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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외모 비하까지... 월드컵 대표팀 비난, 대체 왜 이러나

[하성태의 사이드뷰] <블랙하우스>에서 털어 놓은 하석주 감독 충고 곱씹을 때

18.06.23 17:16최종업데이트18.06.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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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중 한 장면. ⓒ sbs


"감독도 그렇고 지금 모두 힘들겠지만, 김민우 선수 같은 경우는 박주호 선수 부상으로 (경기에) 들어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주면서 엄청난 비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거예요, 지금. 저는 그런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에."

"20년 가까이 욕을 얻어먹었다"는 하석주 아주대 감독. 21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스웨덴 전을 관람한 뒤 내놓은 관전평 중 김민우 선수를 챙겨 주는 그의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포털 관련 검색어에 아직까지 '하석주 백태클'이 뜨는 것도,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맞아 광고도 찍고 흔치 않은 관람 이벤트를 열게 된 것 역시 20년 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의 백태클의 악몽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하 감독은 그 후 겪은 '욕받이'로서의 일화를 이제는 담담히 소개했다. 

"지금도 댓글 가끔 보면 욕을 하잖아요. 아직까지 살아있냐, 아직도 축구하냐. 99명이 좋은 얘기해도, 한 명은 그런 얘기를 꼭 해요."

함께 출연한 최용수 전 서울FC 감독은 이 말에 "지금도 해요?"라며 반응했다. 당시 경기에서 위로를 건넸던 동료였지만, 20년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비난 댓글이 달린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 감독이 겪은 마음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 백태클이 뭐라고, 레드카드 한 장이 다 뭐라고. 하지만 하 감독은 당시 프랑스 월드컵의 경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본선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을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고, "지금까지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 못 건넸다"고 고백했다.

하 감독이 그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그 말은 곧 국가를 대표해 국제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의 압박감과 행여 실수라도 할까 신경이 곤두서는 그 조바심을 유추하게 한다. 그러한 심리적 무게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리라.

부인 얼굴평가에 아이 외모지적

조현우 선수의 아내 이희영 씨가 스웨덴 전 이후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글. ⓒ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러나, 20년이 지났어도 변치 않는 것은 또 있다. 하석주 선수가 받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어쩌면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그보다 훨씬 강도가 세진 비난들 말이다. 스웨덴 전 패배 이후 일부 선수들에게 쏟아진 비난 폭탄이 이를 방증한다. 심지어 가족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까지 달려들어 근거 없는 막말과 비난을 쏟아낸 경우도 있었다. 스웨덴 전 활약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골키퍼 조현우 선수 아내의 경우가 그랬다. 

"몇 사람의 아기에 대한 안 좋은 댓글들을 건너건너 듣게 되면서, 아기가 나중에 글씨를 알게 되면 상처가 될까봐 저의 700개 정도의 수년간 일상을 담은 일기와 같은 것들을 지우게 되었습니다! 몇 년 간 추억의 공간이었는데,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엄마의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조현우 선수의 아내 이희영씨가 스웨덴 전 이후 본인의 SNS에 올린 게시글 중 일부다. 이 씨가 언급한 댓글 중에서는 사진 속 이씨 외모에 대한 지적은 물론 생후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외모를 비하하는 글도 있었다고 한다. 이 씨는 "그때 화장을 조금 할 걸 그랬다"며 "외모 지적 또한 받게 되면서 '며칠 동안 제가 잘못하고 있었구나"하고 알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부 축구팬들이 '얼(굴)평(가)'는 물론 아이까지 거론하는 행동에 받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이 씨는 소셜 미디어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제가 뭐라고 갑자기 관심받는다고 (SNS) 비공개를 할까 라는 생각에 고민했다"며 "아기에게까지 안좋은 말을 듣게 할 줄은 몰랐다"고 적었다. 스웨덴 전 이후 조현우 선수도 개인 계정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전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선방한 조현우 선수가 이 정도인데, 다른 선수들은 오죽할까. 스웨덴 전에서 부진했던 공격수 김신욱과 수비수 장현수 역시 일부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들 선수 개개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팀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민우 선수의 경우, 국민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박주호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 대체할 만한 수비수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축구계의 진단이다. 동료들과 코치진은 물론 축구 팬들 역시 김민우 선수가 자책감을 털어 내고 경기에 매진하게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20년 지나서야 고백한 하석주 감독의 아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하석주 감독. ⓒ sbs


"국가대표팀 선수가 실수 했을 때 비난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국민들의 어떤 비난보다 자기 스스로 마음의 빚을 졌는데, 그게 20년 간 거 아니에요? (욕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하석주의 사연을 들은 후,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진행자 김어준은 이렇게 말했다. 무려 20년이다. 본의 아닌 실수로 인해 한 국가대표 선수가 국민적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이. 지금도 김민우 선수를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러한 중압감에,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민우 선수가 스웨덴 전 직후 카메라 앞에서 흘린 눈물을 떠올려 보시기를. 대수롭지 않게 뱉어낸, 작성한 비난의 글들이 그들에게 어떠한 무게로 다가갈지를. 스웨덴 전 1패가, 그 의도치 않은 패배와 실책이 과연 인생을 좌우할 만한,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국민적 비난을 들어야 할 만큼 잘못된 일인가.

멕시코 전이 코앞인 지금이야말로 선수들이나 국민들 모두 하 감독의 경험담을 곱씹어야 하지 않을까. 월드컵은 4년 마다 반복되고, 멕시코 및 독일과의 승부가 아직 남았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스스로 이겨내야 해요. 앞으로 할 날이 더 많이 남았잖아요. 지금 우리 김민우 선수 같은 경우에도 지금 굉장히 힘들 거예요. 비판할 거 하더라도 격려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선수들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거는 우리 국민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석주 김민우 러시아월드컵 블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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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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