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54화

화장품 안 부숴도 괜찮아, 나만의 '탈코르셋'

[거울 앞에서] 꾸미고 싶은 대로 꾸미되, 우선순위 새로 세우기

등록 2018.07.06 17:57수정 2018.08.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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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꾸밈노동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더불어 나부터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지 말자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탈코르셋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성형외과 광고가 말했다. "네 얼굴은 충분치 않아, 뜯어 고쳐야 할 부분이 산더미라고." 화장품 광고가 말했다. "네 얼굴의 단점까지 완벽하게 극복하게 해줄게." 다이어트 광고가 말했다. "뚱뚱한 여자를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충분치 않다, 꾸미지 않고선 사랑할 수 없다. 타인들이 보기 좋은 모습, 그리고 스스로도 예뻐진 모습은 사소한 대우조차 틀려지리니. 나이가 드는 여성을 향한 주름제거 수술, 안티에이징 세럼, 보톡스 등등 오랜 시간 외모 코르셋은 그녀들의 시간과 돈을 빼앗아왔다. 우리는 알고 있다, 늙어가는 얼굴을 부정하는 이유를.

나 역시 꾸미는 걸 좋아하는 20대 여대생이다. 나는 여성들이 남들이 뭐라든 '맘껏' 꾸미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 타인의 평가와 시선 때문에 불편함까지 감수하는 꾸밈은 지양한다. 여성을 겨냥한 도 넘은 광고를 비판한다. 여성들의 우선순위가 새롭게 세워지기를 바란다.  

나는 왜 불편함을 스스로 껴안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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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들이 남들이 뭐라든 '맘껏' 꾸미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 타인의 평가와 시선 때문에 불편함까지 감수하는 꾸밈은 지양한다 ⓒ unsplash


왕년에 코르셋을 입은 그녀들은 스스로도 '잘록해진' 허리가 예뻐서 입지 않았을까? 아니면 '잘록한' 허리를 미의 기준으로 삼은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꽉 끼는 코르셋 때문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째서 그녀들은 완벽한 몸매를 맹목적으로 추구했을까? 몸의 아름다움을 몸의 편안함보다 우선시하는 모순된 흐름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남성은 허리 위로 빗질만 잘 해도 잘 꾸민 남성이 된다. 불편한 하이힐과 치마를 껴입지 않아도, 멋부린 옷차림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얼굴, 가슴, 다리, 손톱, 제모... 심지어 소음순 축소 수술까지 등장할 정도니. 외적인 아름다움은 몸의 불편함마저 침묵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왜 꾸미기 시작했을까. 먼저 화장은 내 얼굴의 단점을 가려주었다. 사람들은 '예쁘다'며 칭찬했고 나는 뿌듯했다. 찰랑찰랑 긴 머리는 여성스럽다 했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는 밋밋한 모습을 밝혀줬다.


멍청해 보인다는 안경을 벗고 컬러렌즈를 끼니 훨씬 보기 좋다고 했다. 늘 바지만 입던 내가 짧은 치마를 입으니 '이제야 여자 됐네'라며 태도를 달리 했다. 잘 꾸미고 다니니 사람들의 대우와 말도 달라졌다. 스스로 보기 좋은 모습은 타인도 좋아했다.

꾸며진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안 꾸민 날은 마스크와 모자를 써야만 타인을 만날 수 있었다. 화장을 못해서 단점이 부각된 얼굴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편하게 입으면 안 꾸미고 다닌다고, 가볍게 화장하면 꾸밀 줄 모른다는 소릴 들었다.

친한 친구는 오전 강의까지 결석하며 '오늘 너무 못생겨서 나가기 싫어'란 자괴감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늘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사적영역이었다.    

짧은 치마를 입는 날은 강의 시간에도 수시로 치마를 신경 써야 했다. 모든 행동을 조심, 또는 불안하게 움직여야 했다. 진한 눈 화장을 하면 혹여 번질라 거울에 잡혀 있었다. 높은 하이힐은 조금만 멀리 걸어도 퉁퉁 부었고 뛸라치면 발이 아팠다. 렌즈로 빨개진 눈은 아팠고 늘 건조했다. 긴 머리는 자꾸만 흘러내려 걸리적거렸다. '잘 꾸민' 하루는 불편함 투성이었다.

나는 왜 불편함을 스스로 껴안았을까. 그냥 "예뻐 보이니까"였다. 건강보다, 시간보다, 내 몸의 편안함보다, '외모'가 분명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긴 시간을 내 외모를 꾸미는 데 투자했다.

계절마다 걸맞은 화장품들을 구매하는 데 돈을 썼다. 아무리 불편하게 느껴도 나의 여성성을 돋보이게 하는 옷차림과 신발을 선택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금세 우울함과 짜증에 빠졌다. 끝나지 않는 수레바퀴였다.

나만의 '탈코르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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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반짝이는 귀걸이를 좋아하고 펄럭이는 꽃무늬 치마를 좋아한다. 앞으로도 꾸밈노동 자체를 포기하진 못할 것 같다. 다만. ⓒ unsplash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꾸미는 것이 자기 만족이라 해도, 불현듯 느껴지는 불편함까진 끌어안지는 말자고. 내가 생각하는 탈코르셋은 모든 꾸밈활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을 가두는 모든 프레임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며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난 화장품을 부수지도, 치마를 거부하지도 못했다. 난 여전히 반짝이는 귀걸이를 좋아하고 펄럭이는 꽃무늬 치마를 좋아한다. 앞으로도 꾸밈노동 자체를 포기하진 못할 것 같다. 다만, 나는 나만의 '탈코르셋'을 재정립했다.

난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꾸민다. 다만 타인의 평가에 구애받지 않는다.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내가 편한 단발을 한다. 아침에 바쁘고 피곤하면 타인에게 보기 안 좋다는 노메이크업을 하거나 편한 안경을 쓴다. 내 얼굴이며 내 몸이기에, 타인이 멋대로 이래라 저래라 개입하게 놔두지 않는다. 꾸미는 것이 '자기만족'이라면, 꾸미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노출이 많은 옷을 입었다고 성범죄의 이유가 될 순 없다. 치마를 입었다고 몰카(불법촬영) 의 이유가 될 순 없다. 더불어 꾸미지 않았다 해도 자기관리를 안 한다거나 여성스럽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오로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꾸미고 행동해야 한다.

나는 꾸미고 싶은 대로 꾸미되 우선순위를 새롭게 세웠다. 외모를 미루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았다. 화장을 줄이니 화장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좋았다. 짧은 머리를 하니 드라이 시간이 줄고 활동에 편안함을 느꼈다. 여유로워진 아침 시간에 영어듣기를 하고 매번 생략하던 아침밥을 챙겨먹었다. 화장품 구매에 쓰던 돈은 책을 구매하거나 여행자금에 투자했다.

또 보기 좋은 외면보다 몸의 편안함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하이힐과 치마를 추구하지만 활동할 때 불편하면 과감히 포기한다. 강의 시간에 치마 속 보일라 불필요한 신경을 쓰거나, 발이 퉁퉁 부어도 예뻐 보이려 아픈 구두를 신지 않는다. 외면에 대해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며 신경 쓰기엔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훨씬 많다.

마지막으로, 꾸미지 않은 모습에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으려 한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외모강박에 밀어 넣는 다양성이 상실된 미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외모 의 단점을 '맞아, 나 이렇게 생겼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안아주려 한다.

우리의 모습을 누구도 비난하거나 평가하거나 조롱할 수 없다.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의 우선순위를 새로 세우는 일, 탈코르셋의 시작 아닐까.
#탈코르셋 #페미니즘 #외모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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