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만권 읽었다는 사람, 자랑할 일 아닙니다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31] 참된 독서법

등록 2018.07.03 23:35수정 2018.07.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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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도 잠자며, 자연과학은 경직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렇게 멋진 말을 듣거나 보면 그 말을 남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진다. 이 말을 남긴 '토마스 바트린'이란 사람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자료를 검색했지만, 과문(寡聞)한 탓에 찾지 못했다. 남의 글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전을 밝히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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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 unsplash


책은 인류의 중요한 경험과 지식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맹자>에 '독서상우(讀書尙友)'라는 고사가 나온다. 책을 읽음으로써 옛사람과 벗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사에는 남의 일이 없다. 천 년 전의 사람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을 오늘의 내가 똑같이 겪을 수도 있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려도 마치 겪어본 사람처럼 담담히 처리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자조론>의 저자 새뮤얼 스마일즈는 책을 좋은 친구라고 정의했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책은 참을성 있고 기분 좋은 친구다. 좋은 책은 어렵고 힘들 때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좋은 책은 항상 친절하게 반긴다. 젊어서는 즐거움과 가르침을 주고 늙어서는 위로와 위안을 준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데 독서만 한 것은 없고, 읽으면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 송나라 태종은 '개권유익(開卷有益)', 즉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흔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하여 고금동서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독서를 강조했고, 독서 관련 명언도 차고 넘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읽으면 해를 끼치는 책도 많다. 위험한 책, 불순한 책, 나쁜 책, 책의 탈을 쓴 가짜 책도 있다.

세계 역사상 최대의 파괴적 분란을 일으킨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나폴레옹 등도 독서광이었다. 그들은 많은 책을 읽고 그 자양분을 나쁜 일에 활용했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


좋은 책의 기준은 명백하다. 내 생각과 행동을, 그리고 삶을 조금이나마 건설적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다. 잔혹한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어떤 책을 읽고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는 좋은 책의 힘을 말해준다.

서점에 나와 있는 독서법에 관한 책만 해도 수십 권은 넘는 듯하다. 어떤 책이 조금 팔린다 싶으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 우리나라 출판계의 현주소이다. 근래에는 메타북(책에 대한 책-편집자 주)도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법의 백미(白眉)는 주희의 '독서법'이다.

"죄인에게 자백을 받아내듯이 읽어라"

여러 해 전 청계천 헌책방에서 <주자서당은 어떻게 글을 배웠나>라는 책을 만났다. 주자학의 핵심인 '주자어류' 가운데 독서법을 다룬 10권과 11권을 옮기고 풀어쓴 책이다. 옛 유학자들의 공부와 독서 철학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독서는 배우는 사람의 두 번째 일(讀書乃學者第二事)"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첫 번째 일'이란 스스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자에게 독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일이고, 독서는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독서는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구절은 시퍼런 칼날처럼 내 무딘 정신을 찌르고 들어왔다. 주희의 독서법은 책을 통한 치열한 도 닦기와도 흡사한 구석이 있는데, 주희에게서 비롯된 주자학을 도학(道學)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는 모름지기 마치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곧바로 적진에 뛰어들어 모조리 죽여 버리듯이, 마치 가혹한 관리가 옥을 다스림에 곧바로 죄인을 힐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듯 해야 한다. 오직 이와 같이 해야만 독서의 도에 통할 것이다."

이처럼 주자의 독서법은 무섭도록 서늘하다. 또한, 미련할 만큼 반복해야 한다는 구절도 나온다.

"무릇 사람이 열 번을 읽고도 이해되지 않으면 스무 번을 읽고, 다시 이해되지 않으면 서른 번을 읽고, 그렇게 쉰 번까지 읽으면 모름지기 이해되는 순간이 있게 된다. 쉰 번에도 깜깜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자질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열 번도 읽어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고 말한다."

주자가 강조한 반복 독서는 학문을 성취한 위인들의 독서법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도 무척이나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논어> '공야장편' 끝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열 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진심을 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자 자신의 재능이나 성품은 최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배움에 대한 정열만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엿보이는 구절이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자꾸 숙독하였기 때문에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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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을 빨리 읽는 것보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 unsplash


성인의 경지에 이른 공자와 같은 사람도 마르고 닳도록 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책이 아주 흔하지만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예전에는 어지간해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깊이 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계 역사상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든 군주는 세종대왕밖에 없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민족 앞에서라도 맘껏 자랑할 만하다. 한글은 현존하는 지구상 언어 중에서 과학성, 합리성, 독창성 등이 독보적인 문자이다.

