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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인간사회를 위협? 이 감독의 무서운 집착

[넘버링 무비 69]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을 담은 <개들의 섬>

18.06.23 16:25최종업데이트18.06.2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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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개들의 섬> 메인포스터 영화 <개들의 섬> 메인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01.
영상 촬영 기법 가운데 '스톱 모션'이라는 게 있다. 피사체의 움직임을 테이크(Take) 단위로 연속적인 방식으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움직여가며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촬영한 뒤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영상물이 초당 24~30FPS(Frame Per Second)에 이른다고 하니, '스톱 모션' 방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1초의 영상을 표현하기 위해 24장 이상의 프레임을 찍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각각의 프레임을 찍을 때마다 연출자가 원하는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앵글 안의 모든 대상을 수동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월레스와 그로밋>처럼 점토를 이용해 만드는 클레이 방식과 <패트와 매트>,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같이 퍼펫이라고 부르는 인형을 이용해 만드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 두 가지가 모두 쓰이기도 하는데, 어떤 쪽을 선택하든 그 작업이 굉장히 고되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영화 전체에 이용되기도 하고, 특정 장면만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기자 주) 실제로 <월레스와 그로밋>을 제작한 아드만 스튜디오는 단편 하나를 촬영하는데만 매일 6초 분량씩을 촬영해 꼬박 13개월의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CG(Computer Graphics) 기술이 발달하고 난 뒤에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CG를 이용하는 것이 더욱 간편하고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다.

02.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개들의 섬>은 퍼펫 방식을 이용해 연출된 작품이다. 오랜 세월 인류의 반려동물로 자리했던 개의 개체 수가 급증하고 그들의 병으로 인해 인류가 위협당하자, 세상의 모든 개를 쓰레기 섬으로 추방하는 인류. 그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개를 잃어버린 소년이 개를 찾아 쓰레기 섬으로 떠나는 내용이 3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제작된 스톱 모션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감독은 지난 2009년 <판타스틱 Mr. 폭스>라는 작품을 통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이미 한 차례 연출한 바 있다. 평소 깐깐한 성격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14만 4000개 이상의 프레임을 촬영했고, 1000개가 넘는 퍼펫을 제작하며 지독한 디테일을 완성해 냈다고 알려져 있다. <판타스틱 Mr. 폭스>를 연출할 당시, 그는 스톱 모션 방식을 활용한 이유가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으로는 특유의 거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 <개들의 섬>에서는 그 보다 더 나아가 기존의 'One's 방식'이 아닌 훨씬 더 움직임이 딱딱하고 불온전한 느낌을 갖는 'Two's 방식'을 활용한다. 'Two's 방식'은 같은 프레임을 두 번씩 촬영해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 영화 <개들의 섬> 스틜컷 영화 <개들의 섬> 스틜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03.
웨스 앤더슨 감독이 대단한 것은 기술적으로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지독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작품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다른 작품들만 보더라도 두드러지는 감독의 재능이다. 좌우 대칭은 물론 색채와 장면 상의 미장센까지, 작품 내외의 모든 상황을 컨트롤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1930년대의 파시즘, 공산주의의 몰락과 당시 유럽 낭만과 예술을 담아내는 것까지 놓치지 않으며 극찬을 받았다.

이번 작품 <개들의 섬>에서도 감독이 주인공 '아타리'의 모험과 성장, 쓰레기장에 갇힌 개들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단순히 오락적 요소만을 획득하기 위함이 아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문제에 노출된 편향된 사회와 왜곡된 집단의 다양한 문제점을 냉철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 동안 연출해 온 작품들 대부분이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온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작품에서 표현되고 있는 그런 문제들은 어쩌면 감독이 현재 느끼고 있는 시대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96년 <바틀 로켓>으로 데뷔한 이후,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을 풀어온 웨스 앤더슨이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미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런 지점에서의 민감함을 다소 경감시키기 위함일 것도 같다.

