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정권교체, 그런데 '독재자'가 돌아왔다

고문 피해자들의 시선으로 본 2018년 말레이시아 총선, 마하티르의 복귀

등록 2018.06.30 11:08수정 2018.07.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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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말레이시아 행정수도 푸트라자야에서 열린 '하리 라야 이둘피트리' 총리 관저개방 행사 중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 '하리 라야 이둘피트리'는 이슬람 금식월 라마단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무슬림 최대 명절이다. ⓒ 이슬기


말레이시아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지난 5월 9일 치러진 14대 총선 결과, 60여 년간 집권했던 통합말레이국민당(UMNO)과 이들이 이끄는 여권연합 국민전선(BN)이 처음으로 의석 과반수를 잃고 야당이 됐다. 2008년 총선에서 UMNO의 2/3 의석 신화를 흔들기 시작한 야권연대의 '정치적 쓰나미'가 10년 만에 희망연대(Pakatan Harapan)의 정권교체로 완성됐다.

대신 말레이시아 시민사회가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애증의 지도자 마하티르 빈 모함마드(93)가 새 정부의 총리다. 마하티르는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모델로 말레이시아를 22년간 통치하면서 국부(國父) 와 독재자라는 수식을 동시에 끌고 다녔던 정치인이다. 2003년 그는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정권교체로 돌아온 '국부-독재자'... 말레이시아는 '적응중'

"취재 현장에서도 기사를 쓸 때도 더 큰 자유를 느끼지만, UMNO 정부가 아니라는 것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말레이시아의 주요 영자 일간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New Straits Times) 기자 노르 아인 모하메드 라디처럼 시민들은 역사상 첫 정권교체와 마하티르의 복귀 같은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다. UMNO와 국민전선 정부의 부정부패, 억압적 통치를 비판하던 시민사회 활동가 끄칙은 "너무 기쁘다가도 이제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실업자가 된 것 같다"라고 첫 정권교체 직후 느낀 허무함을 표현했다.

UMNO 정부 마하티르 시절(1981~2003) 고문 피해자들은 희망연대 정부 수장으로 돌아온 마하티르를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나 같은 사람들은 마하티르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이런 생각은 여전히 비주류다. 지금은 마하티르에 대해 뭐라도 반대하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화를 낸다. 마하티르를 새로운 말레이시아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탓이다."

국가보안법(Internal Security Act) 위반 혐의로 재판 없이 구금됐던 노조운동가 아이린 하비에르(Irene Xavier)의 말이다.

마하티르, 국가보안법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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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하비에르국가보안법(Internal Security Act) 위반 혐의로 재판 없이 구금됐던 노조운동가 아이린 하비에르(Irene Xavier). ⓒ 이슬기


아이린은 1987년 10월 31일 싱가포르 경찰에 체포돼 말레이시아 경찰 특수부로 넘겨진 뒤 고문 끝에 까문띵(Kamunting) 형무소에 1년간 구금됐다. 인종 갈등 격화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1987년 10월 27일 시작된 '잡초제거 작전(Operasi Lalang)'에 따라 경찰이 긴급 체포한 106명의 정치인, 교육자, 노조운동가, 여성인권운동가 중 한 명이다. 여성은 아이린을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세 개의 일간신문(The Star, Sin Chew Jit Poh, Berita Harian)과 두 개의 주간지(The Sunday Star, Watan)도 정부 조치에 따라 폐간됐다. 이 '잡초제거 작전'은 말레이시아 현대사에서 1969년 5월 13일 인종 폭동 이후 가장 중대한 정치적 사건으로 꼽힌다.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발표했지만, 106명의 자세한 혐의 내용은 여전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이린은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 지도부 교체를 위해 노동자 교육 활동을 했던 것이 체포의 주된 사유라고 보고 있다.

"당시 노조 지도부는 정부와 매우 가까웠다. 경찰에서 내 활동을 음모조직 활동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체포되기 한 달 전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노동운동가의 국가전복 음모론 자백과 비슷한 이야기를 말레이시아에서 연출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1987년 9월 싱가포르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들이 체포됐고, 이들이 TV에서 음모조직의 일부라고 '자백'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아이린으로부터 비슷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폭력적인 조사 방식을 동원했다. 아이린이 2001년 말레이시아 여성단체를 통해 발표한 고문경험기록(https://bit.ly/2l4CXoK)에 따르면, 경찰은 아이린 오랜 기간 복용해 온 궤양성 대장염과 자궁내막증 약을 압수했고, 특히 심문 과정에서 각목으로 다리를 심하게 구타했다.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심문 과정에 여성 경찰을 참관시켰지만 언어적 성폭력이 계속됐다.