세종이 어린 시절 하도 책 읽기에 빠져 눈병에 걸리자 부왕 태종은 내관을 시켜 그의 처소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워버리게 했다. 그러나 내관은 실수로 병풍 사이에 있던 <구소수간(歐蘇手簡)>을 미처 보지 못해 그냥 두었다.

이 책은 당송팔대가인 구양수와 소동파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인데, 세종은 이 책을 무려 1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훗날 임금이 되어서는 독서 장려를 위해 '사가 독서(賜暇讀書)'라는 독서 휴가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세종 시대의 눈부신 업적은 임금의 폭넓은 독서가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100권 빨리 읽기보다 1권 제대로 읽기

젊은 시절의 나는 잡식성 독서를 했다. 닥치는 대로 읽어치웠다. 그러다가 '수박 겉핥기식'의 독서로는 얻는 것이 적다는 것을 깨닫고 정독(精讀)하는 버릇을 들였다.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욕심을 애써 억제하고 천천히 책을 읽으니 은연중에 쌓이는 것이 있었다.

은근히 다독(多讀)을 자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언젠가 1만 권의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속으로 셈을 해보니 27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마다 책 한 권씩을 읽어도 9855권으로 1만 권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속독법으로 보았다고 대답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고, 그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니 깊이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유학자 양응수는 독서를 집 구경에 비유했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고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은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도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아주 실감 나는 비유이다. 서평 기사나 책의 서문만 훑어보고 그 책을 말하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잘 쓴 서평 기사도 책 전체의 내용과 행간에 숨어 있는 느낌을 전해줄 수는 없다. 서평은 서평일 뿐이다.

속독은 자랑할 것이 못 된다. 옛 현인들과 오늘날의 믿을만한 석학들은 오히려 정독과 숙독, 그리고 반복 독서를 권장하고 있다. 이황은 숙독(熟讀)이 가장 좋은 독서 방법이라고 했다. 송시열은 <맹자>를 천 번 읽었다고 한다. 100권을 빨리 읽는 것보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1250년에는 잉글랜드의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도 책을 3권 가진 경우는 비교적 행운에 속했다. 한 권은 성서였고, 또 한 권은 기도서였고, 또 한 권은 성인의 전기였다. 이 정도의 책값만 해도 웬만한 집 한 채 값에 맞먹을 정도였다.

(중략) 우리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간과하고 있다. 즉 우리는 책을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책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다는 이 말이 머리에 쏙 들어왔다. 아닌 게 아니라 공자와 맹자,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은 현대인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도능독(徒能讀)이란 말이 있다. 글의 뜻을 잘 모르고 한갓 읽기만 잘한다는 뜻이다. 류성룡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사람이 입으로는 다섯 수레의 책을 외지만, 그 뜻을 물으면 멍하니 알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도능독'을 경계했다.

책을 읽고도 참된 글맛을 모른다면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독서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참으로 유익한 독서란 자기 인생에 참으로 도움이 되는 길잡이를 골라서 읽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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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도 참된 글맛을 모른다면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유익한 독서란, 자기 인생에 참으로 도움이 되는 길잡이를 골라서 읽는 것이다. ⓒ 이명수


책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관을 발견했던 사람은 많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링컨이 변호사가 되고 미국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자양분은 바로 독서였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 졸업장보다 독서 습관이 더 중요하다. 어릴 적 책을 열심히 읽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다"라며 독서 예찬을 폈다. 인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한결같이 독서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자기 것을 만들어 내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이제는 신문이나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독서량 감소가 TV와 인터넷, 휴대전화 등의 접촉 시간 증가에 따른 현상이란 분석도 있다. 속도와 효율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정보화 시대엔 인터넷도 충분히 정보 획득용 대체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다. 종이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그것, 바로 서권기와 문자향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세태는 갈수록 깊은 사유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은 항상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남아돌아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독서상우(讀書尙友) #개권유익(開卷有益) #좋은 책의 기준 #도능독(徒能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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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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