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알못'이던 아저씨가 들려주는 푸나무 이야기

[숲책 읽기] 정병길,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

등록 2018.07.16 09:55수정 2018.07.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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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철수와영희


남방부전나비는 어떻게 이 공원에서 잘 살고 있는 걸까? 아마도 녀석이 의존하는 식물이 흔한 괭이밥이라서 그런 것 같아. 괭이밥을 본 적 있니? 괭이밥은 공터, 콘크리트 블록 사이, 시멘트 바닥의 깨진 틈 등 도시의 버려져 있는 공간에서도 잘 자라는 흔한 풀이야. (39쪽)


'식알못'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살짝 놀라다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식알못'이라니, 이런 재미난 이름을 생각해 낸 분은 얼마나 즐겁게 하루를 맞이할까요? 그러나 스스로 '알못'인 터라 '잘알'이 되고 싶어 애를 쓰시지 싶어요.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정병길, 철수와영희, 2018)를 쓴 정병길 님은 오랫동안 식알못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식알못인 이녁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여겨 꾸준히 푸나무를 배우려 애썼고, 아직 '식잘알'은 아니라 하더라도 제법 푸나무를 잘 아는 어른으로 달라졌다고 합니다.

도시공원 생태 이야기를 다룬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어른이 아닌, 아이들한테 풀이며 꽃이며 나무하고 얽힌 살림살이를 즐겁고 슬기롭게 들려주는 어른이 되려고 애쓰면서 알아낸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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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철수와영희


뚜렷한 정답은 없지만, 사람에게도 해로울 수 있는 농약을 쓰는 것은 점차 줄여 나가야겠지? 오래된 좋은 숲의 생태계가 어떻게 각각의 생물을 조절하는지를 배워야 해. 예를 들어, 한 종의 식물만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겨. (48쪽)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뭇잎을 뜯어서 씹어 보는 친구가 있구나. 별맛이 안 나는 데다가 떫기까지 하다고? 나뭇잎이 만든 단맛은 포도당인데, 양이 적은데다가 식물을 노리는 동물들이 많기 때문에 먹기 거북한 물질도 함께 만들어 놓아서 그래. (64쪽)


책을 읽으며 우리 집 마당이나 뒤꼍이나 가까운 숲을 떠올립니다. 괭이밥이 자라는 언저리에서 곧잘 남방부전나비를 보았는데, 서로 얽히는 사이였군요. 떫구나 싶은 맛이 나는 나뭇잎에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네요. 그런데 나뭇잎은 떫기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살짝 떫으면서도 달달한 맛이 있어요. 이때에 달달한 맛이란 나뭇잎이 햇볕을 보며 스스로 빚은 포도당인 셈이로군요.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를 살펴서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나뭇잎 생김새나 두께나 부드러움이나 털을 살펴서 나무마다 다른 잎결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맛보기가 있습니다. 나뭇잎을 천천히 조금씩 씹으면서 잎마다 다른 맛을 느껴 볼 만해요. 이러면서 나무가 자라 온 삶을 잎맛으로 새삼스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쑥잎을 덖어 쑥차를 마실 적에도, 꽃잎을 쪄서 꽃차를 마실 적에도 그렇지요. 풀 한 포기하고 꽃 한 송이가 자라던 들이나 밭이나 숲을 돌아보면서 싱그러운 냄새와 맛을 생각할 만하구나 싶어요.

광합성이 중요해. 지구에서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거든. (67쪽)


광합성은 분명히 놀라운 현상이야. 그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마치 식물의 잎이 햇빛을 연료로 돌리는 공장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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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철수와영희


광합성이란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고 합니다. 나뭇잎이나 풀잎이 햇볕을 받아서 새 숨결을 짓는 일이란 엄청난 공장하고 견줄 만하다고, 아니 엄청나게 크거나 많은 공장을 훨씬 웃도는 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더 생각해 보니 '광합성을 하는 풀이나 나무'는 우리한테 먹을거리를 베푸는 셈이로군요. 햇볕을 받지 않은 먹을거리란 이 지구에 없겠지요? 해가 사라지면 지구는 바로 깜깜히 얼어붙을 테니까요.

