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안희정 공판 보도, 꼭 이래야 했나

민언련 모니터보고서

등록 2018.07.06 16:34수정 2018.07.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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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없이 법정 향하는 안희정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위력으로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이희훈


2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첫 정식 재판 이후, 또 다시 문제 보도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제정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은 "언론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이드라인 내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 역시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나 피해자의 피해 상태나 가해자의 범행 수법을 자세히 묘사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매체가 이번 안희정 공판에서 김지은씨 측이 증거 자료로 제출한 병원 진료 기록 내용을 '출혈' '산부인과' 등의 키워드를 앞세워 보도하고 있습니다.


해당 진료기록은 김씨의 피해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로, 사건과 무관한 자료는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진료기록은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내밀한 정보를 담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의료법에는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발급 요건이 별도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피해자가 진료기록을 법원에 제출했다는 이유로, 언론이 마치 '허가'라도 받은 양 그 내용을 앞다퉈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입니다.

무분별한 보도... 사생활 침해 경쟁인가

네이버에 기사를 송고한 시간을 기준으로, 김지은 씨의 진료기록 내용을 가장 먼저 대중에 알린 매체는 SBS입니다. SBS의 온라인 기사 <안희정 첫 재판 공방…"덫 놓은 사냥꾼" vs "법적 책임 없어">(7/2)의 작성 시간은 2일 오후 1시 11분입니다. 기사는 오후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서류증거를 소개하며 "김 씨가 안 전 지사와 성관계 후 비정상적 출혈이 있어 올해 2월 26일자 산부인과 진료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진단서를 받은 사실"이 증거로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SBS 보도 이후 3시간여가 지난 뒤인 오후 4시 32분 연합뉴스가 네이버에 올린 <안희정 첫 재판 공방…"덫 놓은 사냥꾼" vs "법적책임 없어">(7/2) 종합 기사는 위 SBS 기사와 정확히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가 앞서 같은 날 오후 1시 3분에 송고했던 <피고인 안희정 법원에…"덫 놓은 사냥꾼" vs "법적책임 없어">(7/2) 기사에는 진료기록 관련 언급이 없습니다.
SBS가 '보도 내용'으로 진료기록 내용을 언급한 최초 매체라면, 이데일리는 보도 제목에 '병원기록'을 부각한 첫 매체입니다. 2일 오후 5시 44분 작성된 이데일리 보도 제목은 <안희정 첫 재판서 검 '원치 않은 성관계' 명시 병원기록 공개>(7/2)입니다. 이데일리는 이 정보를 <김지은씨 산부인과 진료에 '원치 않은 성관계 탓' 명시>라는 소제목으로 한 번 더 부각했습니다.

'병원기록'이라는 언급을 넘어, 구체적으로 '산부인과 진단서'라는 정보를 최초로 제목으로 부각한 매체는 중앙일보입니다. 특히 중앙일보의 <안희정 첫 재판···김지은이 제출한 산부인과 진단서엔>(7/3)이라는 보도 제목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보도 내에서 전달한 정보는 SBS의 첫 보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 기사가 나온 직후 나온 월간조선 관련 기사 제목은 <안희정 첫 재판, 검찰과 김지은 측 산부인과 진단서 증거로 제출>(7/3)입니다.


국민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관계' '출혈' '산부인과 진단서'라는 키워드를 모두 보도 제목에 활용했습니다. 문제의 국민일보 기사 제목은 <"원치 않은 성관계에 의한 출혈" 김지은 산부인과 진단서 들여다보니>(7/3)입니다. 중앙일보 기사 제목과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입니다. 국일일보 이후 나온 조선일보 관련 기사 제목 역시 <"원치않는 성관계로 출혈"…산부인과 진단서 제출한 김지은씨>(7/3)입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Pick 기사'(해당 언론사가 채널 주요기사로 직접 선정한 기사)로 선정했습니다.

