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공동부엌이 주는 소소한 행복

[먹거리정의센터 마을부엌 이야기③] 마포 성미산마을 소행주 저녁해방모임

등록 2018.07.12 14:17수정 2018.07.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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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기사는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마을부엌에서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하기’사업에서 발굴한 마을부엌의 다양한 사례를 알리기 위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정의센터는 보다 많은 마을부엌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먹거리 체계를 만드는데 함께하고, 변화하는 먹거리 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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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 ‘저녁해방모임’ 공동부엌식사저녁해방모임 공동식사 ⓒ 환경정의



저녁해방모임의 시작

"야호, 장보기 당번 어떻게 해요?"

딸기가 한 달 간 여행을 간 터라 옆 지기인 바위가 대신 장보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바위는 퇴근해서 늘 식사만 하셨지 장보기 당번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시다.

"제가 이번 주 당번이었는데 비법을 알려 드릴게요."

옆에서 밥을 먹던 산아래가 일주일치 장보기 비용과 적은 돈으로 많은 양을 준비할 수 있는 실용적인 비법을 마구 마구 쏟아낸다.

그 사이 저녁 먹으러 온 중학생 시원이가 한 마디 쏘아 붙인다.

"우씨, 순 나물반찬 투성이야, 내 입 맛에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엄마, 저해모 안 하면 안 돼?"

"안 돼! 엄마가 퇴근해서 저녁준비하고 설거지하면 아홉시 되는데 엄마는 저녁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 없어! 그리고 집에서 우리끼리 먹으면 매일 엄마 잔소리에 너희들이 더 힘들 걸. 식단이 마음에 안 들면 시원이가 장보기 당번한테 이야기 해 봐."

7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저녁해방모임(이하 저해모)의 일면이다. 지금 저해모는 동네사람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지만 처음에는 아홉집-소통이있어서행복한주택1호(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에 위치한 공동주택)입주자들로만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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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 공동주택 아이들소행주 공동주택 아이들 ⓒ 환경정의


저녁시간을 훌쩍 넘겨야 퇴근하는 아빠들의 삶 뒤에 혼자 저녁식사 준비하고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는 엄마들의 삶이 있다. 반찬은 부실해 질 수밖에 없고 즐거운 식사시간은 극기훈련을 하는 시간이다. 아이를 차례차례 씻기고 안자고 더 놀겠다고 떼쓰는 아이들과의 실랑이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거쳐야 하는 저녁 준비, 저녁 먹이기, 씻기기, 재우기 이 4개의 필수코스 중에 하나만 덜어내도 살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삐리리 눈빛이 통한 엄마들은 해가 지고 스멀스멀 어스름해 질 무렵 주섬주섬 챙겨 아홉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동공간 '씨실'로 내려갔다. 한 집에 한 가지 반찬을 가지고 오니 금세 진수성찬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꾀가 났다. 모든 집이 매일 반찬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준비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 많은 밥과 국과 반찬을 어떻게 한 집이 다 준비하지?"

"우리를 도와 줄 분을 모셔오는 건 어때? 돌아가면서 장을 봐다 놓으면 솜씨 좋은 분이 요리를 해 주시면 좋겠다."

이렇게 저녁으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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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1호 공동부엌 ‘씨실’소행주1호 공동공간 씨실 ⓒ 환경정의


해당화를 모셔오다

해당화는 저녁식사 준비 과정 중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리를 맡아주시는 분이다. 조리를 대신해 주시는 해당화 덕분에 저해모를 구성하고 있는 열 두 집은 매주 정해진 순번대로 장을 봐다 놓기만 하면 된다. 

국 한가지와 반찬 두 가지를 기본으로 5일치의 식단을 정한다. 국 중에서는 된장국, 미역국, 콩나물, 어묵국이 인기이다. 적은 비용으로 맛과 양을 한 번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평소에 자기가 해 먹지 못하는 나물종류를 좋아한다. 냉이, 두릅, 비름나물, 취나물이 생협에 나오면 얼른 집어 담는다. 나물이라고는 쳐다도 안보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특별 메뉴를 탑재한다. 어묵소시지케찹볶음, 떡볶이, 미니떡갈비, 계란말이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해당화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당화는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우렁각시를 통해 가사관리서비스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저해모를 같이 시작한 느리의 소개로 오시게 되었다.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큰일을 해당화는 뚝딱 해 내신다. 들쑥날쑥 매번 다른 맛을 내는 우리와는 다르시다. 무엇보다 내어 놓으시는 음식을 보면 사랑과 정성이 느껴진다.

열 두 집이 돌아가면서 장을 본다고 하지만 필요한 재료를 빼먹기가 일쑤다. 조리를 맡으신 해당화의 입장에서는 장보기 결과가 시원찮으시다.

"메뉴가 아욱된장국이라고 아욱이랑 된장만 갖다 놓으면 어떻게 해? 국물 낼 멸치도 있어야지."

매번 바뀌는 당번들에게 매번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지치고 조리하는 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만들어진 음식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을 때는 서운하기 그지없으시다. 그럴 때 우리 당번들이 출동한다. 메뉴 준비할 때 빠뜨린 것은 없는지 귀담아 듣고 어제의 음식 맛은 얼마나 좋았는지 묘사해 드린다. 저해모에서 해당화는 꽃 중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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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 따뜻한 저녁식사가 제공되는 공동부엌공동부엌에서 함께하는 저녁식사 ⓒ 환경정의


가사노동의 짐을 여럿이 나누어 덜어내다

이렇게 해당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여러 집이 모였기에 가능했다. 아이가 어리고 일을 하는 부모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혼자서는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열 두 집이 모여 십시일반 쌈짓돈을 모으니 해당화께 드릴 품비용이 금세 마련되었다.

식단계획과 장보기, 그리고 설거지와 뒷정리도 열 두 집이 일주일씩 돌아가니 석 달은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내가 특별히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나의 저녁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매일 저녁 같이 먹기'는 엄마들이 살기 위해 찾아낸 생존방식이다.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사, 출산과 육아, 아이와 노인에 대한 돌봄이 가족 중 누군가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이 집중되면 삶이 고단해 지고 생활이 팍팍해 진다.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건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다. 구청이 도와주면 좋고 시가 응원해주면 힘이 나고 국가가 보살펴주면 외롭지 않을 텐데 그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오늘의 저녁식사를 해결하기에는 내 옆의 이웃이 제일 든든하다. 그들과 오늘도 내게 지워진 짐을 나누고 덜어낸다. 우리는 내가 해야 할 것의 부담을 '공동'이 함께 나누어 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박종숙 함께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마포구 성산동에서 야호라고 불리운다. 시민환경단체 활동가로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에 애정을 쏟다. 반복되는(!) 출산과 육아로 동네에서 놀게 되면서 문제를 느끼는 당사자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온 몸으로 체득하다. 지금은 함께주택협동조합에서 토지는 토지대로 건물은 건물대로 적정가격을 지불하면서 살 수 있는 집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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