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죄? 자국민 추모 먼저" 일본의 비뚤어진 논리

[서평] 가토 노리히로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등록 2018.07.12 13:30수정 2018.07.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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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50주년을 맞은 1995년, 한국사회의 화두는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지시했다. 일본 식민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함으로써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일본도 비슷한 시기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려 시도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1993년 총리 취임 기자회견 당시 "과거의 전쟁은 침략전쟁이었고, 잘못된 전쟁이었다"며 현직 총리로는 처음 침략전쟁을 인정했다.

하지만 뒤이어 호소카와의 발언을 무색게 하는 망언이 터져 나왔다. 1993년 12월 나카니시 케이스케 방위청 장관이 헌법 재검토 발언으로 사임했고, 다음 해 5월 나가노 시게카도 법무상이 난징대학살은 날조라는 발언으로 사임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발족 직후의 무라야마 내각에서 사쿠라이 신환경청장관이 태평양전쟁에 침략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가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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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 창작과비평사



어째서 총리의 사죄에도 불구하고 이를 역행하는 각료들의 망언이 이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사죄와 망언의 지겨운 반복을 끊고, 진정으로 사죄할 수 있는가.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가토 노리히로 지음, 창작과비평사 펴냄)은 이 질문을 다룬 책이다.

"일본의 3백만 사망자를 먼저 추모해야 사죄할 수 있다."

일본의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는 이 책에서 "일본이라는 사회가 인격적으로 둘로 분열되어 있다"(56쪽)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사회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외적 자아(호헌파-혁신파)와 내적 자아(개헌파-보수파)로 분열되어 있다. 이는 두 개의 인격이 대립하는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의 병립 상태와는 다르다.

사죄와 망언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외적 자아(호헌파-혁신파)가 사죄하면 내적 자아(개헌파-보수파)가 그에 대한 반발로 망언을 내뱉는다. 사죄에도 '불구하고' 망언이 잇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죄 '때문에' 망언이 나온 셈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혁신파가 아무리 외부를 향해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사죄해도 보수파의 망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가토 노리히로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격분열을 극복하고, 사죄할 '주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죽은 2천만 아시아의 죽은 자보다 3백 만이라는 자국의 사망자를 먼저 추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2천만 아시아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는 침략자인 자국 사망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 보수파들이 여기에 반발하면서 자국 사망자를 '정결한' 존재(영령)로 추모하는 게 야스쿠니 문제라는 주장이다.

가토 노리히로는 자국 사망자들의 죽음을 무의미한 대로 먼저 추모할 때 비로소 '사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시아에 대한 전쟁책임을 명언(明言)하고 아시아의 2천만 죽은 자들에게 사죄한다고 해도 지킬 박사의 명언, 사죄가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명언의 논리가 우리가 지금 여기 있기 위해 죽어간 자국의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와 균형을 이루고, 그 사죄가 이들 사망자들에 대한 추모를 통하여 우리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우리들의 명언이며 사죄인 것이다.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83쪽

가토 노리히로는 태평양전쟁에서 죽은 아시아인을 추모하는 호헌파에게도 '너무나 서둘러 일본을 부정함으로써 원래라면 져야 할 책임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8쪽)고 비판한다.

그는 "이른바 세계시민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도 우리는 일단 피침략 쪽의 규탄을 받아들이는 '전후 일본인으로서의 우리'가 될 필요가 있는 것"(15쪽)이라며 인격 분열을 극복하고, '사죄의 주체'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혁신파야말로 '전후 일본인으로서의 우리'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태평양전쟁을 긍정한다거나 태평양전쟁에 대한 비판을 '자학사관'이라고 매도하는 기존의 극우 담론과는 분명 다르다.

일견 그럴듯한 면도 있다. '설령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수많은 아시아인에게 비극이었다고 할지라도, 전장에서 죽어간 일본인을 우리 일본인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일본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정말 그의 주장처럼 일본의 3백만 사망자를 애도하면 사죄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교수는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에서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우선 일본사회가 자국 사망자 3백만을 먼저 애도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부터 사실과 다르다.

무종교적인 치도리가부치묘원(일본 도쿄도 지요다 구 황궁 서쪽에 있는 공원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해외에서 사망한 병사와 민간인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 기자 말)은, 1959년 야스쿠니신사의 대체물로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여전히 '자국의 사망자'만을 애도하는 시설입니다. 전사자 유족 원호도 1990년대 초까지 군인, 군속 등 유족 중심의 '자국의' 전쟁 희생자 원호비가 약 40조 엔이었는데, 대외 지불액은 개인 보상도 없이 약 1조 엔이나 되는 엄청난 불균형이 존재합니다. 일본인 특히 죽은 병사가 우선이고 이방인, 타국의 사망자는 그 다음이라는 가토 씨의 제안은 이미 옛날에 실현된 것이지요.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169쪽

그래서 문제는 자국 사망자를 먼저 애도한다고 풀리지 않는다. 망언은 일본의 침략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활동에 참여했던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가토 노리히로의 논의를 자학적이라고 일축했다.

'너무나 서둘러 일본을 부정함으로써 원래라면 져야 할 책임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는 호헌파에 대한 비판도 당혹스럽다. 일본의 침략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사죄한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 해석 아닐까?

다카하시 데쓰야는 "저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관해 일본인에게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이 없다는 논의에 편 들 수는 없다"며 "일본인은 일본 국가의 주권자로서 일본 국가의 정치적인 자세에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70~72쪽).

그렇기 때문에 '침략을 저지른 건 선조들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끊임없이 기억하고, 사죄한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가토 노리히로가 말한 "피침략 쪽의 규탄을 받아들이는 '전후 일본인으로서의 우리'"다.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윤리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카하시 데쓰야는 그의 주장이 품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독일인이 "400만 자국의 죽은 병사를 먼저 내세우는 것이 600만 유대인 사망자로 이어진다, 600만 폴란드의 사망자(그 중 300만은 유대인)로 이어진다, 2천만 소련 사망자로 이어진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국을 위해 죽은' 독일군 병사에 대한 '깊은 애도'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유대인과 기타 유럽인 희생자에 대한 '애도'도, '사죄'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250쪽

세련되지만, 퇴행적 담론

결국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기존 극우파보다는 세련되지만, 여전히 가해자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가토 노리히로는 '사죄의 주체'를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죄의 주체'가 되려는 혁신파에게 '너무나 서둘러 일본을 부정함으로써 원래라면 져야 할 책임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는 이해하기 힘든 비판을 한다.

반면 '사죄의 주체'가 되기를 거부하는 보수파의 태도는 아시아의 2천만 사망자만 애도하는 혁신파에 대한 반발이라고 이해해주면서 '자국 사망자 300만을 먼저 애도해야 아시아의 2천만 사망자를 애도할 수 있다'는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고, 비윤리적인 주장을 한다.

그래서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퇴행적이다. 일본이 사죄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자국 사망자 300만을 애도하지 않는 호헌파의 태도가 아니라 전후 50년이 지나도록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고통을 앞세우는 그 같은 퇴행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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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지금은 금속노조 활동가.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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