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대신 전자기타 멘 고1 아들, 불안하지 않냐고?

[아이들은 나의 스승 140] 대학입시 방식이 바뀐다고 학교가 행복해지느냐는 아이

등록 2018.07.10 22:33수정 2018.07.1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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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게 너무 즐겁다는 우리 아들 이야기다 ⓒ pixabay


학교 가는 게 너무 즐겁다는 우리 아들 이야기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고, 금요일 밤늦게 와놓고선 토요일 아침부터 엄마 아빠 무안하게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무심한 녀석이다. 아무리 가족보다 또래가 좋을 나이라지만, 집보다 학교가 더 좋다고 말하는 아이가 부모로서 내심 서운하기까지 하다.

아이는 올해 고1로, 집을 떠나 객지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친구들이 지금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기억할 만큼 성적도 좋고 학교생활도 원만했지만,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무렵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바로 옆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의 일상을 접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3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고등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였고, '생각 없는 좀비'였다. 등굣길 만나는 형들은 늘 피곤함에 전 모습이었고,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줄 설 때도 연신 하품을 해댔다고 떠올렸다. 온종일 교실에 갇혀 책과 씨름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시간인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흡사 좀비들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축 처진 어깨와 게슴츠레 퀭한 눈. 그가 고등학생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다. 고등학교 3년은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통념과, 누구라도 견뎌내야 하는 홍역처럼 당연시하는 걸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대체 대학이 뭐기에 무쇠솥도 녹인다는 이팔청춘의 시간을 하나같이 저렇게 보내야만 하는지 따져 묻기도 했다.

"'기계'처럼, '좀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다시 못 올 고등학교 학창시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적성과 재능도 발견하고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길 테니, 그때 대학엘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어쨌든 대학 진학을 전제로 공부하진 않으려고요."

조금 일찍 철이 든 고1 아이는 '일단'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학을 거부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 필요를 느낄 때 진학하겠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그가 다니는 학교는 최근 몇 년 동안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채 50%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 진학에 대해 그와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학교생활이 즐거움의 연속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중학교 시절 틈날 때마다 기타를 가르쳐주겠다고 해도 듣는 시늉조차 않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 전자기타를 사달라고 떼를 쓰는 지경이 됐다. 뜻 맞는 친구들끼리 밴드를 조직해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동아리방에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하는 모양이다. 이따금 식사시간조차 놓칠 때가 있다고 한다.


함께 공을 차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느닷없이 인문계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아마도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일 거라고 여겼을 정도로 내로라하는 축구광이다. 지금껏 스마트폰 사달라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돈으로만 따지면 계절마다 사서 쟁이는 축구화가 훨씬 더 부담스러웠다.

얼마 전 지역 대표 선발을 위한 대회에 출전하였는데, 승패를 떠나 여느 친구들처럼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했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호사라면서 뿌듯해했다. 대회 준비를 위해 선배들과 이른 아침부터 모여 함께 연습하고, 경기를 통해 여러 고등학교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학교 울타리 밖 친구들이 많다는 게 그의 첫손에 꼽는 자랑거리가 됐다.

토론 중심의 수업 방식에도 만족해 했다. 수업시간에 종종 교과서를 잠시 덮어두고, 시사나 고전 등을 소재 삼아 토론을 벌인다는데, 최근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명저 <월든>을 소재로 대안적 삶에 대한 토론을 벌였단다. 배경 지식이 부족해도 각자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발표하는 친구들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당장 책을 구해 읽고 싶게 만든 시간이었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꿈꾸었던 수업이라고 말했다. 어떤 과목이든 친구들과 모둠별로 모여 토론을 준비하는 게 예습이라며, 공책에다 풀고 베끼고 확인하는 그런 과제가 아니어서 좋단다. 여느 학교처럼 수능을 대비했다면 결코 시도할 수 없는 수업이고 과제라면서 스스로 뿌듯해했다.

학교에 가면 항상 즐거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딱히 주말이나 휴일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온종일 수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거나 동아리방에서 악기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들떠 있는 모습이다. 음악과 체육에 별 관심이 없는 한 친구는 집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종일 도서관에 가서 제집 안방인 양 책과 함께 뒹군다고 한다.