"국가보안법은 경찰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고문을 하고 그 사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졌다. 60일간 잡혀 있으면서 어떤 외부인도 만날 수 없고, 아주 심한 폭력이 행사되더라도 신체적으로 회복되고 경찰이 회유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1일 슬랑오르 여성의친구들 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아이린은 최근 심해진 무릎 통증으로 인해 걷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심문과정에 반복된 이름, 날짜 질문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마하티르는 권좌에 있을 때의 일을 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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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9일 14대 총선을 통해 15년만에 다시 총리직에 오른 마하티르 모하마드의 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된 445일: 1987~1989 잡초제거작전'의 저자 쿠아 키아 숭은 당시 총리와 내무부 장관을 겸직했던 마하티르의 승인 없이 경찰과 사법기관이 독단적으로 국가보안법 혐의자들을 구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해왔다. ⓒ 이슬기


마하티르는 2017년 11월 1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억류자'라는 제목의 글(http://chedet.cc/?p=2657)을 통해 "잡초제거 작전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들에게 고문이 가해졌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법에 반하는 일이다"라며 "체포가 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나를 향한) 비난을 받아들인다"라고 밝혔다. 그가 글을 올린 날은 시민사회가 주최한 잡초제거 작전 30주년 기념 포럼이 열린 다음 날이다.

1987년 '잡초제거 작전'에 대해 마하티르는 자신이 체포를 명령한 적이 없고, 모함마드 하니프 오마르 당시 경찰총장(1974~1994)의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된 445일: 1987~1989 잡초제거작전>의 저자 쿠아 키아 숭은 당시 총리와 내무부 장관을 겸직했던 마하티르의 승인 없이 경찰과 사법기관이 독단적으로 국가보안법 혐의자들을 구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해왔다.

말레이시아 인터넷뉴스매체 <말레이시아 투데이>(Malaysia Today)의 2017년 10월 16일 보도(https://bit.ly/2xZ2h8V)에 따르면,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구금됐던 정치학자 찬드라 무자파르는 국가보안법과 고문 사실 등에 대한 마하티르의 성찰을 강조한다.

'마하티르가 사과를 하는가 안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권좌에 있을 때 한 일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다. 마하티르의 변화는 순전히 권력과 정치에 의한 것이며, 그의 목적은 나집 라작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뭐든지 한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그에게는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한다.'

15년만에 다시 총리가 된 마하티르를 향해 피해자들은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고문 등 과거 국가폭력에 대한 정부의 성찰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무나르 아니스 박사는 말레이시아 독립 인터넷 뉴스매체 <말레이시아키니>(Malaysiakini)에 게재한, 마하티르에 보내는 서한(https://bit.ly/2JLIlLk)에서 '말레이시아가 진정 의미 있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과거의 모든 잘못을 돌아봐야만 한다. 나를 포함해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해서 쌓은 민주주의는 전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정의를 달라'고 말한다. 아니스 박사는 안와 이브라힘 전 부총리의 연설 원고 작성자다. 1998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돼 심문과정에서 경찰의 고문 끝에 안와 이브라힘과의 동성애 관계를 강제 자백하고 풀려난 후 말레이시아를 떠났다.

1960년 의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됐던 국가보안법은 2012년 시민사회의 오랜 압박 끝에 폐지됐다. 곧바로 국가보안법을 대체하는 2012 안보위협특별조치법(Sosma)이 도입됐다. 말레이시아 인권단체들은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는 기간이 60일에서 28일로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신체적·정신적 가혹행위를 동원한 심문을 용인하는 법이라고 비판해왔다. 새 정부의 내무부는 2012안보위협특별조치법, 2015테러방지법(Pota), 1959범죄예방법(Poca) 등 국가안보를 위해 마련됐지만 인권과 시민사회의 자유를 억압할 소지가 있는 보안법들을 검토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여전히 인권은 억압받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변화를 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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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한 발걸음'말레이시아 여성운동단체 슬랑오르 여성의 친구들 연맹(Persatuan Sahabat Wanita Selangor) 사무실에 걸려 있는 그림 '자유를 향한 발걸음(Walk to the Freedom)'. 홍콩 이주노동운동가 마벨 아오(Mabel Au)가 그린 작품으로, 말레이시아 노조운동가 아이린 하비에르에게 연대의 의미로 선물했다. ⓒ 이슬기


아이린은 <그라지라>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에 시작돼 2018년 정권 교체로까지 이어진 변화로부터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첫 100일간 마하티르가 시스템을 얼마나 개혁하는가를 지켜봐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변화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2008년 총선에서 야당들이 의석을 늘리기 시작했을 때, 2013년 총선부터 유권자들이 야당을 찍기 시작했을 때, 2014년 벌세(Bersih, 말레이시아 공정선거운동)의 2013 총선 결과 분석자료가 나오고 시민들이 UMNO와 국민전선 정부의 선거 개입과 조작 사실을 자료로 확인한 후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올해 시민들이 공격적으로 선거조작을 막고 투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다."

아이린은 마하티르가 돌아왔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법들이 여전히 살아있지만 실망하기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동료들이 많이 있다. 오늘의 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해 온 사람들인데, 적어도 나는 살아서 변화를 봤지 않나."
덧붙이는 글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그라지라> 여름호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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