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폰만 만지는 아들... 참 다행이야

[입대한 아들 4] 신병훈련 수료식에 가다

등록 2018.07.16 09:45수정 2018.07.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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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5주간의 신병훈련을 수료하고 맞은 자유니 그럴 만도 하다. 친구들과 핸드폰으로 연락하느라 바쁘다. ⓒ unsplash


펜션 바닥에 꼼짝 않고 누운 아들이 손에서 전화를 놓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자 하지만 아들의 대답은 '다녀오세요'다. 아들이 5주간의 신병훈련을 수료하고 맞은 자유니 그럴 만도 하다. 친구들과 핸드폰으로 연락하느라 바쁘다.


"너희는 화생방 어땠는데?"
"아~그랬어? 야, 우리 화생방 때 진짜...."

아들의 통화 소리를 들으니 신병훈련소의 생활이 어땠는지 대충 감이 잡힌다. 부모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도 친구 사이라 술술 흘러나온다.

드디어 아들과 재회하는 날

수료식을 가기 일주일 전부터 인터넷에 올라온 수료식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리스트엔 핸드폰과 충전기 그리고 펜션에서 편하게 입을 바지, 500원짜리 동전과 천 원짜리 지폐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직접 물어보면 좋겠지만 훈련소에 있는 아들과는 통화시간이 길어야 3분이고 5주간 공식적으로 두 번 통화의 기회가 주어질 뿐이라 자세한 걸 물어볼 수 없었다.


엄마인 내가 여기저기 물어 준비물을 챙겼다. 아들이 좋아하는 과일, 수박과 참외 그리고 양념한 갈비와 구이용 고기도 따로 준비했다. 준비를 대충 하고 선배 부모들께 다시 확인하니 500원짜리 동전은 필요가 없다고 한다.

초등학생인 막내도 데려가려고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다. 큰애랑 막내가 나이 차가 많이 나니 막내는 신병 수료식에 참가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다 하게 된다.

수료식 당일. 바나나 하나씩 먹고 오전 7시 반에 집을 나섰다. 막내는 뒷자리에서 자고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신병훈련소로 출발했다. 라디오에선 크라잉넛의 <독립군가> 노래가 흘러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부르던 독립군가를 음반으로 냈다고 한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온다. 묘하다. 군인 엄마가 되고 보니 독립군가도 그냥 넘겨듣지 못한다. 여태까지 독립군을 나와는 상관없는 애국심이 강한 분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군인 엄마가 되고 보니 그분들도 누군가에겐 자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어떤 부모라도 나라를 위해 독립군이 된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충일에도 비슷한 마음이 들어 경건한 마음으로 베란다에 조기를 걸었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강당으로 걸어가며 훈련병이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한 열명 남짓의 훈련병이 흰장갑을 끼고 직각으로 행진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 아들은 그 무리에 없다. 강당 앞 게시판에 훈련병 사진이 달려있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란다. 종군 장교가 교회에서 찍은 사진을 뽑아서 부모에게 서비스로 주는 거 같다. 우리 아들 사진도 한 장 있다. 냉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있다. 나는 종이를 받지 못했는데. 뭔지 궁금해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수료식때 훈련병이 서있는 위치도다. 이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아들 위치를 외웠다. 강당에선 신병 자대배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자대배치는 컴퓨터 추첨을 통해서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난수를 넣고 사회자가 버튼을 누르면 자대배치가 확정이 되어 나온다.

신병의 이름 옆에 배치된 부대가 적혀 있다. 순간 강당엔 적막감이 흐른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부모들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철책을 지켜야 하는 수색대도 포병도 공병도 줄지어 나온다. 신병들은 내일이면 다들 낯선 부대로 옮겨 가야 한다. 우리 아들과 신병들은 자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한동안 자대에 가면 많이 낯설 텐데 얼마나 힘들까?

자대배치가 끝나고 그동안 신병 훈련 받은 영상물이 상영이 된다. 우리 아들 얼굴이 보일까 싶어 감상을 하려는데 남편이 연병장으로 빨리 나가자고 한다. 늦게 나가면 아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나.

군악대가 들어오고 신병들이 손에 장갑을 끼고 무슨 구호를 외치며 빠르게 뛰어 들어온다. 막내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신병들이 연습을 하느라 힘들었겠다. 대열을 맞추고 서니 우리 아들 얼굴이 보인다. 좀 있으니 신병들이 한손에 군번줄과 이등병 패치를 들고 선다. 사회자가 부모들에게 아들의 군번줄을 목에 걸어주고 패치를 달아주라고 한다. 군번줄은 남편이 걸어주고 나는 패치를 붙여 주었다.

5주 전 아들을 이곳 신병훈련소에 두고 떠날 때는 마음이 많이 아렸다. 5주가 지나서 아들이 훈련을 잘 마쳤다는 게 너무 장하다.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신병훈련을 다 마쳤겠지만 엄마인 나는 내 아들이 세상의 문 하나를 제 힘으로 통과해냈다는 게 기특했다.

내 모든 행운을 너에게 줄 수 있다면

아들을 펜션에 데려와서 갈비도 구워주고 좋아하는 수박도 썰어주었다. 군복을 벗은 아들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누워 있다. 예전처럼 내 곁에서 마음 편히 쉬는 모습이 반갑다.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그간에 있던 일들을 털털 털어낸다.

복귀할 시간이 되어서 펜션에서 짐을 꺼내 차에 싣는데 한 짐이다. 음식쓰레기도 한 짐이고. 고작 두끼 먹었는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부대 앞에서 아들을 껴안고 사진을 찍었다. 모든 가족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신병을 천천히 들여보내고 싶어 한다. 빨간 모자의 조교들은 신병을 빨리 들여 보내라며 부모들을 재촉한다. 눈치가 보인다.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추고 안 떨어지는 손을 떼어서 아들을 들여보냈다.

부대 철문으로 들어간 아들을 뒤로 하고 막내 손을 잡고 차쪽으로 걸어가는데 남편이 안 보인다.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니 남편이 철문 옆 담벼락에 서서 부대 안을 보고 있다.

아들 들어가는 걸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고 부모들이 담벼락에 다닥다닥 매미처럼 붙어 있다. 나도 따라 가서 보니 우리 아들이 그 안에 서서 다른 동기들이 들어오면 함께 이동을 하려고 대기 중이다. 좀 기다리더니 구령에 맞춰 절도 있는 걸음으로 출발한다.

'잘 들어가라 아들.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너는 언제나 행운이 함께 할 거야. 자대에서 좋은 선임 만나길, 좋은 지휘관 만나길...'

내가 가진 모든 행운을 앞으로 20개월간 군에서 지내야 하는 아들에게 전부 주고 싶다. 내가 열 달을 정성스레 배에 품어 세상에 자식을 내 놓았던 것처럼 군대도 우리 아들을 스무 달 잘 품어서 다시 사회로 내보내 주었으면 좋겠다.

자식을 배에 품은 동안 모든 일을 조심했듯 남은 스무 달 동안 주변에 공덕을 잘 쌓아야겠다.
#군에 간 아들 #신병훈련소 #수료식 #입대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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