나물이나 열매를 먹는 살림이란 어떻게 보면 햇볕을 먹는 셈입니다. 광합성을 먹는다고 할까요. 즐겁게 광합성이란 일을 한 풀하고 나무한테서 고마운 숨결을 나누어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염생 식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금기를 극복하며 살고 있어. 물이 통과하는 막을 사이에 두고 농도가 진한 액체와 묽은 액체가 있으면 농도가 진한 쪽으로 물이 이동해. 이를 삼투압 현상이라고 하지. (122쪽)


씨가 있는 야생의 바나나라면 새가 서로 다른 바나나꽃을 오고가며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바나나 씨앗을 만들었을 거야. 그리고 동물이 과일을 먹고 씨앗을 퍼뜨리겠지? 무서운 곰팡이들이 바나나의 뿌리를 시들게 하더라도 다양한 바나나 중에는 분명히 곰팡이 균을 이겨낼 바나나가 있을 거야. 반면 오늘날의 바나나 농장에는 같은 품종의 바나나가 무척 넓은 면적에 심겨 있어. (136∼137쪽)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는 식알못에서 식잘알로 거듭나려고 힘쓴 어른이 익힌 이야기를 아직 '식알못인 어린이·푸름이'한테 쉽고 부드러이 들려주는 얼거리인데, 다음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짚어 줍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몰랐거나 엉성하게 알았던, 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푸나무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능금나무에 벌이나 벌레가 찾아드는 까닭, 봄에 피어나는 꽃하고 봄꽃이 필 무렵 맞추어 깨어나는 풀벌레, 서로 짝꿍 사이인 애벌레하고 풀잎·나뭇잎, 철 따라 새로 어우러지는 풀하고 벌레, 꽃이 피기 앞서 잎은 어떤 모습인가, 빛과 볕을 먹는 푸나무라면 우리는 푸나무를 거쳐 빛과 볕을 먹는 얼거리, 푸나무가 좋아하는 온도, 뿌리와 줄기, 씨앗을 퍼뜨리는 슬기로운 나무, 열매를 맛있거나 맛없게 내놓는 까닭, 사막에 피는 꽃, 메마른 땅을 바꾸는 풀 같은 이야기를 다루어요.

여러 이야기 가운데 무화과나무하고 무화과말벌하고 얽힌 이야기가 저로서는 매우 재미있고 반가웠어요. 그동안 '맛있는 무화과알'하고 '맛없는 무화과알'이 왜 갈리는가를 몰라서 궁금했는데, 무화과말벌이 꽃가루받이를 해 준 무화과알이 맛있고, 무화과말벌이 없는 비늘집에서 키운 무화과알은 맛없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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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철수와영희


무화과 열매로 깊이 들어가는 무화과말벌은 안전해. 무화과나무는 열매의 입구를 짝꿍 동물인 무화과말벌의 머리 모양과 같게 만들었거든. 다른 기생말벌은 머리 모양이 맞지 않아서 무화과 열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146쪽)


책 끝자락에서는 '유전자를 건드린 푸나무를 한 곳에 잔뜩 심어서 농약과 기계와 비료를 쓰는 현대농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어린이·푸름이한테 넌지시 묻습니다. 아름다운 숲에는 온갖 풀하고 나무가 어우러지는데, 사람이 따로 짓는 논밭에는 으레 한 가지 남새나 곡식이나 나무만 자란다면, 이때에 '한 가지 남새나 곡식이나 나무'는 병해충을 어떻게 견디거나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요.

이 대목에서 더 살핀다면, 한 가지만 잔뜩 심는 곳에 병해충이 들끓고 괴롭다고 하듯이, 우리 삶터도 모든 것을 똑같은 틀에 가두려 하면 여러모로 서로 힘들거나 무너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우러지기에 함께 즐거울 수 있고, 함께 즐겁기에 다 다른 숨결이 서로 돕고 아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 다른 사람을 똑같은 틀에 가두려 하면 참으로 괴롭거나 아프겠구나 싶어요.

식알못하고 식잘알 사이를 생각해 봅니다. 식알못에서 식잘알로 거듭나는 길에는 푸나무뿐 아니라 우리 곁이나 둘레를 더 눈여겨보거나 찬찬히 살피는 눈길이 되리라 봅니다. 우리가 식잘알이 되어 우리 곁 풀이나 나무를 상냥히 돌아보는 눈썰미를 키운다면, 풀이나 나무만 잘 알 뿐 아니라, 우리 삶터를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슬기도 새삼스레 알아내거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잘알은 '삶잘알(삶을 잘 아는 사람)'도 되겠지요?
덧붙이는 글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정병길 글 / 안경자 그림 / 철수와영희 / 2018.7.7.)

선인장은 어떻게 식물원에 왔을까? - 도시공원 생태 이야기

정병길 지음, 안경자 그림,
철수와영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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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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