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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취소했으면" 황교익 분노에 더해진 역사학자의 '일침'

[하성태의 사이드뷰] 김종필 전 총리 무궁화장 훈장 추서 논란 일파만파

18.06.26 15:59최종업데이트18.06.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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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 ⓒ MBC


"황교익 정치칼럼니스트로 전직?"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지난 24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인용한 기사 제목이다. 황교익은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서거 이후 연이어 JP에 대한 글을 게재했고, 이에 그의 발언과 그 배경을 언급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황교익은 "민주공화정의 시민이면 누구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면 이런 견해를 덧붙였다.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한정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몰상식한 제목이다. 내게 음식과 관련한 말만 하라는 것도 민주공화정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느 누구이든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그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25일 밤 MBC <뉴스데스크>의 인터뷰이로 출연했다. 역시 요리가 아닌 JP에 대한 코멘트를 위해. 시민들의 여러 입장을 담은 리포트 이후 '단독'으로 앵커와 인터뷰한 황교익은 마찬가지로 "시민"의 입장을 강조하는 한편 정부의 JP 무궁화장 훈장 추서에 반대하고 그의 죽음을 '미화'하는 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언론을 비판했다.

"김종필 이러면 정치의 풍운아니 풍류를 아는 정치인, 멋을 아는 정치인이래요. 그런데 정치가 한량들 놀이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는 국민의 삶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인데 사적으로 그 사람이 멋을 부렸든 풍류를 즐겼든 하는 것은 정치적 평가 대상이 아니거든요(중략).

직업 정치인들끼리 서로 애틋한 추억이 있다는 건 서로 자기네들끼리는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걸 언론에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종필에 대한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못하게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라고 저는 봅니다."

"따진다고 그러면, 전두환도 공이 없겠습니까?"

25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의 한 장면. ⓒ MBC


생방송이 아닌 관계로, 다소 편집된 황교익의 인터뷰는 내용 면에서 그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견지해온 입장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예컨대, "정치인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일 수 없다"는 논리 말이다.

"정치인은 죽음과 동시에 역사적 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김종필은 총으로 권력을 찬탈하였다. 독재권력의 2인자로서 호의호식하였다. 민주주의를 훼손하였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말라. 이 자랑스런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의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

지상파 메인뉴스로는 부족했던 걸까. 황교익은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재차 인터뷰를 했다. 전날 JP가 창당한 자민련 의원 출신이자 'JP키즈'라 불리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훈장 추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면,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출연한 것이다. 발언 수위가 가장 셌던 건 사실 이 인터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녹화보다, 글보다 생방송 전화 인터뷰에서 발화된 '말'의 화력이 더 셌다고나 할까.

"(JP는) 자신의 입으로는 스스로 (5.16 쿠데타의) 주역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박정희는 그냥 얼굴마담이었다라고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을 근거로 한다 그러면 민주공화정의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을 훼손시킨 장본인이거든요. 총을 가지고 권력을 찬탈한 사람이잖아요.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총으로 권력을 찬탈한 자한테 훈장을 수여한다는 것이 지금 올바른 일인가. 그렇다 그러면 그와 유사한 경우, 전두환도 마찬가지죠. 공과 과, 이렇게 따진다고 그러면 전두환의 공도 없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있겠죠. 어딘가에서 나오겠죠."

전두환까지 언급한 이러한 황교익의 '분노'는 사실 언론의 보도 성향에 기인한 탓이 크다. 서거 직후 쏟아져 나온 추모 보도와 기사는 JP를 5.16 쿠데타의 한 축으로 적시하는 한편으로 DJP 연합의 한축이자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할을 담당한 정치인으로 '균형'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인상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그 JP가 개헌제 논의에 실패하고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김대중 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았다. 또 민자당 창당의 3당 합당이야말로 1987년 체제를 후퇴시킨 퇴행적 악행이었다는 사실도 정치공학적 해설에 머무르는데 급급했다.

