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잘 곳이 없어요" 예멘 난민, 내 문제가 되다

[어느 제주도민이 바라본 난민 문제 ①] 오남매를 품어준 '천사'... 나는 빚을 졌다

등록 2018.07.01 13:09수정 2018.07.0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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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체류 중인 예멘 난민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무슬림을 혐오하는 날선 말들이 오가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갈 곳 잃은 예멘 난민들을 품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제주도민의 목소리를 두 편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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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6월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10일 일요일 오전, 지인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긴 글이 하나 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미술치료사 지영(가명)씨였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렴한 숙소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돈이 떨어져 곧 나와야 할 처지라고, 그중에서도 아이나 여성이 있는 가족들이 당장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나 기관의 별다른 도움 없이 알음알음 개인의 도움으론 숙박비를 대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함께 보내온 사진엔 나란히 선 어린아이들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막 미술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내전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져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곳까지 흘러온 아이들. 너무도 착하고 예쁜데, 자꾸 눈치를 보는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나는 이들과 벌써 '구면'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제주, 그 안에서도 원도심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화려하기보다 실속 있는 숙소들이 많은 이곳. 이를테면 '공항 근처의' '가성비' 따위의 수식어를 붙일 만한, 게스트하우스나 관광호텔 같은? 내 생활 반경 안에서 소위 '아랍계'로 보이는 무리를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국 관광객이 떠난 원도심에서 낯선 외모의 그들을 마주친다면 대번에 눈길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고 보니 얼핏 기사를 본 것도 같다. '제주서 예멘인 500명 난민신청...' 그때만 해도 내 이야기로 와 닿지 않아 넘겼다. 하지만 이로써 '예멘에서 온 난민'이 '내 가까이 살고 있음'이 아주 분명해졌다. 난민의 문제는 이제 내 문제가 되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이 오갔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시급한 것은 숙소였다. 빈집이 있다면 좋지만, 저렴한 숙소나 텐트도 좋다고 했다. 홈리스가 될 사람들에게 텐트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다음으로는 먹을 것. 다른 문화 탓에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 외 요리도구라든가 침낭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몇 명 되지 않는 채팅방 속 사람들이 텐트와 코펠을 챙기겠다고, 지인들에게 숙소를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돈을 부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가장 쉽게 떠올린 게 돈을 보내는 일이었다.

돈으로는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즉석밥이나 캔 음식을 살수도 있고 숙박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돈을 내면 누가 얼마나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돈만으로 되지 않는 건 어쩌고... 얼핏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대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거,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는데? 도움이 필요한 건 분명한데, 소수로는 곤란하다.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데, 도대체 누구에게 알리지?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논란에 휘말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머지않아 누군가와 논쟁 아니, 언쟁을 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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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멘 난민 신청자가 6월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관계자와 인권상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날 오후 성당 미사 시간. 주보 속 깨알 같은 글자 중 유난히 크게 들어온 글자가 있었다. 예멘 난민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침 신부님이 이야기를 꺼내셨고, 나는 한 줄기 희망을 봤다.

미사 뒤 성당 모임에서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미사 후 이어진 교리수업 말미에 한마디를 겨우 꺼냈다. 기회를 기다리며 떨었다. 무슨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난민 돕자고 말하는 게 이렇게 떨 일인가?

그리고 그날 저녁, 어느 한 분이 성당모임 단체채팅방에 글을 남겼다. 예멘 난민 이야기를 듣고 찾아봤는데, 반응들이 놀랍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캡처된 내용은 이슬람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친 댓글들이었다. '시작이구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날카로웠다. 찔리고 베이는 기분.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반감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사람 대 사람으로 봐 달라고 답변드렸다. 솔직히 나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제 그 마음부터 거두겠다고, 무엇보다 난민 문제를 흘려듣지 않고 찾아봐주신 자체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분 덕분에 채팅방에서도 내가 들었던 예멘 가족의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성당모임의 다른 분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늦게 글을 봤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아직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난민을? 숙소에서 나와야 할 다섯 아이와 아빠의 보금자리를 구하겠다는 말에, 정말 도움을 받아도 되나 망설여질 정도였다. 나도 감히 생각 못 한 일이었다. 이렇게 천사 같은 분도 내 옆에 사는구나. 꿈같은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지영씨에게 전했다. 그녀는 울었다. 감격과 안도의 눈물이었다. 설움과 막막함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녀도 다른 가족을 이사시키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뛴 날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난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녀가 누구보다 더 마음을 쓴다는 걸. 좋은 의도로 움직이지만 자꾸만 돌부리에 걸리고 있다는 걸.

마음이 굳어버린 사람들... 나는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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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난민 반대 청원글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다음 날이었던가. 난민 신청자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할 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다행이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곧 지역 '맘카페'(엄마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편집자 주)가 술렁였다.

게시물 제목 속 '예멘'이라는 글자에 이끌려 클릭했지만 역시나 내용은 기대와 달랐다. 반감과 두려움이 가득한 글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지만 뉴스와 기사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진짜 무서운 게 그거다.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불확실성과 불안이 겹치면 공포는 걷잡을 수 없다.

시작은 익명게시판이었다. 댓글들이 험악했다. 익명게시판의 자연스러운 특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의 논쟁이 이어지며 자유게시판으로 불씨가 옮겨붙었다. 이제는 대놓고 험한 말이 오갔다. 글들만 보면 이 맘카페에는 난민을 옹호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였다.

나 역시 댓글 달기조차 무서울 정도였다. 누군가 난민 옹호 글을 올리거나, 반대 글에 난민 옹호하는 댓글이 달리면 가차 없었다. 난민을 옹호하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하거나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자국민을 배신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처럼 비쳤다. 댓글에서 흔히 오간 표현을 빌리자면 '인권팔이'나 '감성팔이' 정도? '미쳤냐'라든가 '정신 나갔냐'는 험악한 반응도 있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이유는 많다. 멀쩡한 차림으로 비행기를 타고 온 '건장한 남성들'이니취업이 진짜 목적일 것이다, 그들 때문에 우리 세금이 나가고 범죄가 늘면 어쩔 것이냐 등등. 물론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전쟁을 피해 왔으니 건장한 남자들이 많은 게 당연하고, 자국에서 워낙 먼 곳이니 비행기를 탔을 테고, 그들도 본래 자기 삶이 있었을 테니 아직은 차림이 멀쩡할 것이라고 이해했다. 범죄는?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범죄자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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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난민을 둘러싼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난민법과 무사증(무비자)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위 사진)가, 세종로파출소 앞에서는 난민 반대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논란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커지고 커지면서 국민청원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시위를 하겠다고 했다. 가짜뉴스나 괴담에 대한 해명 등 언론에서 연일 오해를 풀려고 해도 소용없는 듯했다. 다들 '너희가 아무리 떠들어봐라, 우리가 속나'라고 콧방귀를 뀌는 것 같았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버린 게 아닐까. 굳어도, 아주 단단히 굳었다.

좌절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예멘 오남매의 거처를 구해준 그분에게 몹시 미안해졌다. 난민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마음이 시달리는데, 어린 아이들을 품어준 그분은 오죽할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매일. 내가 괜히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은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알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오남매 아이들이 너무들 착하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다음 편에 계속)
#예멘 #난민 #우리곁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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