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 김남주의 일침... 언제까지 도련님·아가씨인가?

성차별적 가족 호칭 개선 목소리 높아져... "'OO님'하거나 시가-처가 호칭 동등해야"

등록 2018.07.10 18:30수정 2018.07.1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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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4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한 참가자가 국립국어원의 성차별적 정의를 바꾸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다. ⓒ 유성애



"며느리들은 시댁 식구들에게 도련님, 아가씨, 서방님이라고 높임말을 쓰는데 정작 처의 식구들은 처의 남동생, 여동생이라고만 불리잖아요. '세상을 바꾸자'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쯤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2012년 당시 KBS 2TV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며느리로서의 고충을 연기한 배우 김남주씨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한국의 가족문화는 호칭부터 이미 '불평등함'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발언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가족에게 극존칭을 써야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가족이 손윗사람이라도 '님'을 안 붙인다. 일반적으로 '처가'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정작 시가는 높임말인 '시댁'을 주로 사용하는 관습도 가부장제 하에서의 불평등한 호칭 문제를 잘 보여준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해 성차별적 가족 호칭을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이런 호칭에 대해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06년 말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호칭 바꾸기- 호락호락 캠페인'을 통해 '가족 내 평등한 호칭문화' 도입을 주장했다. 당시 민우회는 도련님, 아가씨 등이 과거 종이 상전을 부르던 표현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올케'나 '며느리' 등의 호칭도 '남존여비' 문화에 근거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7년 청와대 청원게시판이 만들어진 이후엔 도련님과 아가씨 같은 '여성차별 호칭'을 없애거나 개선하자는 청원이 약 25건 올라왔다. 그중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한 시민이 올린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3만300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 시민은 "성평등에도 어긋나며 여성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바로 고쳐져야 하며 수많은 며느리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보호 받아야 할 권리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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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2월 2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주말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제작사 피디 차윤희 역의 배우 김남주가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 언어 예절'(2011)은 도련님과 아가씨를 '공식 호칭'이라고 규정한다. '표준 언어 예절'을 통해 국립국어원이 가정에서의 호칭, 지칭에 대한 '표준 화법'을 마련하면서, 정부의 공식문서에서도 성차별적 호칭이 계속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여성가족부가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화와 생활을 소개하는 '한국생활가이드북'(2017)의 호칭 부분은 '표준 언어 예절'에 의거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집사람'이라는 말을 남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를 소개할 때 쓸 수 있는 말로 규정하는 바람에, 외국인이 성차별적 호칭을 배우게 되는 셈이다.

2006년 한국여성민우회가 호락호락 캠페인을 할 당시엔 남성 언어학자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분위기가 다르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017년 실시한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실태 조사'를 통해 4000명의 국민에게 '도련님, 아가씨 호칭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 묻자, '개선이 필요하다'(25%가 매우 그렇다, 40.8% 조금 그렇다)는 응답이 65.8%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름을 부른다'나 'OO씨로 부른다'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세계 여성의 날 광화문광장에서 국립국어원의 가족관계 호칭 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던 배윤민정(33)씨는 1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서로의 이름에 OO님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배윤씨는 ""결혼하고 가장 이상하게 느꼈던 것은 시가에서 통용되는 호칭문화다. 시가 사람들을 줄줄이 '님'자를 붙여서 부르는데, 이중에서 내게 '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며 "성평등한 가정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가족 관계의 호칭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서로의 이름에 '님'자를 붙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굳이 새 호칭을 만들어야 한다면 아내와 남편 쪽의 구분 없이 서로의 형제, 자매를 동일하게 부르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즘 공부하는 엄마 모임 '부너미'에서 활동하는 이성경(35)씨는 "주변에서도 도련님, 아가씨 등의 호칭을 부르기 싫어한다. 저 같은 경우도 애들 기준으로 'OO 고모', 'OO 아빠'라고 부른다. '외'자를 붙이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아이들이 할머니를 사는 지역으로 구분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호칭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안 그래도 소통하기 불편한 남편식구들이랑 호칭이 불편하니 해야할 말도 안 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언어학자들이 고민하고, 국립국어원이 의견을 수렴해서 통일된 성평등한 호칭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표준 언어 예절이 2011년에 나왔는데 7년 동안에서 사회가 급변하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여성들의 호칭 개선 요구를 비롯해, 새로운 국민들의 언어 양상에 대한 심층 연구를 진행 중이고, 결과를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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