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몸뚱이가 찾은 요물같은 운동

[40대, 운동할 나이]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조금만 더

등록 2018.07.06 17:57수정 2018.07.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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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도 활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나이 40대. 날씬하고 예쁜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몸, 에너지 넘치는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 5분, 10분이라도 짬을 내어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저질체력 극복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소설가 김연수는 수필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활수(滑手)의 상태를 경험한다고 썼다. 활수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시원스럽게 잘 쓰는 씀씀이"다.

매일 1시간씩 달린다는 그는, 달리면서 느끼는 고통보다 매일 뭔가를 끝낸다는 경험을 선택할 때, 달리기가 끝나고 난 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삶을 만끽하려는 넉넉한 활수의 상태가 생긴다고 한다.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 활수의 상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탓에 그의 말이 별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저 운동이란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 수단이었으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폭삭 삭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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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를 대며 운동을 미뤘지만 마흔을 넘으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 unsplash


내가 기억하는 한, 난 한 번도 날씬해 본 적이 없다. 우량아로 태어나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잘 먹어서 늘 통통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먹었던 내 놀라운 먹성이.

살은 무섭게 쪘지만 이미 파이팅 넘치는 식욕을 제어할 자제력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외모에 눈을 뜨게 된 나는 그때부터 온갖 다이어트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나름 열심히 했다. 헬스를 시작으로, 요가, 테니스, 조깅, 근력운동, 사이클, 홈트 등등. 그러나 꾸준히 하지 않으니 다시 요요가 왔고 또 살이 찌고 다시 운동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어렵사리 빼고 허무하게 금세 다시 찌니 내가 이러려고 살을 뺐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그 와중에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 걸려 몸이 더 처지게 되자 운동은 점점 멀어져 버렸다.

핑계를 대며 운동을 미뤘지만 마흔을 넘으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모습이 폭삭 삭아있는 것 아닌가. 얼굴과 몸의 모든 피부는 중력의 법칙에 충실해 한껏 처졌고, 혈색도 칙칙했다. 체력은 급격히 떨어져 금세 지치는가 하면, 몸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30대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40대가 결정되고, 40대를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50대가 결정된다더라."

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인즉슨 지금의 삶이 내 미래를 결정한다는 요지였는데, 몸도 그렇겠구나 싶었다. 다이어트는 둘째 치고, 이제는 '건강'과 '생존'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늘 치열한 갈등을 겪는다. 

'이번 달은 바쁘니까 다음 달부터 하지 뭐.'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걷고 계단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미루거나 타협하기 일쑤였다. 꾀가 늘어날수록 드러눕는 시간은 많아졌고, 늘어진 몸은 체력도 끌어내렸다.

'지루하지 않고 좀 재밌게 할 수 있는 운동 없을까.'

그때 엉뚱하게도 '춤'이 생각났다.

미친 척, 탱고클럽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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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에요." ⓒ (주)에스와이코마드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에요."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탱고에 서툰 여성에게 춤을 청하면서 한 말이다. 음악과 춤, 그리고 여성을 부드럽게 리드하던 중년의 알 파치노가 이보다 더 멋있을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우러진 명장면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탱고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난 몸치라 완전 뻣뻣한 로봇 수준이어서 선뜻 나서질 못하다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미친 척 하고 도전이라도 해보자 싶었다. 무엇보다 춤이 40대와 50대에게 좋은 운동이라는 점, 그리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또 더 늦기 전에 한 번쯤 하고 싶었지만 못해 본 것을 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극소심 모드로 탱고 클럽에 간 게 지난해 5월. 예상대로 내 몸은 매번 마음과 극심한 분열 상태를 일으켰다. 그런데 탱고가 아주 요물스럽게 재밌다는 게 함정. 내 실력은 일천할지언정 음악에 맞춰서 스텝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상상 그 이상으로 짜릿했다. 그 맛을 본 덕분에 나름 꾸준히 했다.

그런데 한 6개월쯤 지나도 이 놈의 저주받은 몸뚱아리는 계속 버퍼링에 걸려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줄 모르는 거다. 동작이 어려워질수록 스텝은 요가처럼 꼬이고, 겨우 하나 넘어가면 그 전 동작이 생각 안 나고...

몸이 안 따르면 머리라도 좋든가, 머리가 안 되면 리듬감이라도 있든가 해야 하는데 둘 다 안 되니 할 때마다 고구마 100개는 먹은 것 같고, 어느 순간부터 속상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도 치이는 삶인데 취미 활동하면서까지 치이는 것 같아 싫기도 하고, 뭐 하나 잘하는 게 이리 없을까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서 "에이~ 안 해!" 하면서 때려치웠다.  

하지만 2달을 가지 못했다. 그동안 배운 게 아까우니 일단 다시 해보고 아니면 진짜 접자는 비장한 각오로 다시 탱고 학원을 갔는데, 이럴 수가! 다시 스텝을 밟는 순간, 잃어버렸던 지갑을 찾은 것처럼 행복했다.

서툴더라도 리듬에 나를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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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경>을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펜션 주인이 손님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방법이 매우 인상적이다 ⓒ ㈜스폰지이엔티


다시 리셋하고 배우기로 결심하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근육 운동할 때 한계라고 생각하는 거기서 10회 더해야 하는 것처럼, '이제 아닌가봐' 하는 지점에서 아주 조금 더 가보기. 곰곰 생각해 보면 흥미와 재미를 떨어트린 범인은 '조급함'이었던 것 같다.

영화 <안경>을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펜션 주인이 손님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방법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저 간단한 그림과 메모를 건네는데, 목적지 근처에 이르렀을 즈음 참고하라는 메모에는 이런 설명이 쓰여 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80미터 더 가서 오른쪽."

탱고뿐만 아니라 모든 게 마찬가지 아닐까. 아닌가? 맞나? 그만가야 하나? 의심되고 불안한 순간에 조금 더 가보는 것. 그 지점을 넘어야 다음이 있다.

누구든 '왠지 불안해지는 그 지점'에 서 있게 될 때가 있다. 어쩐지 40대란 더 그런 지점인 것 같다. 직업으로서의 글 쓰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노후를 준비한답시고 시작한 자격증 공부를 계속 하는 게 맞을까.

내가 잘 살아온 건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고민이 깊었던 요즘. 소설가 김연수처럼 매일 하지는 못하지만 탱고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 것은 나에게 약이 되어 주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건강해지기도 했고, 자세도 좋아졌다. 또 조급함과 힘을 빼고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불안해도 조금 더 해보고 가보는 용기도 얻었다.

난 아직 활수의 상태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춤을 추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라고. 좀 서툴더라도 리듬에 나를 맡기고 즐기기만 한다면 단언컨대,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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