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앞에서 등목까지... 보수단체의 '24시간 난동'

[현장] 덕수궁 담장 앞 나란히 설치된 쌍용차 분향소와 보수단체의 분향소

등록 2018.07.04 16:56수정 2018.07.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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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단체에 둘러싸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 설치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를 박근혜 지지 극우단체 회원(일명 태극기부대)들이 에워싸고 설치 반대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분향소에서는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시신이 다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그 망령을 되살려서 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세력들이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아래 국본)와 쌍용차범대위 등 시민사회단체의 '대한문 대치'가 하루 넘게 이어졌다. 국본 참가자들은 대한문 분향소를 의자로 에워싼 채 쉬지 않고 "시체팔이 쇼쇼쇼"라는 막말을 뱉어냈다. 바로 옆에 방송차량을 세워두고 "쌍용차 지부장 상복도 입고 성공했네"라는 조롱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결국 쌍용차범대위는 분향소를 덕수궁 담장 쪽으로 이동했다.

쌍용차 분향소가 대한문 앞에 설치되고 하루가 흐른 4일 오전에도 시민들은 숨진 해고노동자를 조용하게 애도할 수 없었다. 사방에서 꽂히는 욕설에 시민들은 마음 편히 헌화할 수 없었다.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작은 말다툼과 실랑이들이 이어졌다.

한 국본 집회 참가자는 "누구 하나 죽여 버려야지"라며 가방에서 망치 모양의 막대기를 꺼내 휘두르기도 했다. 의자를 발로 차거나 분향소를 향해 내던지기도 했다. 충돌 과정에서 부상자도 속출했다. 국본 집회 참가자가 장석원 금속노조 대외협력부장의 오른팔을 꽉 부여잡아 당겨,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야만을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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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단체에 둘러싸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 설치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를 박근혜 지지 극우단체 회원(일명 태극기부대)들이 에워싸고 설치 반대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분향소에서는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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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분향소 지키는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 설치한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박 극우단체 회원들(일명 태극기부대)은 분향소 설치에 반대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자신을 인천에서 온 국본 회원이라고 밝힌 여성(50대 후반)은 "여기는 국본이 예전부터 있던 곳이고 집회 신고도 했다"라며 "주말에 대한문 앞부터 저기(시청역 출구 2번 출구)까지 꽉 찬다"라고 했다. 그는 "여기서 (쌍용차 분향소가) 계속 버티면 싸움밖에 안 일어난다"라며 "다른 데로 가야 한다"라고 했다.

국본과의 대치 속에 쌍용차범대위는 4일 오후 1시 분향소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하지만 추모제는 국본이 내뿜는 음악소리와 외침 등에 묻혀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었다. 국본은 "나가라, 철수해라"라고 고래고래 외쳤다.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이크를 잡은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야만을 목격하고 있다"라며 "노동자들이 살겠다고 외치는 것이,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것이 이렇게 험난한 일인지 몰랐다"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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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 분향소쪽으로 물 붓는 극우단체 3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가 설치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박 극우단체 회원들(일명 태극기부대)이 분향소 설치에 반대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일부 극우단체 회원들이 '등목'을 하며 물을 부어 분향소쪽으로 흘러가도록 하고 있다. ⓒ 권우성


굳은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남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라며 "저와 동료들은 24시간 잠을 못 자고 있지만 설사 이곳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라고 했다. 김 지부장은 "저와 동료들은 무서울 것이 없다"라며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다만 지부장으로서 더 이상 31번째 노동자, 동료를 떠나보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태연 쌍용차범대위 상황실장은 "분향소 설치 기자회견을 하기 전, 대한문에서 집회하는 보수단체 책임자들을 만나 우리 의도를 정중히 설명했다"라며 "집회하려는 게 아니라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이고 보수단체의 집회하는 시간이나 날에는 우리는 집회를 열지 않겠다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추모제 마치고 분향소 이동... 난동에 지연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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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담장 앞으로 이동한 쌍용자동차 분향소 ⓒ 신지수


그는 "하지만 분향소를 설치하고 나서 하루 동안 50년 평생 살면서 먹은 욕보다 10~20배는 더 많이 들은 것 같다"라며 "그래도 대응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보수단체와 다투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다"라며 "우리는 자본과 정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쌍용차범대위는 분향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추모제를 마친 오후 2시 10분부터 분향소를 바로 움직이려 했지만, 국본 집회 참가자 일부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1시간이나 걸렸다. 분향소는 대한문 앞에 설치된 화단 인근에서 시청역 2번 출구 방향으로 이동, 덕수궁 담장 앞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에는 '님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국본의 분향소가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 #대한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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