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 걸리는 작은 교차로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47] 브로드웨이와 타임스 스퀘어

등록 2018.07.22 14:04수정 2018.07.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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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앉아서 좀 전에 있었던 자리를 본다
아. 묘한 기분 저기에 있었던 내가 보인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거기에 있었을 땐 볼 수 없었지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럽게
흐르는 물 속에 세상이 비치네
내 얼굴도 비춰볼까
- 시와 '랄랄라' 노랫말 중에서

혼자 타박타박 걷는 여행은 한때 유행했던 단어인 웰빙이란 단어에 꼭 어울리는 말이다. 여행하면서 하루 종일 걸으며 물을 많이 마신다. 하루 해가 지면 늘상 이어지던 야식과 과음 대신에 숙소에서 일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일찍 잠든다. 그리고 알람 시계가 없어도 새벽 햇살에 눈을 뜬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억지로 주입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려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도 알 만한 나이가 되었으니까. 호치민으로 돌아가서 마주할 일상에서도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야 또 타박타박 여행을 갈테니까.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뉴스로 들으면서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샌드위치로 점심 도시락을 챙겼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나에게 매일 똑같은 음식을 계속 먹으면 지겹지 않냐고 묻는다. 사실 음식 종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나면 내가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는다. 열심히 걷다가 시원한 공원 그늘에 앉아 먹는 음식은 그게 뭐든 최고의 만찬이고 그저 꿀맛이다.

맨해튼으로 출근(?)할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던 프리다 칼로 ⓒ 한성은


오늘도 숙소 앞에 있는 프리다 칼로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며 맨해튼으로 출근(?)했다. 세계 예술의 중심도시다운 그래피티다.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 그려진 프리다 칼로라니. 그녀의 작품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아니지만 그녀는 평생 멕시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헌신했고, 레프 트로츠키를 숨겨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는 특히 뉴욕에서 회자될 때 가장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체 게바라의 가족들이 이야기 했듯이 정신은 없고 이미지만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중에게 잊히고 사라지는 것 보다는 아이콘으로 남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프리다 칼로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는 참 인생을 쉽고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덕분에 '그래, 내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야' 하고 쿨하게 흘려보낼 힘도 생긴다. 심지어 오늘은 뉴욕 공연 예술의 1번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날이다.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수가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다니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2001년 겨울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한국에서 초연을 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위해 학교 앞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돈으로 S석 티켓을 두 장 샀고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2CD로 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샀다. <오페라의 유령> 프랑스어 번역판과 영어 번역판을 모두 읽었고 전곡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을 즈음 LG 아트센터에서 윤영석과 김소현의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큰 공연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대한민국 초연이었고, 윤영석과 김소현도 당시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데뷔하는 뮤지컬 신인들이었다. 모든 것이 설렜던 처음이었다. 그날 내가 입었던 옷, 그날의 차가운 공기, 2층 객석에서 들리는 공연장의 작은 소음들이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브로드웨이에 있는 오페라의 유령 전용 극장 Majestic Theatre ⓒ 한성은


그 오페라의 유령을 그때만큼 나이를 더 먹은 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보게 될 거라고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여행은 매 순간 느닷없이 나를 설레게 한다. 전날 내가 샀던 할인 티켓은 브로드웨이에 있는 오페라의 유령 전용 극장 마제스틱 시어터(Majestic Theatre)의 1층 앞줄이었다. 좌석을 안내 받고 앉으면서도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좋은 자리에 앉아 배우들의 표정과 숨소리까지 보고 느낄 수 있었던 호사는 어제 TKTS에서 표를 사면서 내가 필요할 때만 부르는 여러 신들이 도와주신 덕인 것 같았다.

공연 프로그램을 읽으며 텅빈 무대를 바라보는데 여러 복잡한 마음이 뒤섞여 자꾸만 긴장되고 오금이 저렸다. 이런 공연은 차려입고 가야한다는 말에 추운 겨울 더플코트를 입고 어리바리하며 공연장으로 향하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서로 위로하고 또 서로 격려했다. 그때의 내가 앞으로도 계속 잘 지내길 바랐다.

공연은 굳이 그때의 나를 데려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칼롯타 역을 연기한 배우였는데, 노래도 노래지만 표정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넋을 놓고 쳐다봤다. 크리스틴과 노래 대결을 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속으로 칼롯타를 응원할 정도였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 전용극장답게 무대효과도 훌륭했다.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1막 마지막에서는 정말로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그 순간 만약 관객이 객석에서 일어선다면 크게 다칠 것 같은 아찔한 높이였다. 마지막으로 마스카레도(Masquerade)를 부르는 가면무도회 장면은 정말 압도적인 미장센을 보여주었다. 그 곡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혼자라도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중 무대로 떨어진 샹들리에 ⓒ 한성은


잔뜩 긴장했던 몸과 가슴 벅찬 감동을 끌어안고 뉴욕의 상징 타임스 스퀘어로 향했다. 그동안 맨해튼을 아래위로 종종거리며 다녔지만 브라이언트 파크를 중심으로 주로 5번가를 따라 걸어서 타임스 스퀘어가 있는 7번가를 일부러 갈 일은 없었다. 브로드웨이와 타임스 스퀘어는 붙어 있는 곳이라 극장을 나서면 바로 옆이다. 드디어 사흘만에 뉴욕의 심장부, 텔레비전에서 너무 많이 봐서 우리집 앞이 아닌가 싶은 바로 그곳에 타임스 스퀘어에 섰다.