특히나 현직 정치인들은 (업과 계산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오롯이 제 권력의지에 의해, 또 후진적 정치 논리로 가능했던 JP의 선택과 그 결과를 두고 정치공학적 논리만을 앞세우지 않았나 되돌아 볼 일이다.

황교익은 그렇게 '역사(의 평가)'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는 듯한 작금의 분위기를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언론이 보는 김종필과 다른 "시민의 입장"을 내내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일 테고. 이럴 때일 수록 더더욱, 전문가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훈장 추서의 정당성이나 역사 속 김종필에 대한 역사가나 역사학자들의 의견 말이다.

'공과 과'의 정치공학이 아닌 역사의 문제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보면 당연히 지금이라도 (JP 무궁화장을) 취소했으면 좋겠고요. 왜냐하면 이게 우리나라 훈장제도의 문제가 (있는데) 이게 이승만 정부 때 만들어진 다음에 이승만 대통령이 거의 본인이 제일 먼저 받으셨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된 측면이 있는데요. 지금이라도 국가가 주는 훈장이라는 건 이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고려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나라가 벌써 70년이 됐으니까 쌓아온 역사적인 힘 속에서 좋은 제도로 탈바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와 같은 관행이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5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은 정부의 훈장제도 자체가 문제 있다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이승만 정부에 수립된 이후 훈장제도라는 관행이 악용된 사례를 열거하면서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정부의 JP 무궁화장 추서를 무를 수는 없는 일이라고 보는 쪽이다. 앞서 전직 총리들은 물론이요, 작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반기문 전 유엔총장, 그리고 올해 이석태 변호사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 위원장자격으로 무궁화장을 받았다.

전직 총리 자격으로서의 예우 차원이라면, 정치공학적이든 아니든 추서 자체에 시시비비를 가릴 여지가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더더욱, 그 '관행'이 문제다. 심 소장의 문제제기처럼, 이번 기회에 훈장 제도 자체를 뜯어 고칠 때가 됐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 때처럼 '훈장 나눠주기'를 다시금 목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과거에 진행됐었던 훈장의 관행 같은 것들을 보면 그냥 유력한 정치인이나 우리 사회에서의 주류로서의 큰 힘을 발휘했던 분들한테 살아 생전에 주거나 죽은 다음에 주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수준 자체가 6월 항쟁을 넘어서서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정부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시스템이 갖춰진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과거와 같은 관행으로 다시 할 필요가 있나요.

아니, 차라리 이런 게 논쟁이 됐으니 이 시점부터 다시 국가가 어떻게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릴 것인가에 대해서 새롭게 개정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 같은 데도 보면 1차 세계대전 때 훈장을 주는 것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훈장을 주는 것이 완전히 바뀌거든요. 그런 것처럼 저는 충분히 지금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JP 훈장 추서를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부분 '국민통합'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누구나 공과가 있다"며 "본인들 인생을 되돌아보라"던 이완구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5.16 쿠데타나 유신체제 복무 등 '과'도 있지만, 이후 민주정권 교체의 '공'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그 논리에서 작금의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학자의 복기가 중요한 건 그래서다. 

"고인은 3선개헌을 반대하다가 돌아섰고, 유신 쿠데타를 지지하는 등 민주공화제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부적격한 행로를 걸었다. 6월항쟁 후 여소야대 정국에서 민주개혁이 시도될 때 노태우·김영삼과 손잡고 다시 반개혁 민자당 창당에 참여하여 역사의 퇴행에 공조하였다.

고인의 역할이 그나마 민주화에 기여했다면 김대중과 손잡고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대목일 것이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이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의 몫이 줄어들자 거침없이 박차고 나갔다. 국민의 정부는 휘청거렸고 민주화와 햇볕정책은 동력을 잃었다." (<한겨레> 26일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칼럼, '김종필, 그의 시비곡직을 가리자' 중에서)

황교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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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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