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캐던 동굴에서 시원한 한나절을

[지금 거기에 가면 36] 여름휴가는 대한민국에서 ④ 광명시 광명동굴

등록 2018.06.23 19:16수정 2018.06.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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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동굴 내 와인동굴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광명시에 와인동굴이 있다. 알고 보면 전국의 와인들을 가져와 보관, 판매하는 공간이다. ⓒ 홍윤호


여름마다 해외 여행객 수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걸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다. 취업 준비, 학업, 집안에 환자가 있는 경우 등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개인 사정이 있거나 소득에 여유가 없어 망설여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싫어해서 그저 집안에서 수박을 먹으며 에어컨 아래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무더운 한여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회색빛 도시에서 하루만이라도 벗어나 바람을 쐰다는 의미에서 가볍게 한나절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이럴 때 테마 동굴 나들이를 추천한다. 따로 준비물도 필요 없고, 무더운 햇빛 아래 땀 흘리며 걸어 다니는 것도 없다. 천연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 동굴에서 쾌적하게 걸어 다니며 구경만 하면 된다.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는 데다 이것저것 볼거리도 많은 테마 동굴 중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몰려 있는 수도권과 남동 해안권에서 1시간 내외에 갈 수 있는 두 곳,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굴과 경북 청도군 와인터널을 2회 차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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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초신성 동굴 방문객들의 소망을 적은 황금패를 모아서 만든 시설물. 동굴 내 황금길에 있다. ⓒ 홍윤호


광명동굴, 황금 광산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다

금을 캐던 광산이 종합 관광지로 거듭난 곳,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동굴. 1903년 일제의 압박에 의해 '시흥광산'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실제 채굴은 1912년부터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내내 금을 캐냈고, 해방 후에는 1972년까지도 지속적으로 금을 캤던 광산이다. 

1955년부터 1972년까지 공식적으로 캔 황금만 해도 52kg이었다고 하니, 그 이전에는 얼마나 많은 금을 캐냈는지 대략 상상이 갈 만하다. 52kg이 적은 양이 아니다. 올해 금 1kg의 대략적인 시세가 5천만원을 넘겼고,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라 예상되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52kg은 26억 원 이상에 해당한다. 금광 하나에서 17년간 이 정도 캐낸 것이고, 그 전에는 훨씬 더 많은 양의 금을 캤다고 보면 (대부분 일본이 가져갔다) 이 광산은 정말 황금 광산인 셈이다.


사실 이런 금이 우리나라에 수두룩하게 많았는데, 19세기 말부터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앞 다퉈 금광을 개발해서 엄청난 양의 금을 가져갔고, 일제 때 결정적으로 일본 업자들과 총독부 비호를 받는 일부 친일업자들이 다 훑어가서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만 해도 1960년대까지도 남천의 모래에 사금이 깔려 있었다 할 정도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마르코폴로가 떠벌렸다는 황금의 나라 '지팡구'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폐광된 이 금광을 2011년 광명시가 사들였고, 내부를 개조하고 단장하여 2015년 유료 개장하였다. 지금은 광명시의 거의 유일한 관광지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시에서는 연간 200만 명이 온다고 꽤 자랑한다. 

다만, 동굴 입구는 산 중턱에 있으므로 아래 주차장에서 10분여 걸어 올라가야 한다. 여름에는 이 구간이 조금 힘들다. 물론 이 구간을 운행하는 코끼리차가 있어 걷기 힘들면 이를 이용하면 된다. (1인 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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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간 동굴안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빛의 터널이다. ⓒ 홍윤호


일단 동굴에 들어서면, 동굴 내부 구조가 좀 복잡하여 꽤 들락날락하므로 요소요소에서 안내인이 이쪽으로 가라고 안내를 해 준다. 아마 금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굴을 뚫었기에 내부가 복잡해진 듯하다.

먼저 웜홀광장에서 오른쪽 빛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요즘 야간축제에 흔한 빛의 터널이다.
안쪽 깊은 곳에는 동굴 예술의 전당이 있어 각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동굴 속에서의 공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좀 더 가면 동굴 아쿠아월드가 있다. 수족관을 만들고 1급 암반수를 이용해 토종 물고기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물고기들을 넣어 관람시키고 있다. 동굴 속에 이런 걸 만들어 놓다니, 발상이 대단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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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아쿠아월드 동굴 내부에 수족관을 만들어 토종, 외래 물고기들을 다양하게 넣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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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여신 금광이었던 곳 답게 여신의 손에서 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 홍윤호


아쿠아월드를 지나면 황금길이다. 좌우로 금칠을 한 암벽길을 지난다. 곳곳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금을 쏟아내는 풍요의 여신도 있고, 방문객들의 소망을 적은 황금패로 만들어진 소망의 초신성도 볼 만하다. 황금폭포를 지나 황금 궁전, 황금의 방 등 주로 황금의 이름이 붙은 시설들이 나타난다. 이곳이 금광이었음을 이용해 방문객들의 금에 대한 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한다.

