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쓰지 마?" 수상한 고시촌 여성 화장실

몰카·성범죄 부르는 남녀 공용 화장실 폐쇄 법안 15년째 뒷전

등록 2018.07.10 12:02수정 2018.07.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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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동의 한 건물 화장실 안내 문구. 여성 화장실만 아무런 잠금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 ⓒ 정주영



"화장실 열쇠가 어디 있나요?"
"여성 화장실은 그냥 문 열려 있으니 갔다 오세요."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김민지(25·가명)씨는 7월 초 한 식당 사장의 말에 화장실 이용을 포기하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누가 봐도 화장실이 급해 보였던 학생이 아무렇지 않은 척 테이블에 다시 앉자, 주변에서 시선이 모아졌다.

한 남학생은 얼마 후에 여학생이 자리를 뜨자, 친구들에게 수군거렸다.

"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기자가 왜 그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근처에 자취방이 있어서 집 화장실을 쓸 거라고 답했다. 이 여학생은 정말 예민한 걸까?

1인 여성가구 비율 전국 최대인데... 몰카 범죄에 속수무책인 고시촌 화장실 

"따라와 보시겠어요?"

2년째 노량진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김민지씨는 자신이 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지를 직접 보여주겠다고 했다.

첫 번째 두려움은 공용 화장실이었다. 별 생각 없이 남녀 공용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소변을 보고 있던 남학생과 마주쳐 소스라치게 놀란 경험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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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지 마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벽돌로 막아둔 노량진 공용 화장실. 한 여학생은 이 문을 열 때마다 “벽돌을 들고 누가 있는 게 아닐지” 공포스럽다고 전했다. ⓒ 정주영


"급하면 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밤에 이 화장실을 열 때 안에 남성이 있을지, 카메라를 몰래 달아 놓은 건 아닌지 걱정이 돼요."

그러면서 남성인 기자에게 한 마디를 했다.

"기자님도 여기를 자유롭게 들어오실 수 있잖아요. 여성은 얼마나 무섭겠어요."

실제로 노후화된 건물들이 많은 노량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용 화장실이 상당수 존재했다.

김씨의 두려움만큼이나 노량진 일대의 성범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동작구가 지난 2015년 동작경찰서와 합동 조사를 한 결과, 김씨가 사는 노량진1동의 2014년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1년에 비해 2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성범죄 일어나면 저희 보고 조심하라 하잖아요. 근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조심할 수 있을까요?"

2015년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학원과 고시원이 많이 모여 있는 노량진1동 일대의 여성 1인 가구 비율은 34%로, 서울시 평균 10%를 크게 웃돈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은 무관심 속에 갈수록 사각 지대로 몰리고 있다.

말 많은 여성 화장실만 골라서 아예 폐쇄하기도

"여성 화장실만 사용 못하게 자물쇠가 계속 채워져 있어요."

사정은 확인할수록 열악했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더라도, 여성 화장실만 아예 폐쇄한 곳도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수도비 상승 이유라고 하지만, 남성 화장실만 열어둔 것이 아이러니했다. 기자가 1주일을 두고 확인해 본 결과, 여성 화장실만 계속 폐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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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화장실만 계속 폐쇄 상태인 노량진동의 한 화장실 ⓒ 정주영


"더 확인 안 하셔도 돼요. 오래전부터 여성 화장실만 잠가버렸거든요."

그나마 노량진에서 신축 건물인 메가스터디 타워의 경우 공용이 아닌 남녀 분리형 화장실이었지만, 이곳에서도 아무런 잠금 시설이 없던 탓에 남학생이 여성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해당 건물에서 수업을 듣던 여학생들이 말했다.

"(남성 화장실로 착각해) 잘못 들어온 것처럼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순간 소름이 돋았죠."

노량진에 성추행과 성폭행 범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이곳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성범죄들은 여성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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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분리형 화장실이지만, 출입문도 없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 ⓒ 정주영


"공용 화장실을 줄이고, 여성 화장실의 몰카 점검과 출입 안전 장치를 확보해달라는 우리들의 요구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요?"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9일 "현장 조사를 나가보면 문제들이 주로 발생하는 여성 화장실만 폐쇄하거나 이용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건물주에게 해당 화장실 문제점들을 지적하면 개선하는 대신 되레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부 여성들, 너무 예민하다" 일부 볼멘소리도

"꼭 여성들만의 문제인가요? 남성 화장실도 똑같이 방치된 경우가 많고, 여기 치안은 남녀 할 것 없이 무서운 골목이 많아요."