04.
영화는 처음부터 작품 속에서 설정된 세계에 대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수용하는 척 하면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으로 이용하는 고바야시 시장과 자신들의 생존 앞에 이종(異種)의 배척을 고민도 없이 결정하는 시민들. 실현 가능한 공존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부당한 목적 앞에 이를 묵살하는 기득권. 아니, 강아지들의 강제 이주 문제를 이야기 하기 이전에 메가사키시 내에 쓰레기 섬이라는 이질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 역시 이 도시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이미 많은 것들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시대의 이야기이며, 인류의 안락함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이득으로 인해 일방적인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와타나베 교수와 연구진의 모습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은 가감 없이 표현되고 있다. 치료제가 발명되는 순간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그 치료제를 스스로에게 투약하는 것이었으니까. 완성된 치료제를 누가 먼저 투약하느냐가 어떤 문제가 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는 와타나베 교수와 연구진이 누구를 위해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했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그들의 연구 목적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어린 주인공 아타리가 담을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쓰레기 섬이었다면, 치료제가 발명된 이후 그들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시장의 음모로 와타나베 교수가 죽고 난 뒤에 남은 이들은 또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이미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 그 도시에는 타인을 위한 마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영화 <개들의 섬> 스틜컷 영화 <개들의 섬> 스틜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05.
그런 결핍을 채워주는 인물이 주인공 아타리다. – 유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 체제와 불의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 역시 어른들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 메가사키 시의 정책에 의해 잃어버린 반려견 스파츠를 찾아 쓰레기 섬으로 잠입하는 마음은 분명 본인이 아닌 타인을 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마음은 주변의 대상을 감화시켜 변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런 아타리라고 해서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호견을 찾기 위해 비행기를 탈취해 쓰레기 섬으로 날아가는 모습이나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서 미달되는 기준에도 불구하고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사회의 규범이 갖는 무게와 책임감을 헤아리지 못하는, 영락없는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규범을 지키는 일과 마음을 내어주는 일 중에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쪽은 후자에 조금 더 힘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06.
이는 또한, 영화가 Pet과 Dog의 구분을 명확하게 지으려는 시도와 결부되며 스스로를 떠돌이 개로만 한정하고 무리에 적응하고자 하지 않는 치프의 태도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이 굳이 Pet과 Dog의 구분을 지으려는 것은 Pet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수동적 의미 때문인데 시각을 조금만 틀어보면 고바야시 시장의 정책에 쉽게 호도되는 인간들의 모습 또한 Pet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타인으로부터 시선을 놓지 않는 태도. 그것이 감독이 생각하는 능동적 객체로서의 의미를 담은 단어, Dog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섯 마리의 강아지 이름이 모두 – 영문으로 쓰자면, Chief, Rex, King, Duke, Boss이며, 영화는 초반부에서 이들의 이름표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이며, 영화 속 또 다른 지도자인 고바야시 시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07.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인간과 개를 양쪽에 놓고 의도적인 대칭을 이루게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고바야시 시장이 아타리를 처음 거두어 키운 일과 그 이후에 그를 대하는 모습은 쓰레기 섬에 버려진 개들이 겪은 일련의 과정과 유사하다. 쓰레기 섬에서 아타리가 돌아오면 그를 집에서 한발작도 못 나가게 하고 교육만 시키겠다고 말하는 시장은 문제의 발단이 자신임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아타리에 대한 증오만 커질 뿐. 병에 걸렸다고 쓰레기 섬으로 보내고자 하는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웨스 앤더슨 감독이 집요할 정도로 대칭적 구조를 이루게 하는 장면은 많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민주적인 방안을 따르자는 개들의 모습이나 결과적으로는 싸움을 벌이게 되지만 그 전에 또 다른 해결책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습과 같은 것들.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서 북을 치는 소년들이 동일하게 등장하는 것에서는 그의 지독한 강박에 웃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 영화 <개들의 섬> 스틜컷 영화 <개들의 섬> 스틜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08.
그렇다고 웨스 앤더슨 감독이 이 작품에서 어느 쪽이 선과 악인지 구분해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의 정치적 색깔처럼 서로의 다름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잘못은 그 색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있다는 것에 집중한다. 마지막에서 고바야시 시장이 실각하게 되는 이유 역시 그가 인류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고 공존할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다.

그것을 바로 아타리와 학생들이 증명해낸다. 애초에 그들은 시장의 지위를 전복시키거나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 무리가 시도하려는 극단적 방식이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음을 알리고 상황을 변화시키자는 것이었을 뿐.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들 역시 옳은 것을 행하고 타인을 이해시킨 과정 뒤에 따라오는 결과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통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09.
앞서 설명했듯이, 그 동안 웨스 앤더슨 감독은 대칭과 균형에 대한 지독한 집착은 물론, 강박적인 미장센과 더불어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심지어는 그의 영화적 스타일이 패션업계에도 영향을 줄 정도라고 하니 이미 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 할 수도 있겠다.

이번 작품이 대체적으로 어두운 계열의 무채색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 그 동안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자신을 수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집요하게 쌓아 올리더니 이제 갑자기 그것들을 무너뜨리려고 하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놓치는 법이 없으니, 작품이 더해갈수록 매력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 <개들의 섬>은 구성과 표현 방식, 스토리와 감성 등 모든 부분에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Isle of Dogs. 의도적으로 발음을 흐리면 I Love Dogs라고 발음이 되는 부분까지도 감독의 의중이 들어가 있는, 그야말로 치밀하고 완벽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무비 개들의섬 웨스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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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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