"교육을 다수결로 결정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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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면 항상 즐거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딱히 주말이나 휴일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 pixabay


지금 정부가 전국을 순회하며 공청회를 여는 등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을 위한 논쟁이 뜨겁지만, 아이는 먼 산 불 구경하듯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학 진학에 뜻이 없는 자신과는 당장 아무런 상관이 없고, 나중에 대학에 가게 되더라도 그땐 또 다른 입시제도가 생겨날 텐데 뭐가 걱정이냐는 거다. 다만 어떻게 결정되든 자신의 즐거운 학교생활에 방해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공론화하겠다는 뜻은 대학입시 방식을 다수결로 정하자는 건가요? 교육을 옳고 그름이 아닌, 많고 적음의 잣대로 판단한다는 게 황당하게 느껴져요. 어차피 각자 대학 진학에 유리한 방식을 선택하게 될 테니까요. 과연 그렇게 결정된 방식을 사람들이 순순히 따르게 될지도 의문이에요."

대학입시에서 정시냐 수시냐, 수능이냐 학종이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자체가 희화화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정부까지 나서서 공론화 과정에 부치는 건 대학입시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학벌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입시 한 방에 인생이 결정 된다'는 그릇된 편견을 외려 정부가 보증해주는 꼴 아니냐는 거다.

아이는 대학입시를 상수로 둔 상태에선 어떻게 결정되는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바뀔 입시제도에 따라 진학 실적을 내기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이 학교마다 개발될 테고, 그에 따라 다양한 편법이 동원될 것이다. 늘 그렇듯 대학입시에 관한 한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어왔다.

수업을 온통 문제풀이로 채워버린 수능은 말할 것도 없고, 수능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학종 역시 아이들을 다그치고 옥죄었을 뿐 학교생활을 조금도 개선하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대다수 아이들이 학종을 꺼려하는 이유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다. 행복한 학교에 대한 기대는 접은 지 이미 오래됐으니, 그나마 한 가지만 준비하게 해달라는 게 아이들의 소박한 바람인 셈이다.

이 땅의 이팔청춘들을 죄다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아이는 순위를 매겨 설명했다. 첫째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지독한 편견 때문이고, 둘째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진학하는 '수학공식 같은' 관행에서 찾았다. 흔히 모든 교육 문제의 주범인 양 여기지만, 'SKY서성한중경외시'라는 서열화한 학벌구조는 후순위라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두고 갑론을박 호들갑 떨 게 아니라,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유도하고 법제화하는 노력이 이번 대학입시 개편 논쟁보다 훨씬 더 교육적이라고 말했다. 진정 학문에 뜻을 둔 아이들이 대학에 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공부를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중학교 과정에서 자유학년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고등학교 졸업자들에게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입시 제도를 개편한답시고 애먼 기성세대에게 묻지 말고,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굳이 공론화하겠다면, 차라리 이렇게 질문하면 어떻겠냐며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대학입시 제도가 우리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라고.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학교' 아니냐면서.

'낙오'가 불안하지 않냐고요? 우리가 바꿔야죠

사족 하나. 학기 초 아이가 책가방 대신 기타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걸 본 지인이 진심 걱정된 얼굴로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땐 왜 두렵지 않겠냐고 반문하며 정글 같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저러다 낙오하면 어쩌나 솔직히 너무나 불안하다고 대답했다. 서둘러 대학엘 가야 부모로서 등록금이라도 대줄 수 있을 텐데 싶은 현실적인 걱정도 컸다.

한 학기를 보낸 지금, 그런 불안과 걱정은 깨끗이 털어냈다고 자부한다. 학교 가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 아들의 싱글벙글한 얼굴이 '특효약'이 된 것 같다. '대학 졸업장 없으면 취직은커녕 짝을 찾기도 힘든 세상인데 어쩌려고 아이를 방치하느냐'는 주변 어른들의 질책에 이젠 이렇게 눙칠 정도로 내공이 생겼다.

"대학 졸업장 없이는 사람대접 못 받는 곳이라면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겠죠. 그런 사회를 만든 건 기성세대인 우리 어른들의 책임 아닐까요?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우리가 바꿔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것 아니겠어요."
#2022 대입개편 공론화 #국가교육회의 #수능과 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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