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먹여 살리는 엄마, 못난 딸은 목이 멘다

평생 주부로 일하다 공공근로 시작한 엄마...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등록 2018.07.20 21:57수정 2019.06.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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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요즘 집 근처 복지관에서 청소를 하신다. 오전 7시에 출근해 낮 12시까지 청소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온다. 평생을 주부로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엄마와 아내로 살아오다 얼마 전 공공근로사업에 지원해 일을 하시게 됐다.


공공근로사업. 주로 어르신들이 하루 5시간 동네 공공기관에서 청소나 환경미화 등의 일을 하는 일자리 사업이다. 가끔 뉴스와 동네 주민센터에 내걸린 현수막에서 본 단어였는데, 내 어미가 그 일자리를 신청해 혜택을 받고 있으니 좋은 제도 같다는 빈궁한 생각이 든다. 80만원 정도 되는 월급이지만, 자식인 나는 그 돈을 매달 엄마에게 드릴 수 없으니 자식보다 더 나은 사업 같다.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쓸고 닦게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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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라면 45년 경력자다. 이제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손걸레 대신 대걸레를 들고 집이 아닌 복지관을 쓸고 닦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청소 경력은 45년 6개월이 되었다 ⓒ pexels


52년생. 예순이 훌쩍 넘었고, 학벌은 낮고, 평생 주부로 일했지만 경력은 없고 그러니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력으로 쳐주지 않는 그 일을, 집 밖에서 해줄 수 있게 하는 자리뿐이다.

청소라면 45년 경력자다. 이제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손걸레 대신 대걸레를 들고 집이 아닌 복지관을 쓸고 닦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청소 경력은 45년 6개월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용돈이라도 벌 수 있어 다행이야"라고 웃으며 얘기했지만, 마음은 참 서글펐다.


사실 엄마가 공공근로사업을 물어물어 신청한 것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아빠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일거리를 주지 않는 아빠의 상황 때문이다.

48년생. 일흔이 넘었고, 학벌은 낮고, 평생 막노동을 했지만 쌓이지 않는 경력이었고, 그러니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자기라도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매일 아침 난생처음 복지관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나는 엄마에게 "이제 엄마가 아빠 먹여 살리겠네"라고 웃으며 얘기했지만, 가슴은 참 비통했다.

며칠 전 아빠는 나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한탄하듯 말을 쏟아냈다.

"나도 일 좀 하게 해주소."

막일을 하는 힘겨움 보다 일을 안 하는 고통이 컸던 아빠는 동네 주민 센터에 찾아가 다짜고짜 저 말을 직원에게 내뱉었다. 그날 아빠는 생전 처음으로 이력서라는 것을 썼고, 공공근로사업 일자리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고, 나이 때문에 65세 이상은 하루 3시간밖에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빠의 휴대전화에는 문자 한 통이 왔다.

'구직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접수가 된 것일 뿐, 일흔이 넘은 아빠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50년 가까이 일했지만 5개월도 채 맘 편히 쉬지 못한 아빠. 자기를 대신해 복지관에서 쓸고 닦고 할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이제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이 아빠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효도는 내가 아닌 저 사업이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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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빠는 평생 바깥일을, 엄마는 평생 집안일을 했는데 이제 남은 인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 pexels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빠는 평생 바깥일을, 엄마는 평생 집안일을 했는데 이제 남은 인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평생 안과 밖을 살피며 온몸으로 일한 두 분께 나는 뭘 해드려야 할까?

'공공근로사업' 저 여섯 글자를 인터넷 창에 검색해 봤다.

목적 : '저소득 실직자에게 한시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여 생계보호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참여자격 : '실직 또는 정기소득이 없는 자'

누가 봐도 우리 엄마와 아빠의 상황이었다. 두 줄 문장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와 아빠는 평생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오셨는데, 이제 할 수 있는 건 공공근로사업의 한시적 일자리뿐이라니. 그리고 그 일자리마저 말릴 수 없는 못난 자식이라니. 효도는 내가 아닌 저 사업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애통했다.

문득 며칠 전,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서 잡초제거 일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처음 본 어르신의 얼굴에서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부모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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