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대평원에서 만난 여우 가족, "제발 평원을 지켜줘"

사방이 초원으로 둘러싸인 야생의 나라, 내몽고 대평원을 가다 ①

등록 2018.07.18 22:00수정 2018.07.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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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밝아오는 초원의 새벽. 주변은 온통 새소리 바람소리뿐이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평선 너머까지 드넓게 초원이 펼쳐진 평원의 나라, 밤하늘엔 은하수가 흐르고 그곳에서 별들이 무한정 쏟아지는 나라, 내몽고 평원을 다녀왔다. 지난주 3박 4일 간의 내몽고 평원에서의 생활은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지막한 사구(모래 언덕)가 드문드문 솟아 있을 뿐 사방이 지평선으로 펼쳐져 있는 곳. 몽골인들이 기르는 말과 소 그리고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평화의 땅 내몽고. 그곳은 무수한 야생의 생명들도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생명의 땅이었다.

새벽 평원에 서 있으니 저 멀리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떠오르고 주변은 온통 새소리와 바람소리뿐. 갑자기 하늘 위로 '뚜루 뚜루' 하며 두루미가 날고, 귀를 기울이면 컹컹 여우가 하품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곳. 이것이 생명평화의 땅 내몽고의 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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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새벽, 아침이 밝아온다 새벽 평원 저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른다. 평원이 깨어나는 시간. 야생의 생명들이 환호를 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내몽고 평원을 환경운동연합과 에코피스아시아가 함께 주관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이 후원하는 '2018 중국 내몽고 정란치 사막화방지체험단'의 일원으로 지난 4일간 묵으면서 온몸으로 내몽고 평원을 느끼고 돌아왔다. 그 소식을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나누어보려 한다. 특히 첫 시간으로 그곳에서 만난 낯선 야생의 생명들 이야기부터 꺼내보자.

새벽 내몽고 평원에서 듣는 생명의 소리

새벽 네 시 아직 어둠이 짙게 내린 평원에 섰다. 희뿌옇게 여명이 시작되려는 찰나, 하늘엔 여전히 은하수가 흘러가고 별빛이 대지를 적시는 시간. 사방은 고요하고 들리는 소리는 온통 새소리와 바람소리뿐이었다.

대지의 기운이 저 발끝에서부터 고스란히 전해져 시나브로 평원 위에 내달리고 있는 나를 느낀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를 무한정 걷게 된다. 사방이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곳. 우리가 묵은 '게르'가 없었다면 방향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대지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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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재두리미 가족이 유유히 하늘을 날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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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버린 호수의 남은 물가에 황오리 무리가 쉬고 있다가 낯선 이방인이 나타나자 경계를 하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저 멀리 지평선에서 붉은 기운은 더 넓게 펼쳐지면서 해가 떠오른다. 순간 '쇠재두루미'가 편대 비행을 하며 바로 머리 위로 날아간다. 멸종위기종인 이 귀한 녀석들 중에서 우리 철원 땅이나 낙동강에도 다녀간 친구들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더욱 뭉클해진다. 이 친구들이 잠을 청했던 호수까지 가닫자 저 멀리 황오리들도 기지개를 펴며 낯선 이방인을 경계한다.

그들이 행여 놀랄세라 멀리 돌아서 갈 수밖에 없다.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이며 걷게 된다. 발밑에선 야생화들도 드문드문 피어 낯선 이방인을 또한 반겨준다. 야생화의 모습에 취해 그 향기를 취하려는 순간 어디서 재빠른 움직임이 다시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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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원 가운데 자리잡은 호수. 호수의 물이 말라버렸다. 한족들의 농사면적이 넓어지고 지하수 사용량이 늘어가자 이런 호수들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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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타난 너구리 한 마리가 손살같이 내달린다. 이렇게 빨리 뛰는 너구리는 처음 봤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방 나무 한 포기 없는 이 평원에 무슨 생명이 저리 재빠른 발놀림을 보이는 것인가 싶어 그곳을 바라 보니 너구리로 보이는 포유동물 한 마리가 낯선 이방인의 환심이라도 사려는 듯 무성한 생명력을 뽐내며 내달린다. 아, 너구리가 이렇게 빠른 동물인 줄이야. 아마도 들쥐사냥이라도 하려고 나왔다가 이방인의 움직임에 놀라 달아난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은 온통 들쥐들이 파놓은 흙굴이 널려 있다.

초지로 이루어진 평원엔 몽골인들의 가축인 소와 말과 양떼들이 내지른 배설물이 초원에 영양을 공급하고, 그것으로 풀과 무수히 작은 곤충들이 자라나고, 이를 들쥐와 같은 설치류가 먹고, 너구리와 독수리 같은 포식자들은 다시 이들을 잡아먹고 사는 완벽한 생명순환의 현장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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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원이 펼쳐진 내몽고 초원에서 가축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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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고 평원 토끼의 엄청난 점핑력. 마치 고라니가 뛰듯이 달린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명순환의 질서에 감탄하는 사이 이번에는 또다른 낯선 생명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특이하다. 다람쥐도 아닌데 흰색을 띤 녀석은 꼬리에 긴 댕기를 달고 쏜살같이 내달린다. 처음 보는 이 낯선 생명도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그 존재를 알리며 이 평원의 주인이 자신임을 웅변이라도 하려는 것 같다.

