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제주도, 아는 만큼 더 사랑하게 됐다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제주 서른 번째, 서른 한 번째 날

등록 2018.07.10 10:25수정 2018.07.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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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떠나기 하루 전. 오전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순간을 지켜보고 채 가시지 않은 흥분과 함께 우도로 출발. 아릅답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 우도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도에서 제주를 바라보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 타는 배. 갑판 위를 걷거나 배 난관 가까이 서 있기가 힘들다. 그 전엔 안 그랬는데. 강호는 이동가방 속에서 운다. 배 엔진 소음과 낯선 환경 때문에. 하지만 오늘 여정은 꼭 함께 하고 싶었고 또 내일 비행기 탑승을 위한 적응 훈련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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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배가 움직이자 이틀 전 다녀온 지미 오름을 중심으로 제주 땅이 배웅을 하는 듯하다. 한 달간 살면서 섬에 대한 애정이 쌓였음을 느낀다. 앞을 내다보니 우측에 성산일출봉이, 좌측에 우도가 있다. 이 둘이 이렇게나 가까운 걸 지미 오름에 오르고서 알았다.

우도 해변에 선 가게와 사람들이 점점 커진다. 배로 서서히 다가가니 정말 섬이라는 실감이 든다. 사람과 집과 그 외에 많은 것들 떠받치고 있는 어느 만큼의 땅이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섬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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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선착장에 내리면 수동 자전거, 전기 자전거, 미니 전동차 대여점이 포진하고 있는데 고민 끝에 수동 자전거를 빌렸다. 심각한 운동 부족이 아니면 섬 전체를 돌기에 충분하다. 검멀레 해안절벽을 지날 때 경사가 제법 있지만 모두 걸어서 구경하는 곳이니 잠깐 자전거를 끌면 된다.

검멀레 해안절벽에 다다르자 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정지한 듯 보이지만 단 한 번 멈추지 않고 인간이 아닌 우주의 시간 속에서 자연이 빚은 절경. 그 문양 하나하나 귀하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손을 대고 가만히 있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의 문이 열릴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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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백사장 끝 절벽 아래에 있는 우도 팔경 중 하나라는 동안경굴을 보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 끝에 안전모 수납장과 함께 '동굴 안까지 들어갈 방문객들은 반드시 모자를 착용하란' 안내문이 있지만 대부분 무시하기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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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하지만 규정을 따르려 해도 안전모는 더럽거나 고장난 게 다수, 그 중에 나은 것을 골라 쓰고 동굴 앞까지 갔지만 내부가 지저분해 들어갈 마음이 나질 않았다. 해안절벽을 지나 다시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하늘과 바다, 청보리밭이 펼쳐져 있어 더없이 청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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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섬 속의 섬, 우도 동쪽에 다리 하나로 연결된 비양도. 해 뜨는 광경이 해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이름이 비양도라고. 한편 해녀마을이란 또다른 이름답게 다리 입구에 작업복을 입고 앉아 이색적인 제주 사투리로 수다 삼매에 빠진 해녀 십여 명을 볼 수 있었다.

비양도 표지석이 선 바닷가, 한적한 풀숲으로 자리를 옮겨 이동가방 속 강호를 꺼내어주었다. 답답했던지 몸을 여러 번 털고 낯선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는 강호. 문득 고마운 마음이 울컥. 녀석과 함께라서 분명 더 행복했던 지난 한 달. '강호야, 같이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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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비양도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려 신중히 식당 한 곳을 찜했다. 마침 제주에서 보낸 옥돔을 잘 받았다며 맛있게 먹겠다는 어머니 문자에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처럼 비싼 성게 비빔밥 주문. 주문을 마치고 야외 탁자로 나오는데 익숙한 노란 리본이 여기저기 보였다.

'잊지 않을게. 2014. 4. 16'과 함께 노란 리본이 그려진 작은 판자가 출입문 옆 창틀에 기대어 있고, 마주 보이는 바다 앞 방파제를 따라서도 여기저기 솜씨 좋게 깎은 나무 조각과 함께 노란 리본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음식도 먹기 전에 속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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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곧이어 맛본 성게 비빔밥도 추천할만. 싱싱한 성게와 전복과 톳, 채 썰어 함께 담긴 과일과 야채에 게 내장을 섞어 만든 특제 소스까지 슥삭슥삭 잘 비벼 한 입 먹으니 말 그대로 바다맛이 입안 한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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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검멀레 해변과 반대로 모래가 하얘서 서빈백사라 불리는 바닷가에서 한 번 더 강호와 추억 사진을 남겼다. 모래사장을 처음 밟아보는 강호가 주변 풍경에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코를 벌렁거리며 물고기처럼 모래 위를 걷다가 스르르 미끄러지는 모습이 귀엽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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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우도에서 보는 제주도의 모습이 아련하고 반갑다. 이로써,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그 첫 번째 제주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지난 한 달을 통해 나는 제주와 강호의 진귀한 숨은 모습을 많이 알게 됐고, 그 만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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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덧붙이는 글 : 이 날이 제주 떠나기 마지막 하루 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다음 날 제주공항 인근에서 하루를 더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주에 이어 다음 한 달 살기 장소가 어디가 될지 모른단 생각에 돌아가는 항공권을 사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최대 실수였습니다.

올 때는 2만 1천 원짜리 실속항공권으로 왔지만 갈 때는 4배에 달하는 정가 표를 사야 했는데, 당일까지도 조금이라도 싼 티켓이 반드시 한 장은 나오게 돼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공항에서 6시간을 대기하다 결국 포기.

혼자였다면 하루치 만큼 못 본 곳들을 더 보고 공항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겠지만 강호와 함께였기에 서둘러 공항 근처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곤란한 상황 속에서 다시금 내가 한 생명을 보호하며 함께 여행 중임을 실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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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 이명주


이전 글 : 한 달 살아본 제주, 작별을 준비하다
덧붙이는 글 두 다리뿐인 강호가 좀 더 오래, 편히 걸을 수 있게 휠체어를, 여행하며 만나는 '1미터 지옥'에 묶인 동물들에겐 좀 더 길고 안전한 몸줄을, 밥이 필요하면 밥을, 약이 필요하면 약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원고료' 또는 직접 후원으로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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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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