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아들을 인쇄소에..." 고학력 실업자 아빠의 선택

[십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고전 이야기]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보는 실업 문제

등록 2018.07.01 17:53수정 2018.07.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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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딸아.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의 첫 문장이란다.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으로 거론이 잘 안 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인상 깊은 문장이라고 생각해. 첫 문장으로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소설 전체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선언하거든. 소설 전체 내용을 암시하는 첫 문장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유명하긴 해.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두 도시 이야기>의 이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잘 정의할 뿐만 아니라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이기도 해. 수려하고 은유적이며 아름다운 문장이지. 그렇다고 해도 아빠는 소설 전체의 내용과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첫 문장으로는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가 더 윗길이라고 생각해. 우선 편안한 구어체이고 장황하지 않은 네 개의 단어만으로 한 시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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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 문학과지성사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는 <레디메이드 인생>의 시대적 배경 즉 1930년대 우리나라의 실업자 문제를 상징한단다. 사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실업자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어.

<1930년대 세계 대공황연구>(양동휴 편저,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에 따르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권시장의 대폭락과 함께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은 금방 전 세계로 퍼졌고 전 세계에 실업자가 무려 5천만 명이 생겨났단다.


공항이 발생한 이유는 많은데 우선 미국, 영국, 독일과 같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들의 공업생산이 격감했어. 철, 석탄, 기계의 생산량이 부진했는데 이런 품목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드는 생산력을 책임지는 것들이야. 생산력이 떨어지다 보니까 자본주의가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또 이 당시에 농산물의 가격이 폭락했단다. 면화, 사탕수수, 양모 가격이 반 가격 이하로 떨어졌어. 농업 국가의 농민들이 몰락했고 그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빈민이 되었단다. 도시 빈민들은 대다수 실업자가 되었지.

어디 그것뿐이냐? 신용공황과 화폐공황이 발생해서 서구의 많은 은행이 파산했지. 1930년대 조선도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공황의 영향을 받았단다. 당시 조선은 산업 기반이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 세계적인 공황까지 밀어닥쳤으니 실업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었어.

그 당시로서는 고소득을 보장하는 전문직만 빼면 어느 곳이든 취업이 가능한 보통학교 졸업생의 75%가 "아침에 뜨는 해도 보기 싫고 밤에 뜨는 달도 보기 싫은" 실업자가 되었다는구나.

일본 유학까지 한 인테리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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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P 역시 일본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신문사 사장에게 취업을 청탁하는 전형적인 고학력 실업자란다 ⓒ pixabay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P 역시 일본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신문사 사장에게 취업을 청탁하는 전형적인 고학력 실업자란다. 14살에 소꿉질 같은 장가를 갔고 자식까지 두었지만, 대공황의 영향으로 실업자가 되었고 아내와 이혼을 했지.

"인테리...... 인테리 중에도 아무런 손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증서 한 장을 또는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테리...... 해마다 천여명씩 늘어가는 인테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테리다. 부르죠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수효가 아니 느니 그들은 결국 꾀임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우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테리가 아니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테리인 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99프로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테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 메이드 인생이다." - <레디메이드 인생> 중

주인공 P는 자신을 비롯한 고학력자 실업자 문제를 수요와 공급의 문제로 여기고 있구나.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배워라! 글을 배워라…….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살 수가 있다'는 식의 외침이 방방곡곡에서 일어났어. 교과서와 학용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학교가 급증했지.

이런 조선 민중에 대한 지식보급은 보람이 있어서 조선인 교사, 면서기, 기자, 목사가 생겨났단다. 문제는 기술을 중심으로 한 직업교육보다는 지식 위주의 고등교육이 성행했다는 데 있단다. 조선의 지식인을 위한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급증하다 보니 주인공 P처럼 당장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취직 운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위 인용문에서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가는 인테리'라는 구절이 있잖아. '천여 명'이라는 수치는 작가 생각으로 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란다. 1927년에 발간된 <시사만평> 23호에 따르면 그해에 중학과 전문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한 사람이 천여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거든. 당시 조선의 인구가 대략 2100만이라고는 하지만 문맹률이 80%에다가 보통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50만이 채 되지 않았어.

