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 3인의 증언
"회장님은 '정정하다'는 말 싫어하셨다"

[인터뷰] 그들이 털어놓는 '박삼구 기쁨조' 실체... "바지 유니폼 입으면 진급 포기"

등록 2018.07.11 16:49수정 2018.07.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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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논란' 질문받은 박삼구 금호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최근 논란이 된 '기내식 대란'과 '갑질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항공법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아세요?"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 A씨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이다. 항공법 제2조 5항에는 "객실승무원"의 정의가 이렇게 적혀 있다.

"항공기에 탑승하여 비상시 승객을 탈출시키는 등 안전 업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을 말한다."


이어 그는 "부끄럽다"고 말했다. "사실 어떤 때는 (항공법에 따른 역할을 해낼)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고, "현실이 바뀌길 바라지만 밝은 미래가 잘 보이진 않는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A씨는 최근 '박삼구 기쁨조'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를 떠올리며 "발가벗겨진 느낌"이라고 한탄했다. "쓸쓸한 마음"으로 영상을 지켜볼 때와 친구들이 "너희 회사 북한이야?"라고 물어온 것까진 괜찮았단다. 그런데 부모님이 애써 걱정을 감춘 채 "요새 어려운 일 없지?"라고 물어올 때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A씨 역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일명 '기쁨조 현장'에 여러 차례 불려갔다고 했다. 그는 "몇 가지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기자는 A씨를 포함한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 3명으로부터 박 회장 찬양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A씨와는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서, B·C씨와는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세 사람 모두 5~10년차 사이의 경력을 갖고 있다.

그가 부른 찬양 노래 제목을 밝히지 못한 까닭

A씨는 "박 회장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따르면 박 회장은 여성 객실승무원들에게 "왜 초밥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인지 아냐"고 물은 뒤 "여자는 손이 따뜻해서 초밥을 만들 수 없다"고 자답하며 손을 잡았다고 한다. A씨는 구체적으로 "손깍지를 자주 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떠올렸다. 손깍지에 대한 기억은 B씨도 갖고 있었다.


과거 박 회장은 매월 한 차례씩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승무원들이 로비에 나와 그를 맞아야 했다. 승무원들은 박 회장을 찬양하는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야 했고, 그와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아야 했다. 그 와중에 박 회장은 "기 받으러 왔다"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고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최근 벌어진 '미투 운동' 와중에 이미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다 최근 '기내식 대란'이 터지며 박 회장과 경영진을 향한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 문제가 재점화됐다. 급기야 박 회장 앞에서 할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신입 승무원들의 모습이 영상 제보를 통해 언론에 공개됐고, 이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익명채팅방에 제보 사진이 여러 장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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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이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둘러싼 '기쁨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이번 사태 후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익명채팅방에 여러 제보 사진을 올렸다. ⓒ 아시아나항공 익명채팅방


B씨는 "나도 신입 승무원 때 불렀던 노래가 아직도 기억난다"라며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장미의 미소'라는 노래를 개사해 부르지 않나, 우리는 다른 노래를 개사했는데 그것 못지않게 차마 듣고 있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동영상 속 승무원들은 노래의 원래 가사를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등으로 개사해 합창하고 있다.

이어 B씨는 "매 신입 기수마다 부르는 노래가 다르기 때문에 (노래 제목을 말하면) 내가 누군지 드러날 수 있다"라며 "다만 '장미의 미소'처럼 사랑과 회장님이란 가사가 들어가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C씨는 처음 박 회장 찬양 행사에 불려갔을 때 들은 몇 가지 금기사항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한 선배는 C씨에게 "회장님한테 절대 '정정하다'고 말하지 마라, 그 말을 싫어하신다"라는 지침을 들었다고 한다. C씨는 "그러니까 늙은 사람 취급하지 말라는 거다, 그 선배는 '마치 남자친구 대하듯이 회장님 대하라'라고 강조했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아, 너무 잘 생기셨어요', '왜 이렇게 자주 안 오셨어요', '보고싶었잖아요' 등의 말을 해야했다"라고 덧붙였다.

"자발적? 내가 거부했다면 회사에 다닐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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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직원들 광화문 첫 촛불집회 '기내식 대란'이 벌어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삼구 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경영진 교체와 기내식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아시아나항공 측은 "평소 격려 차원에서 박 회장이 자주 회사를 방문하며, 당시 신입 승무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자발적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현재는 이러한 행사를 갖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세 승무원은 회사 측 해명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먼저 '자발적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해명에 대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무엇이 자발적이라는 건가"라는 지적이다.

A씨는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온전히 회사에 다닐 수 있었을까?"라며 "저항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한 내가 부끄럽지만, 자발적으로 했다는 것만큼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C씨도 "신입 승무원 수료식 때 제 모습을 보며 엄마가 '너 괜찮겠니?'라고 정말 조심스럽게 물으시더라"라며 "부모님마저도 당장 때려치우라고 못하는데 나는 어떻겠나, 이래도 자발적인가"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적은 "박 회장 찬양 행사가 없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B씨는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신입 때부터 기쁨조에 투입됐다"라며 "비행기 안에서 요구받는 행동도 본질적으로 같다, 안전보다는 서비스나 용모에만 집중하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A씨는 "과거 노조에서 바지 유니폼 도입을 위해 엄청 노력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바지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라면서도 "하지만 내가 만약 바지 유니폼을 입고 비행기를 탄다면 모든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쟤는 진급을 포기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C씨는 "승무원이 처한 상황은 곧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다, 안전을 위해 바지와 치마 중 무엇을 선택해야겠나"라고 호소했다.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기쁨조 #승무원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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