노골적인 키워드에... 사라진 이름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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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차 재판을 받기 위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하기에 앞서 안 전 지사의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7.2 ⓒ 최윤석


국민일보와 조선일보가 보도 제목에 가해자로 지목된 안희정 전 지사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김지은씨의 이름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에 띕니다. 이 외에 MBN, YTN, 국제신문, 서울신문, 여성신문, 부산일보, 더리더, 뉴스윅스, 아이뉴스23 등도 관련 기사 제목이나 본문을 통해 김지은 씨의 진료기록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YTN과 MBN, OBS는 김씨의 산부인과 진료기록 내용을 방송 보도에서까지 언급했습니다. 먼저 YTN 뉴스통 <아시아나 기내식 논란, 갑질 의혹으로 확대>(7/3)에서 김광삼 변호사는 "약간 안희정 전 지사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몇 개가 있더라고요. 보니까 안 지사와 성관계 후에 비정상적인 출혈이 있다는 산부인과의 진료가 있어요. 거기에 보면 진단서를 받을 때 원치 않는 성관계에 의한 것이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아침방송인 뉴스타워 <눈감은 안희정, 지켜본 김지은…법정에서 재회>(7/3)에서는 앵커와 패널이 모두 산부인과 진단서 제출 사실을 전했습니다. 
MBN은 7월 3일 뉴스빅5에서 "올해 2월 26일에 김지은씨가 비정상적인 출혈을 호소하면서 산부인과를 찾았었고요. 그때 산부인과에서 발급받은 진단서인데. 진단서의 내용이 원치 않는 성관계에 의해서 비정상적인 출혈을 호소하고 있다. 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날짜입니다. 이날이 어떤 날이냐면, 2월 25일이, 그 전날인 2월 25일이 김지은 비서가 이야기했던 마지막 성폭행이 있었던 날이거든요"라는 상세한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MBN은 별도의 자료화면을 만들어 이 내용을 재차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OBS도 7월 3일 '오늘뉴스'에서 관련 자료화면을 배경으로 "오늘 나왔던 새로운 얘긴데, 김씨 측에서 산부인과 진단서를 제출했다고 하지요. 2월 중순경 진단받은 진단서인데 '원치 않은 성관계에 의한 출혈이 있었다' 이런 소견이 있었다고 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정보를 마음껏 보도'하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유사 성폭력 사건 피해 당사자들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범행 수법 묘사에, 가해자 변명만 강조하는 뉴스

진료기록 내용을 부각한 보도 외에 피해자의 피해 상태나 가해자의 범행 수법을 부각한 보도 역시 속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동아일보 <"덫 놓은 사냥꾼" 법정서 안희정 몰아붙인 검찰>(7/3)과 국민일보 <"목욕할 때도 휴대폰 소지" 김지은씨가 받은 '안희정 보좌 매뉴얼'>(7/3)은 안 전 지사의 범행 당시 발언을 소개하고 "은밀한 신체 부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범행 수법을 상세히 묘사 했습니다. 
서울신문 <검찰 "안, 사냥꾼처럼 덫 놓고 위계 악용" 질타>(7/2) 역시 추행 신체 부위를 굳이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서술은 피해자에게 사건을 다시 상기시켜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가해자의 변명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보도도 적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의 주장을 'VS' 구도로 나열하며 안 전 지사 측의 '학벌' '고학력자' '장애인' '애정관계' 등의 일방적 주장을 제목에 부각한 보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을 전면에 부각한 보도는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확대․재생산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한 안 전 지사 측이 '성폭력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김지은씨가 '장애인도 아동도 아닌 결단력 있는 고학력 여성'이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한 행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쓰고, 심지어 제목으로까지 부각하는 것은 부적절한 보도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 문제 보도 예시로는 세계일보 <'안은 덫을 놓고 기다린 사냥꾼' VS "뭔 소리, 형법상 범죄 아닌 이성적 감정">(7/2), 채널A <"학벌 좋은 여성" vs "나르시시즘">(7/3), SBS <검 "덫 놓은 사냥꾼처럼" vs 안희정 측 "합의된 성관계">(7/3), 뉴시스 <안희정 첫 공판…"애정 관계일 뿐" VS "나르시시즘 불과">(7/3), 서울경제 <안희정 첫 재판··"대권주자 위력으로 성폭행" VS "피해자는 고학력자 여성">(7/2), <안희정 비서 성폭행 혐의 공판, "덫 놓은 사냥꾼 vs 김씨 장애인·아동 아냐" 팽팽>(7/2)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7월 2일~4일 주요 일간지 및 통신사 관련 보도 전반
덧붙이는 글 배나은 기자는 민언련 활동가입니다.
#민언련 #안희정 공판 #진료기록 #SBS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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