똑같이 고시를 2년간 노량진에서 준비중이라는 정민석(26·가명)씨는 김민지씨를 비롯한 여성들의 반응이 좀 예민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보는 시각 또한 불쾌하며, 자신도 공용 화장실에 여성들이 들어오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노량진의 노후화된 건물이 문제일 뿐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유난인지 모르겠어요. 오래된 건물 하나에 화장실 하나이니 공용이 될 수밖에 없죠. 이해하면서 (화장실을) 써야 되는 거 아닐까요? 남성들이 몰카로 자기를 그렇게 찍는다는 피해망상도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여긴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데."

살인 사건도 일어났는데... 공용 화장실 폐쇄 법안은 15년째 뒷전

2016년 강남역 공용 화장실 살인 사건으로 한 여성의 무고한 죽음이 발생하자, 행정자치부에서 뒤늦게 국민들의 "불안감 증가"를 이유로 공용 화장실 금지법 적용 대상을 보다 넓혔다. 그러나 15년째 논란 중인 공용 화장실 전체 폐쇄 대신, 2017년 개정안에서 여전히 2000㎡(605평) 미만은 공용 화장실 등으로 방치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다.

노량진처럼 작은 건물에 몰려서 생활하는 1인 주거 빈곤 여성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만 10만 개의 공용화장실이 방치 상태다.

왜 남녀 공용 화장실 폐쇄에 이렇게 소극적인 걸까? 이 질문에 표 대표는 "건축주나 허가권자들이 모두 남성이라서 남녀 공용 화장실의 문제점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건물의 규모를 떠나서 공용 화장실은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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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조사 결과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화장실 또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나도록 공용화장실로 계속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에서야 여론을 의식한 듯 남자 화장실로 바꿔서 열쇠를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여성의 무고한 죽음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는 셈이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9일 "미투 운동 사건이 파란을 일으킨 데에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가장 컸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정치권, 제도권, 심지어 정부조차도 (여성의 몰카와 성범죄에 대한 대처가) 크게 변화되는 것이 없는 상태다"며 공용 화장실 폐쇄 법안에 대해서는 "15년째나 답보 상태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무능함이라 볼 수 있다. (남성 위주인)정치권에서 젠더 감수성이 떨어져서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적 변화를 촉구했다.

"그런거 신경쓸 시간에 공부나?" 노량진 여학생들의 눈물

"제가 예민하다고요?"

김민지씨는 자신이 화장실 사용을 포기하는 것을 두고 주변에서 예민하다고 수군거렸다는 말에 분노한 표정이었다.

"그냥 안전하게 용변을 보고 싶은 것 뿐이에요. 그게 그렇게 비웃음 받아야 될 문제인가요?"

지방에서 와서 공무원을 꿈꾸고 있다는 김씨는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던 와중에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는 와중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이 정도로 냉정할 줄 몰랐다고 했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부모님 아파트도 있고 이렇게 (고시원에서)안 살아도 되요. 제가 왜 이렇게까지 이곳에서 버티고 있을까요..."

2015년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고시원에 거주한다는 김민지씨처럼 수험생들이 몰리는 노량진과 고시촌들의 1인 가구의 주거 빈곤율은 55.8%로 최저 기준도 안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여있다. 당연히 공용 화장실 폐쇄와 화장실 개선 문제는 그들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김민지씨는 앞으로도 '합격'이란 두 글자를 가지기 전까지는 공용화장실과 성범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 곳에서 꿈을 꺾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해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인 여성 가구가 많은 노량진과 홍대등을 시범 지구로 선정해서 건물주들에게 우선적으로 공용 화장실 폐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런거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하라'는 일부 남학생 주장에 대해서도, "젠더 감수성을 낭비라 생각하며 공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성을 먼저 기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꺼운 수험서를 들고 있던 김민지씨는 이 말로 위로가 되었을까?

"작은 고시원에서 밤새도록 공부하고 조용히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더는 뭔가가 숨어 있거나 나를 찍고 있지 않을까,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전부예요."

자기도 이렇게 눈물이 나올 줄 몰랐다며, 주섬주섬 눈물을 닦던 김씨는 다시 수업을 들으러 학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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