 새기고, 뒷면에는 가경(嘉慶) 11년 10월 12일 건립이라고 새겼다. 이를 통해 비석이 순조 등극한 후인 1806년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충북학연구소가 <달래강 123 인문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달래강의 자연과 명승 탐사, 문화유산의 가치 재조명, 사는 이야기 발굴, 예술적인 표현과 활용이다. 이번 달래강 프로젝트는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달래강의 생태와 환경 보존, 삶의 현장으로서 가치와 의미, 문화관광자원으로의 활용가능성 등이 이야기될 수 있다. 연재는 6월부터 10월까지 매주 1회 이루질 것이다. 총 20회 예정이다. 이 기사는 <중부매일신문>에 실리는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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