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그렇게 따져 물었는데...
30년이 지나도 안 변한 죽음의 숫자

[소년 노동자의 죽음 ②] 2017년 산재 전체 사망자 1957명, 1988년에는?

등록 2018.07.10 22:03수정 2018.07.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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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군이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수은 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지 올해로 30년이 됩니다. 그의 죽음은 직업병 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고, 또한 섬유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230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사망한 원진레이온 투쟁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금, 그 사건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문송면의 형, 문근면씨가 돌아본 30년 전 '그 날'에서 이어집니다(기사 보기).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굉장히 고마웠다고 했다. 공장에서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하다 급성 중독으로 사망한 동생 영안실에 찾아왔고, 회사와 협상에 나서 마지막 합의 볼 때까지 고생했다고 했다. 고 문송면군의 형 문근면씨(50)는 인터뷰에서 "많이 도움 주셨다. 기억이 많이 난다"고 했다.

1988년 7월 8일이었다. 그의 동생이 죽은 지 닷새가 지났던 그날, 노 전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 섰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 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시작하는 그 유명한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7월 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15세 된 소년 근로자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직업병에 대비한 의료체계의 미비, 수은중독임이 밝혀진 이후의 회사의 비정한 처사와 노동행정관청의 태만을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또래의 제 자식놈은 아직 공부조차 힘이 들어서 온갖 응석이나 부리고 있는 철부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 소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 나이에 멀리 서산에서 서울까지 부모 슬하를 떠나온 것만 해도 애처로운 일인데 그런 어린아이가 귀중한 생명이 좀먹어 가는 그 위태로운 작업장에 방치되고 끝내 목숨까지 잃게 한 책임은 결국 무능한 그의 부모만이 져야 되는 것입니까?"

"그때 노동부 사람들 따귀 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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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오기 전 고 문송면 군 모습. ⓒ 문근면 제공



회사가 법적으로 책임 져야 하는 사건임에 분명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작업장 바닥에 수은 방울이 흩어져 있었으며 공기 중 수은 농도도 한계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고 문송면 산업재해 노동자 장례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에는 또한 이렇게 적혀 있다.

"'칙-칙 하면서 수은 주입 호스에서 새어 나오는 수은 증기와 수은 주입실 바닥에 액체 상태로 깔려 있는 수은이, 밀폐된 공간 속에서 겨울철 피워놓은 난로의 열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근무했다. (중략) 15세 어린 소년이 적절한 배기 장치 등 안전 조치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실정법상 금지된 유해·위험 작업을 하다 2달만에 수은 중독 및 유기용제(신나) 중독이 되고, 그러고도 4달이 다 되도록 산재보험 처리되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 사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 그 누구보다 분노했던 이가 김은혜 당시 구로의원 상담실장(67·현 원진 직업병관리재단 이사)이었다. 지난 6월 26일 충북 괴산에서 만난 김씨는 "나쁜 놈들, 세금 먹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었다"면서 "그 때 노동부 사람들 따귀를 때리고 싶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만 했다. 당시 노동부 서울남부지방 사무소는 문송면군의 산재 신청서를 세 번이나 반려했다. 그 때마다 가족 곁을 지켰던 이가 또한 김씨였다.

"현장이 환기도 제대로 잘 안 되는 상태였으니까, 그냥, 흄(Fume, 화학 반응 등에 의해 발생한 연기) 상태 그대로, 피부를 통해 수은이 몸에 들어온 거예요. 그게 치명적이었던 거죠. 그때 제일 열 받았던 것이 송면이 같이 어린 노동자를 그렇게 위험한 작업장에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투입했다는 거였어요. 이건 이중, 아니 삼중 범죄라고 생각해요. 징계가 아니라 (사업주를) 구속시켰어야 했죠."

김씨는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역학조사에서 수은 중독 증상이 나타났던 애들이 4명 더 있었다"고 했다. "그 어린 친구들과도 얘기하고 보호했어야 했는데, 자꾸 애들이 만남을 피했다"고 했다. "회사에서 어떻게 했는지 주눅이 들고 기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끝이었다고 했다.

"송면이의 죽음으로 산재발생률 세계 1위 불명예 방치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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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송면 군과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의 당시 수은 검출 검사 결과 ⓒ 이정환


문송면군이 사망했다. 산업 재해가 맞다고 정부가 인정한 지 보름도 안 돼 찾아온 소년 노동자의 죽음, 그때, 그 소식을 듣고 김씨는 "쇠망치로 맞은 거 같았다. 막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김씨는 밤새도록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고 했다.

"나이 어린 노동자가 불법적으로, 얼마나 처절하게 죽어갔는지" 알려야 했다. 또한 "다시는 송면이 같은 죽음이 없도록, 정부에 항의도 하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어른들이 힘을 모아야 했다. 노동계, 보건의료계, 종교계, 법조계, 학계, 정계 등 많은 인사들이 호응했다.

그 후 많은 일이 일어났다. 노동부 서울남부지방 사무소장이 직위해제됐다. 회사 측과는 최소한의 협상이 이뤄졌다. "당 회사에 근무하던 근로자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고 산재보험 처리 지연으로 치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점에 대해 사과합니다"는 기록이 합의문 별지를 통해 남았다. 전국 수은사용업체 등에 대한 일제조사가 진행됐으며, 여론에 밀린 정부는 산업안전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문송면군의 죽음은 앞서 발생했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아연도금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고 고상국씨가 중금속 카드뮴에 중독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초의 공식 진단이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당시 보고서를 통해 "송면이가 죽은 1988년을 산재 추방 원년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적었다.

