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궤멸·진보 압승', 그건 착각이다

[게릴라칼럼] 보수는 민주당 선택... 왼쪽 날개 여전히 부실

등록 2018.06.26 12:22수정 2018.06.2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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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습니다' 무릎 꿇는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권우성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펼침막을 뒤로하고, 국민들에게 무릎 꿇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잘못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번 일을 국민들이 준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도 있었지만, 누가 마지막 기회를 주었냐고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나겠다고 스스로 바뀌었던 이름들.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그러나 실상은 다시 태어난 이름이 아니라 망한 식당 간판갈이에 지나지 않았다. 6.13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마지막 기회라고 읽었고, 중앙당 해체를 대안으로 내놨다. 그러나 중앙당 해체가 아니라 자유한국당 해체가 진짜 민심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6.13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언론은 보수의 궤멸이라고 진단했다. 보수를 자처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참패를 두고 그런 분석도 가능하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압승을 진보 진영의 승리로 치환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보수의 궤멸이라는 진단을 흔쾌히 동의하지 어렵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보수 세력을 궤멸시킨 것이 아니라 적폐 권력의 잔존 세력을 청산한 것이다. 보수의 적통을 자처하면서 평화와 공존의 시대 흐름을 부정하고 수구의 패러다임을 되살리려는 정당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겠다고? 그조차도 국민들이 바라는 일일까?

한국당을 버리고 민주당을 선택한 보수세력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아쉬움 점은 진보 정당이 대안 세력으로서의 교두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압승했지만 그것은 진보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승리였고 온건한 보수정당의 완승일 뿐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자유한국당 등이 점유하고 있던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 보수 세력이 보수의 정체성을 버린 게 아니라 자기들의 대안 정당으로 자유한국당을 버리고 민주당을 택한 것이다. 보수정당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굳이 자유한국당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6.13 지방선거의 민심이었다.

정의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정당 득표율 3위를 기록했다.광역 비례의원 10명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광역·기초단체장는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표현처럼 고통이 덜한 패자일 뿐, 승리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결과였다. 또 다른 진보정당인 민중당과 녹색당, 노동당의 결과도 초라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의 궤멸에 가까운 참패 때문에 조명조차 변변히 받지 못한 진보정당의 패배는, 아쉽고 아프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기 위해서 보수 정당에 힘을 실어 달라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의 균형 잡힌 비행을 위해서는 우측의 날개보다는 좌측이 날개가 힘을 얻어야 한다. 비록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대패를 했다고 하지만 진보 정당과 견줄 바는 아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수구 정당과 민주당의 온건한 보수가 주도 세력이고 좌보다는 우로 기운 운동장이다.

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볼 근거가 과연 있을까? 스스로도 개혁정당이라고 했지만 진보정당이라고 내세운 적도 없다. 당헌 총칙을 보더라도 민주적 시장경제 지향, 복지국가 추구,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평화통일 준비 등을 당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를 원칙을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최우선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자유한국당 당헌의 총칙과 별반 다른 게 없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 냉전보수와 수구보수가 아닐 뿐이다.

민주당이 그나마 진보와 개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촛불 항쟁 전후다. 나약하고 정체성마저 모호했던 민주당이 촛불 민심의 역동성이 힘입어 개혁의 대변자로 나서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적폐 청산의 고삐를 다그쳤고, 극한 대치의 남북 관계를 평화와 화해 무드로 바꾸어 놓았다. 보수 진보를 떠나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6.13 지방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훌륭한 중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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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그렇다 해서 진보의 목소리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진보정당의 역할을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대신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호전에 힘입어 종전선언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다.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돌려보내도 기획탈북 종업원과 평양시민을 자처하는 김련희씨의 송환 문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다. 러시아를 잇는 철도와 가스관 사업 등을 발표하면서 낙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남북교류를 막아온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말도 못 꺼내는 민주당이다.

이에 더해, 6.13 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 정책의 보수화는 우려와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제기한 건 김동연 경제부총리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소득주도성장론과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을 빼고 나면 환율에 개입하여 수출기업을 돕던 수출주도 성장론이나 돈 빌려 집사라는 부채주도 성장론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정책의 보수 회귀를 막아서야 하는 것이 진보 정당의 역할이다. 명백히 잘못된 판결인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을 또다시 법의 판단에 맡겨버리자는 청와대에 쓴소리를 해서라도 빠른 해결을 강제해야 되는 것이 진보정당의 할 일이다.

여전히 부실한 왼쪽 날개

지방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지방 권력하에서 진보정당 역할이 진보 정책 입안자, 감시자로서의 견제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구 적폐 세력이 청산된 자리에 진보 정당이 자리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6.13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적지 않게 드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진보 정당은 시대적 요구를 읽지 못했고, 유권자들은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거대 정당에게만 유리한 낡은 선거구제도 한몫했다. 오른쪽은 새로운 날개를 얻었지만 왼쪽 날개는 여전히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이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문재인 정부도 정국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 보수에 발을 담그고 개혁을 곁눈질하는 정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의석 구조상으로도 그렇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를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에게 맡겨 놓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지키고 소득주도 성장론을 견인할 수 있는 것도 진보 정당이지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은 아니다. 정치 지형이 변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에게 보수의 자리를 빼앗겼다. 이제 채워야 할 것은 보수의 영역이 아니라 진보의 영역이다.

무릎 꿇은 자유한국당이 다시 태어나겠다고 한다. 국민들이 준 마지막 기회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태어나야 할 이유나 당위성은 보이지 않는다. 김종필 전 총리의 죽음은 유신정권의 종말이다. 냉전과 정경유착, 권언유착으로 지탱해온 꼴보수의 역사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홍준표 전 대표의 말처럼 세 번 속으면 유권자도 공범이다. 6.13 지방선거로 보수는 새롭게 재편했다. 2년 후 총선에서는 진보가 새롭게 재편된 보수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어떡하냐고? 보수 정당이 차고 넘치는데 그들이 없어진들 그게 뭐 큰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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