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밀어넣겠다던 그 광장에 나와 아이들이 있었다

[게릴라칼럼] 끔찍한 기무사의 위수령과 계엄선포 기획... 철저한 조사와 해체가 필요한 이유

등록 2018.07.11 13:08수정 2018.07.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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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안 병장, 군 생활하느라 고생했다. 사고 안쳐서 고맙고 복학해서 데모하지 마라. 홀어머니 잘 모셔야지.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알지?"

전역하는 날. 살얼음 잡힌 위병소를 걸어 나오는 내게 보안대 중사는 지프차에 올라 앉자 인사 아닌 인사를 건넸다. 군 생활 27개월 동안 김 중사라고 불리는 보안대 수사관은 수시로 관물대를 뒤졌고 중대장에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캐물었다. 1987년 대선 패배의 쓰린 뒷맛 속에 입대한 나는 훈련소부터 요시찰 대상이었다. 군에서 보안대는 헌병대보다 더 무서운 조직이었고, 그들에게 행여 꼬투리를 잡힐까 군 생활 내내 죽은 듯 살았다.

그해 가을, 1990년 10월에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가 터져 나왔다. 국군보안사령부가 정치인·종교인·재야인사 등 민간인 1300명의 동향을 파악하고, 사찰했다는 내용이었다. 증거로 사찰 대상자의 색인표, 개인별 파일 및 컴퓨터 디스켓이 제시됐다.

사찰 명단에는 야당의 지도자였던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물론 김영삼, 노무현 등 다수의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망라돼 있었다. 당시 국방부는 전시나 계엄 하에서 불순세력으로부터 해당 당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내세웠고, 노태우 정권은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두환이 사령관이었던 보안사, 결국 이름이 바뀌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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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 홍보동영상 화면. ⓒ 국군기무사령부 홈페이지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보안사령부의 정보를 이용해, 정권을 찬탈했고 국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군부 내에서도 육사 위에 보안사라고 할만큼 위세를 떨쳤던 것이 전두환이 집권한 5공 시절이었다. 보안사령부는 시위 대학생들의 강제 징집을 주도하고 이들 중 다수를 프락치로 활용하는 일명 녹화사업을 시행했다. 당시 1200여 명에게 녹화사업이 실시됐으며, 이중 6명이 의문사 등으로 죽었다는 것은 훗날 밝혀진 사실이다. 1988년 5공 청문회를 앞두고 광주민주화운동 기록을 조작한 것도 보안사령부였다. 시민이 먼저 발포했다고 서류를 고쳤고 5.18 광주폭동이라 논리를 가공해 퍼트렸다.

1990년,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를 처음 접했을 때, 군대에서 요시찰 대상이었던 내가 가졌던 생각은 '뭘 새삼스럽게?'였다. 비록,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당시 군대는 여전히 동토였다.

여전히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대통령이었고,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이 딱히 중단됐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에서 디스켓과 사찰 목록 등이 증거로 제시되지 않았다면, 새롭다고도 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었고, 그것보다 더 엄청난 일들을 거리낌없이 해온 무소불위의 권력이 보안사령부였다.

군대 내 정보기관인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폭로는 예상과는 달리 국민들의 공분을 키웠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보안사 해체를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고, 전국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규탄하는 집회가 연일 이어졌다. 이에 놀란 노태우 정권은 국방장관·보안사령관을 경질하고 서빙고 분실을 폐쇄했다. 이듬해인 1991년 1월 1일 국군보안사령부는 국군기무사령부(아래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다.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하고 언론 통폐합, 삼청교육대 사건 등 각종 정치 공작과 학원 사찰 등 정치활동에 깊숙이 개입했던 국군보안사령부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기무사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세월호 유족을 사찰한 문건이 발견됐을 뿐아니라, 내용도 가히 충격적이다. 구조 현장인 팽목항뿐만 아니라 단원고에까지 60여 명의 요원을 배치해 실종자 유가족의 성향을 강경, 중도로 분류하고 보수단체들이 맟불 집회를 열 수 있도록 집회 정보를 제공한 사실도 기록돼 있었다.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기관인 기무사가 민간인을 상대로 이런 일을 해왔다는 건, 이 사실만으로도 당시 정권과 국방 책임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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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계엄군 배치도기무사가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따른 수도권 계엄군 배치도 ⓒ 군인권센터


그러나 놀랄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을 앞둔 지난해 3월 위수령과 계엄 선포를 검토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무장병력 4800명의 투입 계획이 담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란 문건이 확인된 것이다.

문건은 당시 기무사 1처장이었던 소강원 소장(현 기무사 참모장)이 작성했으며 작성 지시자는 밝혀지지 않는 상태다. 전방의 장갑차를 보유한 부대들의 충청도 이남 배치의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24개 정부부처의 계엄군 장악, 보도검열단 구성 등 언론 통제를 포함한 믿기 어려운 계획들도 담겨 있었다.

이 보도를 보면서 떠올리는 '만약에'라는 가정은 그 자체로 끔찍하다. '만약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기각됐더라면, '만약에' 기각에 항의하러 아이들 손을 잡고 광화문에 섰다면, '만약에' 광화문의 탱크가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면, '만약에' 총이라도 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알았던 1980년 광주의 학살을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가 기획했다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Again 5.16, Again 광주 학살을 멈춘 건 그들의 양심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었고, 군사독재 시절과 견줄 수 없는 촛불의 힘이었다.

기무사 해체가 불가피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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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촛불집회 계엄령이 웬말이냐”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와 민중공동행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4.16연대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기무사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해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당시 기무사의 위수령·계엄령 계획에 분노하며 기무사 해체를 요구했다. ⓒ 유성호


자유한국당 등 일각에서는 국방부 직할기구인 기무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도대체 누구 기무사에 국민 학살을 기획하는 권한을 줬단 말인가. 어느 정권이 북의 위협에 대비해 배치한 군대를 빼서 후방 도시의 시위를 진압할 생각을 하는가 말이다.

군사독재정권 민자당에서 숱하게 이름을 바꾸며 결국 적폐 정권으로 역사에 상처를 남긴 자유한국당이나,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며 이름을 바꿨던 국군기무사령부나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12.12 쿠데타를 주도했던 국군보안사령부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군 수뇌부에게 물어야 할 책임이 정경유착의 죄보다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기무사의 해체가 불가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순서상 그것은 마지막의 일이다. 당장은 진상규명이 먼저다. 아직 문건의 내용이나 작성자만 밝혀졌을 뿐, 국방부나 윗선의 개입이나 지시는 밝혀진 게 없다.

그렇다고 이 엄청난 계획을 기무사가 독단적으로 했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국방부 수뇌부나 박근혜 정권 핵심 보좌진의 조사는 당연하고 불가피하다. 또 조사 결과에 따른 엄중한 죄를 물어야 한다. 국민들을 상대로 한 내란 음모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쿠데타라 해서 죄를 묻지 않고 실행 안된 쿠데타라 해서 덮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끔찍한 가정은 또 있다. '만약에' 군대의 사조직으로 독재정권을 보좌했던 '하나회'가 존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1980년 5월 광주 진압을 앞둔 군부의 회의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별 둘을 단 소장이 부하에게 소리친다.

"빨갱이 새끼들, 싹 밀어 버려."

2017년 3월 10일. 서울 한복판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 광장에는 나와 내 아이들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육군·기무사 인사를 제외한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송영무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지난 3월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존재와 그 내용을 상세히 보고받았으나 '제도 개선이 우선'이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지시는 의미심장하다. 하나회를 해체시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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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파면' 축하 촛불문화제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은 문화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자축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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