동굴 지하세계로 깊이 내려가면 공포 체험관이 있는데, 여기는 따로 돈을 더 내고 들어가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라면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다. 지하 깊은 곳에 내려다보이는 동굴 지하호수를 지나면, 동굴의 제왕 조형물이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 시리즈의 캐릭터 제작 회사로 유명한 뉴질랜드 웨타워크숍이 제작한 조형물이다. 길이 41m. 그 아래에 골룸도 있다.

한참 내려온 동굴을 다시 올라가면 동굴에 대한 안내가 나오고, 곧 이어 근대역사관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징용과 수탈의 역사, 그리고 산업화 시기 광명동굴의 기능에 대한 전시관인데, 당시 광산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을 재현한 조형물들이 인상적이다.

일제의 광산 자원 약탈과 노동력 수탈, 어디 여기뿐일까. 산업화 시기 숨 막히는 답답한 공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했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도 여기뿐이 아니었다. 사진, 영상, 유물 등이 잘 배치되어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시기의 현실을 보편적으로 알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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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역사관 내 조형물 일제 강점기 징용과 산업화 시기 동굴 노동자들의 역사를 조형물로 보여준다. ⓒ 홍윤호


그 안에는 와인동굴이, 밖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아마 광명동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라면 와인동굴이 아닐까. 길이는 194m. 그런데 와인을 전혀 생산하지 않는 광명시가 와인동굴을 만들었다? 알고 보니 전국 각지의 와인을 가져와 보관, 판매하는 공간을 만든 곳으로, 직접 생산한 와인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영천, 청도, 경기도 가평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와인 생산지의 170여 종 와인을 보관하고 홍보하며 판매하고 있다.

시설은 와인 시음대, 와인 판매대, 와인셀러 등이다. 입구의 와인잔 모형은 와인동굴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데, 형태는 약간씩 다르지만 전국의 와인동굴 어디에나 있는 조형물이다. 사실 와인동굴 내 시설은 다른 지역의 와인동굴에 비해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다. 청도의 와인터널이나 무주의 와인동굴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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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동굴 시음대 평일에는 비교적 조용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시음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선다. ⓒ 홍윤호


와인동굴에서 나와 동굴식물원 길을 거치면 원래의 웜홀광장 입구로 다시 나온다. 금광을 캐던 인공 동굴에서 한바탕 복합적인 자연과 문화를 정신없이 겪고 나왔다. 동굴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갑자기 눈앞이 트이고 눈이 부신다.

동굴 입구 옆을 보면 광명시에서 조성한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의 아픔이 있는 동굴이니만큼 이곳에 소녀상이 들어선 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냥 지나갈 곳이 아니기에 잠시 묵념을 하고 길을 내려가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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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광명동굴 입구 한쪽에 앉아 있다.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위치에 있다. ⓒ 홍윤호


광명동굴은 내부 시설 뿐 아니라 야외 시설과 편의시설도 여러 곳 있고, 전망대도 있다. 특히, 채굴된 광석을 선별하던 공간인 선광장은 산업유산으로 보존하고 있어 한번 발길을 멈출 만하다. 또, 라스코 전시관이라는 건물이 따로 있어 계속 기획 전시를 하므로 시간 되면 이곳에 들러 가면 좋다. 현재 공룡체험전이 진행 중이다. 여름방학 중의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체험객들을 겨냥한 듯하다.

광명동굴은 다양한 시설을 마련하고 배치한 광명시의 노력이 돋보이는 동굴이다. 개별 시설들의 완성도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지만, 이만한 공간을 마련하는데 들인 노력과 시간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수도권에 있지 않은가. 수도권의 한 도시에 이런 동굴 시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충실해지길 기대해 본다.

단, 한 가지. 주말과 공휴일이라면 사람이 꽤 많다. 오전 중에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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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광장 채굴된 광석을 선별하던 곳으로, 산업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 홍윤호


여행 정보

주소: 경기도 광명시 가학로 85번길 142
문의: 1688-3399, 02-2610-2010, http://www.gm.go.kr/cv/index.do 

관람시간은 9:00~18:00 (입장은 17:00까지). 빨리 다니면 대략 40분, 천천히 둘러보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관람료는 성인 6천원, 중고생 3천5백원, 초등학생 이하 2천원
주차는 입구 제1,2 주차장 200대 이상 가능, 주말/공휴일이라면 오전에 좀 일찍 갈 것. 
주차료는 대형 4천원, 중소형 3천원

* 가는 법
자가용으로는 제2경인고속도로 광명IC→가학삼거리→광명동굴(제1,2주차장)
대중교통으로는 전철 7호선 철산역 2번 출구→2001아울렛 건너편 버스 정류장(하안동, 소하동 방면)→17번 버스→광명동굴 종점(제 1주차장)
혹은 KTX 광명역(1호선) 7번 출구→17번 버스→광명동굴 종점(제 1주차장)
#광명동굴 #와인동굴 #광명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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