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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업체 직원이 결혼식을 엉망으로... 그 후 벌어진 반전

[넘버링 무비 68]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조화로운 향연, 영화 <세라비, 이것은 인생!>

18.06.22 16:27최종업데이트18.06.2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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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메인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01.
두 명 이상의 감독이 하나의 작품을 연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연출을 함께하기로 결심하더라도 각자의 가치관과 연출관, 스타일 등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는 형제, 자매인 경우,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제에서 자매가 된 월드스타 감독 워쇼스키도, 미국 예술 영화를 이끌어가는 코엔 형제도, 마블 유니버스를 이끌어가는 루소 형제도 그런 경우. 함께 연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곁에는 언제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이 각본가로 함께했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두 감독인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릭 토레다노가 지속적으로 함께 연출해 나가는 것이 흥미로운 까닭이다. 영화 <웰컴, 삼바>(2015)의 메인 포스터에 '<언터처블>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크게 쓰여져 있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1995년에 제작한 단편 <낮과 밤>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

장편 데뷔작인 <친구로 남기를 바래, Je prefere qu'on reste amis>가 세상에 나온 뒤로도 지금까지 독립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컴, 삼바>의 포스터에 위와 같은 문구가 붙은 연유는 <언터처블 : 1%의 우정>(2012)이 의외의 흥행을 얻었던 까닭이며, 그 이전에 연출된 두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된 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 수치로만 따지자면, 이번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두 감독의 여섯 번째 연출작이자, <언터처블 : 1%의 우정>, <웰컴, 삼바>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세 번째 작품인 셈이다.

02.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보지 않더라도, 국내에 개봉된 작품들만으로 두 감독의 성향은 분명히 파악된다.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적절히 섞으면서도 사회와 관계에 대한 세심한 시선을 놓지 않는 것.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 <언터처블 : 1%의 우정도>도, 이민자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물들의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웰컴, 삼바>도 모두 그랬다. 이번 작품 <세라비, 이것이 인생!> 역시 같은 맥락과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웨딩 플랜 업체를 운영하는 맥스(장 피에르 바크리 역)를 중심으로 하루 동안 결혼식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고객이자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피에르(벤자민 라베른헤 역)의 깐깐한 요구도 힘에 겨운데 직원들 역시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내 몰래 만나고 있던 조지앙(수잔 클레망 역)은 하필이면 오늘, 자신과 정식으로 교제하지 않는 우유부단한 맥스에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어찌되었든 오늘 이 결혼식을 무사히 마쳐야 하는 맥스의 고군분투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충돌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잘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메인포스터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메인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03.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된 요소는 캐릭터다.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며 매력을 발산한다. 서로를 못마땅해 하는 밴드의 보컬인 제임스(질 를르슈 역)와 매니저 아델(아이 하이다라 역), 본업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포토그래퍼 기(장 폴 루브 역), 이 결혼식의 신부(주디스 쳄라 역)가 자신이 예전에 좋아했던 직장 동료라는 사실을 알고 의욕을 잃어버린 줄리앙(빈센트 매케인 역)까지 모두. 심지어는 피에르 엄마(헬렌 벤상 역)와 같은 엑스트라들까지도 그 짧은 순간 잊기 힘든 존재감을 남긴다.

물론, 단순히 다양한 캐릭터를 나열한다고 해서 극의 매력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데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각각의 플롯을 간결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배치한 감독의 연출이 큰 힘을 발휘한다.

특히, 이전의 작품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앞세워 극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향이 아닌, 소수의 인물에게 집중하는 형식이었음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인물을 입체화하는 이번 작품의 연출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04.
외면적으로는 즐겁기만 한 영화로 비쳐질 수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두 감독은 사회와 관계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전작인 <웰컴, 삼바>에 비하면 농도가 옅기는 하지만, 영세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의 입장에서 느끼는 무게와 서로의 편의를 봐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더 가볍게는,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까지 자신들의 홍보물을 배포해야 하는 제임스의 모습에서도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처절함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자신의 결혼식을 완벽하게 치르길 원하는 피에르에 의해 저지되고 말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직원들의 충실하지 못한 태도로 인해 결혼식이 엉망이 된 이후,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내뱉는 맥스의 모습에서도 감독의 깊은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일은 물론, 누군가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 어떤 일도 혼자 이끌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 부분과 함께 반응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잘 짜인 계획 하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선호했던 과거 세대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현재 세대와의 차이를 보여준 부분으로도 보인다.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맹신하고, 다른 한쪽을 배척하는 태도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 자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맥스가 느꼈을 감정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Avishai Cohen의 Wedding Song과 함께 관객들의 마음 속에도 스며들게 된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스틸 컷 ⓒ (주)디스테이션


05.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전에 계획도 세워보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면서까지 그런 부분들을 통제해보고자 하지만 그것 역시 녹록지 않다. 그렇게 까다롭게 굴던 피에르만 보더라도 그의 결혼식이 완벽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결국에 그는 누구보다 더 행복한 결혼식을 아내가 될 신부에게 선물하게 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올리비에르 나카체와 에릭 토레다노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인종이나 나이, 국가나 민족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니까.

영화 속 맥스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 매니저 아델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고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보다 조금 더 관망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관계가 좋지 못했던 아내와 정확히 선을 긋고 새로운 사랑인 조지앙을 받아들이게 되는 많은 변화들. 과거의 그였다면 결정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상황들이지만, 이제는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세라비! 이것이 바로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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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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