이 독특한 생명을 뒤로 하고 자그만 모래 언덕을 만났다. 고운 모래의 감촉에 눈을 떼지 못하는 순간 또다른 생명 하나가 껑충껑충 내달린다. 낙동강에서 자주 목격하게 되는 고라니의 뜀박질을 닮은 녀석은 바로 토끼였다. 초원의 토끼는 저렇게 덩치도 크고 쾌속으로 질주하다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생명이 약동한다는 것은 저런 모습을 보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내몽고 평원 최상위 포식자, 여우 가족을 만나다

초원 생명들의 몸놀림에 놀라 또다시 한참을 서서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평원을 주시하게 된다. 또 어떤 생명이 고개를 내밀지 몰라 귀를 쫑긋 세우게도 된다. 오감이 절로 열리는 기분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대지의 기운과 생명의 소리에 반응해 파르르 떨리는 듯하다.

넓은 초원이 펼쳐진 거대한 평원, 나무 한 그루 없는 이곳에 무슨 생명이 이리도 다양하단 말인가? 대지가 스스로 피어오르는 것 같다. 대지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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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주시하며 경계하고 있는 야생 여우의 모습의 포착되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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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여우가족이 빼곰이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주시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 순간 컹컹 개짓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새들의 지저귐 사이를 뚫고 나오는 경쾌한 소리, 그것은 분명 야생 포유류가 내는 소리였다. 대평원에서 울리는 야생 포유류의 소리. 그렇다. 그것은 어쩌면 바로 전날 저 모래 언덕 위에서 잠시 두 눈이 마주쳤던 평원 최상위 포식자 여우가 내지르는 소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스쳤다. 발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여명이 펼쳐지는 시간 밤새 사냥을 나갔던 어미 여우가 돌아오자 그 모습을 반기며 새끼여우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저 멀리 펼쳐진 모습을 통해 확신했다. 수풀 사이로 귀를 쫑긋 세운 생명들이 낯선 이방인을 주시하며 몸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어미와 일정한 간격을 둔 새끼여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가릴 것이라곤 초원에 웃자란 풀들뿐인 공간에서 그들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머리만 빼꼼이 내밀며 이쪽을 바라본다. 넓은 초원을 사이에 두고 여우 가족과 내가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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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최상위 포식자 어미 여우가 전방을 주시하며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 모습을 재빨리 카메라에 담고 그들을 향해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어미로 보이는 여우는 이러저리 왔다갔다 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잃지 않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순간 녀석들이 이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는 듯도 하다 느끼며 이곳 초원의 최상위 포식자인 그들에게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나 그들의 모습을 쫓고 있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 이상을 절대로 허용치 않은 야생의 특성상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몸을 숨긴다. 그래서 그곳엔 분명 여우굴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들이 자취를 감춘 곳을 향해 더욱 걸음이 빨라진다.

이윽고 당도한 그곳엔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굴은 하나가 아니었다. 열 평이 됨직한 초지에 여기저기 굴이 뚫려 있다. 입구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10개가 넘는 굴이 뚫려 있고 그곳의 다양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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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굴의 모습. 여기저기 굴로 들어가는 구멍이 뚫려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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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굴 앞에 지난밤 사냥하고 먹다남은 것인지, 어린양의 발목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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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남은 발목 위에 여우의 배설물이 놓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아침 청소라도 한 것인지 물기가 머금은 굴 속의 모래가 굴 입구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지난밤 사냥을 하고 먹어치운 것인지 발목만 남은 어린 양의 것으로 보이는 그것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굴도 있다. 또 다른 작은 굴 앞에는 그들의 배설물도 보인다.

여우굴. 난생 처음 보는 야생의 흔적 앞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이미 몸을 숨겨버린 이들의 작은 흔적들이라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온몸의 세포들이 고스란히 열려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야생의 세계와 대지를 매개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그들의 삶을 방해할 자격이 나에겐 없다. 얼른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이 예민한 생명들에게 내가 배풀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멀리 가지 못하고 수풀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동태를 살피게 된다. 잠시 침묵이 흘러가자 아니나 다를까 굴을 나온 어미가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쯤 되면 이곳을 멀리 벗어나는 것이 맞다. 조심조심 뒷걸음질로 그들의 집을 완전히 벗어났다. 순간 초원을 적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긴장을 풀라고 하늘이 내려주는 신호인가 여기며 떨어지는 빗방울마저 감사하게 된다. 대지를 적시는 빗방울과 함께 나의 첫 야생 여우와의 만남의 순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각은 아직도 온몸 깊숙이 남아 있다.

전날 모래 언덕의 30여 미터의 거리 앞에서 스쳐지나간 여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여우 가족을 만난 것이라 온몸으로 그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들과 내가 이 대지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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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대지'인 내몽고 평원에 아침 해가 떠오른다. 희망이 떠오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곳 몽골 사람들은 이 대초원을 '어머니 대지'라 부른다. 그들 말로 '더티 어스'라 하는 그 어머니 대지가 뿌리로부터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 대지에 머리 숙여 절로 감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어머니 대지'가 급속히 사막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한족 이주정책에 따라 초원이 농경지로 급속도로 바뀌면서 초원이 사라지고 있고 남은 초원도 물이 말라 사막화되어가고 있는 현장도 목격한다.

초원이 사유화되어 철조망이 쳐지고, 제한된 방목지로 인해 가축의 건강도, 초원의 영양도 떨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 듣는다. 더불어 이들 아름다운 생명들의 서식처 또한 그만큼 사라져가고 있다. 이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얼굴을 빼꼼히 내민 것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들의 땅이자 어머니 대지인 이 대평원을 지켜달라는 신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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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앉아 쉬고 있던 홍머리오리들도 먹이활동을 위해 힘차게 날아오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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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가 지는 대평원에 아름다운 낙조 꽃이 피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다음 편에서는 이 거대한 평원이 사막으로 바뀌어가는 모습과 또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의 소식을 전해볼까 한다.
덧붙이는 글 정수근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지난주 중국 내몽고 정란치란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대평원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에서도 사막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소식을 시리즈로 나누어 전해볼까 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내몽고 #대평원 #여우 #어머니 대지 #생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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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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