타임스 스퀘어의 수많은 광고판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원 타임스 스퀘어' 광고판을 바라보니 내가 정말 그 장소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사진을 찍는다고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면 뉴욕 특파원이 항상 뉴스를 전하는 그 장소, 그 장면과 같아서 내가 텔레비전 속에 들어와 있는 것도 같았다.

다만 타임스 스퀘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좁았다. 해마다 신년 맞이 카운트 다운을 하는 장면을 보면 백만명은 되어 보이는 인파가 모여서 축제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막상 그 자리에 내가 서 보니 그냥 작은 교차로였다. 이 작은 공터(?)에 모인 광고판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들이라니. 그냥 뉴욕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타임스 스퀘어 ⓒ 한성은


타임스 스퀘어에서 만난 멋쟁이 카우보이 ⓒ 한성은


타임스 스퀘어 주변은 사시사철 밤낮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뉴욕 시민들은 피해다니는 장소라고 했다. 나도 학교가 해운대에 있었지만 여름 휴가철에는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를 항상 피해다녔으니까 이해가 된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저 평생에 한 번 또는 어쩌다 가끔 뉴욕에 여행 온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 이 조그만 공터의 광고판들이 왜 가장 비싼 걸까? 광고판이 비싸니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까?

이 조그만 공터에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드는 걸까

타임스 스퀘어는 역사가 긴 것도 아니다. 1904년에 뉴욕 타임스 본사가 이전해 오긴 했지만 오히려 과거에는 범죄와 유흥의 거리였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1995년이 되어서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개발 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광고판이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곳에 한 시간에 1분, 하루 24번 광고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메스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광고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니까 광고가 더 많아지고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 그리고 나도 타임스 스퀘어에 서서 수많은 광고판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가 그 스스로 상품이 되다니. 역시 앤디 워홀을 낳은 위대한 뉴욕이다.

타임스 스퀘어에 반가운 얼굴과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만났는데 먼저 반가운 얼굴은 네이버 라인프렌즈들이었다. 타임스 스퀘어 한가운데에 커다란 녹색 간판이 있고 커다란 라인 프렌즈 인형이 서 있었다. 한국에서였다면 아무 감흥이 없었거나 '이제는 별 걸 다 팔고 있네'라고 빈정거리며 지나갔을 것 같은데,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그 캐릭터들이 괜히 반가웠다.

매장 안에 사람들이 엄청 북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휑한 분위기라 내 마음도 뭔가 휑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방탄소년단과 콜라보레이션을 한 상품들 앞에는 학생들이 우루루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네이버 사장도 아니고 방탄소년단 멤버도 아닌데 아쉬웠던 마음이 가시고 어깨가 조금 으쓱했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거지 뭐.

타임스 스퀘어에서 만난 라인 프렌즈와 BTS 인형들 ⓒ 한성은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만난 반갑지 않은 사람 ⓒ 한성은


반갑지 않은 얼굴은 타임스 스퀘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TKTS 계단에서 만났다. 종로와 명동만 가면 확성기를 틀어놓고 자신이 믿는 종교를 믿지 않으면 전부 지옥에 갈 것이라고 떠드는 그 사람들이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도 있었다.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가장 좋은 장소를 선택한 것이기도 할테다. 문제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이야기가 거기에 앉은 사람들을 매우 불쾌하게 한다는 데 있었다.

외침의 내용은 한국과 똑같았다. 그 계단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 다수를 향해서 '너희들 모두 지옥에 갈 거다. 빨리 내가 믿는 종교로 바꿔라'라고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니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를 향해 욕을 해댔다. 어떤 외국인은 굉장히 격하게 아주머니에게 항의를 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외치던 자유가 아닌가 싶겠지만, 여행지에서 갑자기 낯선 사람에게 죽어서 지옥 갈 거라고 협박을 당하면 당황스러운 것도 이해가 된다. 나는 한국에서 굉장히 자주 들었기 때문에 조금만 불쾌했다. 다만 방탄소년단 상품 앞에서 으쓱했던 어깨가 이번에는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는 게 조금 슬펐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타박타박 #아홉걸음 #배낭여행 #세계일주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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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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