수도 경성의 인구가 겨우 19만 명이었단다. 신식교육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경성에 살았지. 우리가 사는 경북 김천 인구가 15만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경성은 김천보다 조금 더 인구가 많았을 뿐이야. 김천보다 조금 더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 실업자가 매년 천 명씩 새로 생긴다고 생각해봐라. 당시 고학력 실업자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되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실업자인 주인공 P는 생계유지가 어려우면서도 자신의 학벌에 걸맞은 직장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 P는 기술은 없으면서 학벌 때문에 직업에 대한 눈이 높은 그 당시 조선의 고학력 실업자를 대표하기도 해.

"거 참 모를 일이요.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 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려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학교도 아니 마친 자제를 공장엘 보내요?" "내가 학교 공부를 해본 나머지 그게 못쓰겠으니까 자식은 딴 공부시키겠다는 것이지요." - <레디메이드 인생>


몇 달 치 방세도 밀리고 담배 살 돈도 여의치 않을뿐더러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도 급급한 실업자 생활을 하는 P는 자신이 인테리라는 것을 한탄한단다. 차라리 노동자였다면 거지 노릇이라도 해서 끼니를 때우겠지만 명색이 일본 유학까지 한 인테리인 그에겐 그런 용기도 없었어.

식민지 시대 실업자와 2018년 청년 실업자

자연스럽게 P는 고등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고 그 결과 보통학교도 마치지 않은 9살 난 외아들을 월급도 받지 않는 인쇄소에 취직시키려 해. 물론 공부를 시킬 형편도 못되지만, 실업자만 양산하는 고등교육은 해서 뭘 해라는 생각이 굳어진 것이지.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보건계열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잖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졸업하면서 간호조무사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하는데 학생들의 진로 문제를 고민하다가 의무부사관이 되도록 지도를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어. 근무조건이 열악한 곳이나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보다는 군인 공무원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지.

좋은 생각을 했고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의무부사관이 되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판단이 들자 뿌듯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빠도 군대 생활을 했는데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거든. 군대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장교시험에 응시하라고 소대장이 권유했는데 단칼에 거절했고 제대를 앞두고 부사관으로 지원하라는 홍보도 무시했어.

그땐 장교와 부사관이 부족했는지 심지어 제대를 앞둔 사병이 부사관에 지원하면 그동안 사병으로 근무했던 기간을 부사관 월급으로 합산해서 한꺼번에 준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뭐하러 군대 생활을 하냐며 비웃기까지 했거든.

그랬던 내가 제자들에게 평생 군대 생활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라는 자괴감이 든거지.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해서 더욱 신중하게 진로지도를 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더라.

언젠가 네가 아빠처럼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요즘 시대에 문학을 전공해서 어떻게 먹고 살겠냐고 버럭 화를 낸 일 기억나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실업 문제가 참 무서운 것이 그 폐해가 당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겠구나.

본인에게는 지옥 같았던 군대 생활을 제자에게는 권하고, 문학을 전공해서 평생을 먹고 살았으면서 자식에게는 그 길을 걷지 말라고 종용하니 말이다. 물론 아빠가 살았던 시대와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기성세대가 겪는 경험으로 다음 세대의 진로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또 다른 부작용이 있구나.

어쨌든 <레디메이드 인생>은 1930년대 조선의 실업 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자 좋은 역사 교과서임이 틀림없어. 일제강점기 때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는 외침이 세계 대공황을 맞아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했듯이, 어느 정도 스펙만 있으면 취업이 쉽게 되던 1980~90년대의 경제 호황기가 지나고 현재는 IMF와 세계금융위기 사태를 거치면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잖아. 확실히 고전 속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반복된다는 것이 실감되는 구나.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단편선

채만식 지음, 한형구 책임 편집,
문학과지성사, 2004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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