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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슛', '득점 후 백태클'... 비난하면 즐겁습니까?

[러시아월드컵] 팬의 수준은 곧 자국 축구의 수준... 도 넘은 지적은 피해야

18.06.23 16:05최종업데이트18.06.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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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팅 외치는 태극전사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지훈련 캠프인 오스트리아로 출국하기 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18.6.3 ⓒ 연합뉴스


전 세계 축구인과 축구팬에게 월드컵이란 '꿈의 무대'다. 수많은 이들이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바라보며 울고 웃는다. 하지만 월드컵이 항상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는 때로 그만한 책임과 아픔도 따른다. 좋을 때는 축구 하나로 세상을 모두 품에 안은 듯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상처와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월드컵에서의 추억이 지우고 싶은 일생일대의 악몽이나 트라우마도 남는 경우도 많다.

어느덧 10번째 본선무대를 밟는 한국축구도 어엿한 월드컵 단골손님이 됐다. 2002년 한일대회의 4강 신화나, 2010년 남아공대회의 원정 16강처럼 아름다운 추억도 있었지만 사실 한국축구의 월드컵 도전사는 그보다 좌절과 상처의 순간이 더 많았다. 좋든 싫든 그 역시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욕의 순간들

1994 미국월드컵에서 황선홍의 '똥볼', 프랑스월드컵에서 하석주의 '골 넣고 퇴장'과 차범근 감독의 '오대영 참사', 2002 한일월드컵에서 최용수의 '독수리 슛',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염기훈의 '의족 슛'과 이동국의 '물회오리 슛',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박주영의 '따봉'과 정성룡의 '퐈이야', 홍명보 감독의 '의리축구' 등은 하나같이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남은 흑역사들이다.

사실 지금이야 세월이 흘러 술안주거리처럼 웃으며 추억할 수 있게 된 사건들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에 파장이 하나같이 어마어마했다. 선수와 감독들은 상상을 초월한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여 역적 취급을 받기도 했고, 월드컵 이후에도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벌써부터 차기 '국민 욕받이' 후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졸전 끝에 0-1로 패한 이후 사령탑 신태용 감독을 비롯하여 결정적인 수비실수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장현수, 김민우 등을 향하여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물론 대중의 높은 관심과 비판은 월드컵 국가대표의 숙명이고 그런 현상이 꼭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실패한 결과에 대한 희생양 혹은 집단적 화풀이의 대상으로 누군가가 '증오의 표적'이 되는 악순환이 월드컵마다 반복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여론이 들끓는 상황일수록 비판과 비난을 어느 정도 구분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의 플레이가 평가받는 것은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을 위한 당연한 권리임에는 분명하다. 예를 들어 신태용 감독의 전술이라든가 장현수의 잦은 실수 등은 이미 월드컵 이전부터 여러 차례 팬들의 우려를 샀던 대목이었다. 정당한 비판을 받는 것조차 두렵다면 처음부터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나오지 않는 게 낫다.

단지 문제는 선을 넘어선 인신공격이나 잘못된 선입견까지 맹목적인 여론몰이에 휩쓸려 정당화 되는 듯 한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장현수의 패스실수 때문에 박주호가 부상을 당했다'든지, '김신욱이 열심히 뛰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녔다'든지, '신태용이 아니라 히딩크가 감독이었으면 스웨덴을 이겼을 것'이라는 식의 주장들은 어떤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정에 근거한 추측 혹은 그저 비난을 위한 비난에 불과하다. 심지어 때로는 그 비난이 선수와 감독 개인이나 축구장안의 플레이에 대한 평가를 넘어, 축구인들의 가족이나 사생활의 영역까지 끌어들여 인신공격으로 치닫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은 경기들

알고 보면 축구는 수많은 선택과 실수의 반복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가는 스포츠다.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선수들도 경기마다 수많은 찬스를 놓치거나 실수도 저지른다. 그런데 실수에 대한 압박이 커지게 되면 오히려 가지고 있는 본 실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몇몇 장면만 짜깁기 식으로 놓고 축구를 판단하려들면 어떤 일류 선수나 감독도 형편없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은 순식간이다.

한국은 아직 멕시코-독일과의 경기가 남아있다. 현실적으로 1승이나 16강이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질 때 지더라도 후회 없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온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섣부른 비관론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다면 지난 98 프랑스대회 네덜란드전이나 2014 브라질 대회 알제리 전 같은 참사가 반복될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선수들은 더 단단해져야한다. 스웨덴전이 끝나고 PK를 내준 김민우가 죄책감에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은,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나서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얼마나 큰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장면이다. 결과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감수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이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다.

선수는 변명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스웨덴전의 김영권이나 조현우처럼 저평가받던 선수들도 그라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능력을 증명하기만 하면 욕하던 팬들도 알아서 존중한다. 설사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실수가 나오거나 결과가 좋지않을 수는 있다. 그래도 그들은 단지 축구를 하고 있을 뿐 전쟁을 치르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난에 주눅 들거나 약해지면 손해를 보는 것은 선수 본인뿐이다.

즐기는 자세

한편으로 월드컵을 대하는 일부 팬들의 자세도 이제는 조금 성숙해져야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대표팀의 성적에 일비일희하면서 한국축구에 대한 지나친 자기비하로 치닫는 소모적인 현상이 반복된다. 월드컵 성적을 국위선양과 연결시키거나 마치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모든 대회를 실패처럼 규정하는 것은 성적지상주의의 폐해가 낳은 강박관념이라고 할수 있다.

사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국가의 축구팬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페루나 모로코처럼 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하여 몇십 년을 기다리고도 벌써 허무하게 조퇴한 팀들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월드컵 본선진출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배부른 분위기가 형성됐다. 우리의 실력이나 현 주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본선에서도 무조건 결과를 끌어내야한다는 부담감이 여론을 지배하고 있다. 벌써 10번째 본선무대를 밟은 단골손님이 되었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월드컵을 제대로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축구를 즐기는데 복잡한 조건이나 의무가 따라붙을 필요는 없다. 평소에 K리그나 해외축구 경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오히려 국가대항전이나 월드컵을 통하여 새롭게 축구의 재미를 느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월드컵과 축구대표팀에 대하여 자유롭게 응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지만 팬들의 수준이 곧 자국 축구의 수준을 대변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월드컵을 대하는 팬들의 인식이나 자세가 여전히 20~30년전 낡은 마인드에 머물러 있으면서 대표팀만 발전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이미 충분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 대표팀과 선수들을 바라보며 비판할 때는 하더라도 때로는 감싸주고 격려하는 성숙함도 필요하다.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고 해서 한국축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며, 월드컵이 끝나도 축구는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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