"송면이의 죽음과 이어 알려진 산재 실태로 말미암아 노동부 등 정부에서도 더 이상 살인적 작업 환경과 산재 발생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

문송면 죽음에 이르게 한 사업주 날인 "완전 폐지된 게 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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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송면 군의 산재 신청을 반려했던 당시 노동부 서울남부사무소 공문 ⓒ 이정환


하지만 이 불명예는 지금까지도 방치되고 있다. OECD 산재 사망률 1위는 여전히 우리나라다. 사망자가 230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원진레이온 사건 피해자가 자살하는 일은 2010년대 들어서도 계속됐다. 2007년 숨진 고 황유미씨처럼 삼성 공장에서 반도체나 LCD를 만들다가 직업병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는 118명에 이른다.

30년이 지나도록, 도대체 왜? 1989년 10월 14일 자 <한겨레> '산업안전보건법 손질 본격화'란 제목의 기사에서 그 답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위해 보건의료단체 공동대책위 등이 주최한 공청회에서는 이런 점이 지적됐다고 한다.

"현행법의 문제점으로 △사업장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돼 법 적용이 되지 않는 업종과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에 대한 안전 대책은 도외시되고 있다는 점 △정부의 감독 체계가 허술하고 사업주에 대한 벌칙 조항이 허술하다는 점 △노동자의 참여권이 없어 산업 안전이 사용자에게만 맡겨져 있다는 점 △건강 진단과 작업 환경 측정이 형식적이라는 점 등 많은 부분이 지적됐다."

이 기사를 지난 5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에게 보여줬다. 최 실장의 첫 번째 소감은 이것이었다. 그 소감에는 아직 적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낯설 만한 사실도 하나 포함돼 있었다.

"30년 전 문송면 군이 산재 신청했을 때 사업주가 날인을 거부했죠. 그리고 노동부도 '사업주가 동의 안 하는데 어떻게 하냐', 이런 식으로 하다 나중에 받아줬죠. 그런데 이 사업주 날인이란 제도 자체가 정말, 완전 폐지된 게 올해입니다."

사실이다. 이 내용이 포함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 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것이 지난해 12월 3일이었다. 최 실장은 "지난 30년 동안 최소한의 상식적인 것이 법률적으로 혹은 행정 절차에서 안 바뀌고 계속 유지됐던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대로 인용해도 되는 1988년 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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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 군 사망 이후 노동단체와 보건의료단체를 중심으로 '고 문송면군 산업재해노동자장 장례위원회'가 결성됐다. 사진은 1988년 7월 17일 '장례위' 주관으로 치러진 장례식 당시 모습. ⓒ 민주노총


하지만 앞서 소개한 '산업안전법 본격 손질화'란 제목의 1988년 기사에서 실질적으로 손질이 이뤄진 부분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없다.

문송면군이 일했던 곳은 100인 이하 사업장이었다. 노사 동수로 구성하여 사업장 안전 보건 등에 대해 여러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상시 노동자 1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고용 구조 변화로 인해 하청 노동자들은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여전히 '상시 노동자 숫자'만을 따진다.

사업장의 종류 또한 그때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최 실장은 "종사자 비중으로 놓고 보면 지금 서비스 산업이 거의 60% 가까이 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서비스 사업장 상당수는 산업안전보건위 적용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 노동자가 포함된 것 역시 올해 들어서였다. 최 실장은 "이 문제를 제기한 지 10년 가까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업주에 대한 벌칙 조항이 허술하다"는 것 역시 같다. 최 실장은 "산재 사망이 발생한 기업에 대해서는 보상뿐 아니라 예방에 나서야 할 만큼 불이익이 주어져야 실제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자꾸 기업들이 "인사 고과나 성과 등 인사 시스템으로 담당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쪽으로 계속 간다"고 했다. 산재보험을 신청한 직원이나 팀에게 불이익을 주는 곳이 과연, 지금, 대한항공뿐일까. 1988년 그때, 노무현 의원은 노동부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안타까운 죽음의 숫자... 195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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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노무현 의원의 대정부 질의1988년 7월 7일, 노무현 민주당 의원이 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질의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현재 전국적으로 미성년 취업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노동 시간이 세계 최장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다시 안 묻습니다. 한국의 산재율은 세계의 몇 번째입니까? 해마다 산재로 죽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그 중 병신이 되는 수는 몇이나 됩니까? 좀 알기 쉽게 1000명을 기준으로 하면 한 해에 몇 명이 병신이 되거나 죽는가? 한 노동자가 40년 일한다면 산재로 죽거나 병신이 될 확률은 몇 명 정도가 되고 그 중에서 죽게 될 확률은 몇 %나 되는지 1000명을 기준으로 해서 역시 한 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은 꼭 한 번 정확한 수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보도를 보면 1988년 사업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900여 명이었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7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전체 사망자(사고+질병)는 1957명이었다. 그 안타까운 죽음의 숫자가 30년이 지나도록 안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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