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메이 총리는 왜 팔뚝에 패치를 붙였나

'1형 당뇨' 제도, 이렇게 바뀌고 있다

등록 2018.07.17 11:05수정 2018.07.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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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영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팔뚝에 하얀색 당뇨 패치가 눈에 띈다. ⓒ 연합뉴스


영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이자 보수당 대표인 테리사 메이(Theresa Mary May)와 러시아 월드컵 스페인-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세계적인 수비수 나초 페르난데스(Nacho Fernández).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1형 당뇨 환자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당뇨 환자가 약 500만 내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당뇨'하면 흔히 식습관이나 운동과 같은 자기관리 실패로 치부하는데요. 1형 당뇨와 2형 당뇨는 혈당수치 변화에 문제가 있다는 점만 빼고는 발병 기전이 다릅니다. 1형 당뇨는 어느 날 갑자기 췌장 세포에 문제가 생겨 혈당 관리가 안 되는 질병으로 생활습관이나 식생활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병합니다. 그러므로 1형 당뇨는 후천적 원인인 2형 당뇨와 달리 어린아이에게도 발병할 수 있어 흔히 소아 당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1형 당뇨와 2형 당뇨를 잘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당뇨에 대한 심각한 편견이 있습니다. 채혈하거나 주사 맞는 것을 굉장히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있어서 1형 당뇨 환우들은 화장실에서 남몰래 혈당 체크를 한답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할 정부 기관에서조차 1형 당뇨에 대해 편협하게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바꿈,세상을바꾸는꿈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함께하는 스타트업법률지원단이 변론한 김미영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김미영씨는 1형 당뇨 아이의 엄마입니다. 김씨는 혈당 체크를 위해 수시로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는 아이가 안타까웠습니다. 김씨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해외 커뮤니티를 뒤지던 중 채혈 없이 혈당 체크가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를 발견합니다. 게다가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1형 당뇨 환자와 부모들이 각자 오픈 소스로 연속혈당측정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공유해 놓았다고 합니다.

엔지니어 출신인 김씨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직접 들여와 오픈소스를 활용해 핸드폰으로 아이의 혈당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연동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1형 당뇨 아이 부모들은 김씨에게 연속혈당측정기를 문의하기 시작합니다. 김씨는 많은 환우와 부모들이 이 기기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참 대단한 엄마입니다. 그러나 식약처는 상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불법 의료기기 수입 및 광고 혐의로 김씨는 무려 3차례나 조사합니다. 그리고는 지난 3월 검찰에 김씨를 송치합니다. 다행히 이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가는 등 크게 이슈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지난 6월 29일 김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일부 있을 수 있으나 검사가 이를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변론을 맡은 스타트업법률지원단 성춘일 변호사는 기소유예 판결이 아닌 완전 무죄를 받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안했지만 김씨는 너무 지치고 힘들다며 현 상황에서 사실상 가장 좋은 결과인 기소유예 처분에 만족한다고 밝혔습니다.


1형 당뇨 제도 개선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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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는 왜 1형 당뇨 아이 엄마 김미영씨를 고발헀을까?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김씨 사건 이후 식약처는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원래 희귀병 약의 경우 기업은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시판하지 않아서 국가가 희귀의약품센터를 만들어 공급합니다. 그러나 의료기기는 사정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특정 개인이 허가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수입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임상실험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등록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김씨 사건 이후 식약처는 환우 개개인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법을 검토해서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4월에 절차를 모두 완료했습니다. 여전히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연속혈당측정기와 같은 의료기기를 환자가 수입하려면 '요건면제수입확인서'를 발급받으면 가능해졌습니다.

심지어 식약처는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방법을 설명한 카드뉴스와 영상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희귀의약품센터와 같이 의료기기안전정보원을 두어 희소질환 환자들이 사용하는 의료기기에 대해서 국가가 구입, 수입통관까지 대신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비급여 부분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연속혈당측정기 기기와 소모품 비용을 100% 환자와 가족들이 부담했으나 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 간담회에서 9월까지 일부 비용에 대해 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세관에서 과거 관세법을 위반했던 부분에 대해 기기 수입에 따른 세금을 고지했으나 식약처 사건 이후 취소했다고 합니다.

김씨 고발 사건 이후 약 반년 사이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기자는 이 기사를 쓰면서 한 가지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왜 정부는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1형 당뇨에 대한 인식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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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 당뇨 아이 엄마인 김미영씨와 이수씨가 바꿈, 세상을바꾸는 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이후 김씨와 아이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아이의 혈당에 문제가 생길까 봐 학교 근처에서 상시 대기하던 엄마는 이제 집에서도 원격으로 아이에게 인슐린 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아침에 배나 팔에 연속혈당측정기를 찰 때나 수영 같은 운동할 때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과거 혈당 체크와 채혈의 어려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이 성격도 밝아지고 활동성도 커졌다고 합니다.

국내 1형 당뇨 환자는 2~4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 중 18세 이하 1형 당뇨 환자는 약 4~5천 명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24시간 꾸준히 혈당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혈당 관리만 잘 된다면 일상생활은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나초 페르난데스나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처럼 말이죠. 외국에서는 이미 어릴 적부터 눈이 나빠서 안경 쓰는 것과 비슷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도 받는다고 합니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민소매로 당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이유도 편견 없는 인식에서 나오는 거겠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당뇨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감염병이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이 있기도 하며 무엇보다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를 놓는 것이 일상인데 이를 안 좋게 보는 시선으로 당뇨인들이 위축되기도 합니다. 실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반에서 나가라고 하거나, 카페에서 주사를 놓다가 제지받거나, 심지어 마약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We are not waiting.(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 전 세계 1형 당뇨 커뮤니티 문구에 쓰여 있는 슬로건입니다. 1형 당뇨는 어느 날 갑자기 올 수 있습니다. 김씨 사례로 1형 당뇨와 관련된 여러 제도가 개선되었다면 이번에는 인식 개선을 위한 카카오 같이가치 펀딩도 진행중 입니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4047)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다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동!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오늘, 바꿈 홈페이지, 카카오 같이가치에 중복 게재됩니다.
#1형당뇨 #식약처 #소아 #보건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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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면 바꾸는 방법도 바꾸어야 합니다. 바꿈은 단 5년의 프로젝트로 단체를 키우지 않습니다. 흩어져 있는 다양한 단체들과 네트워킹하여 공동으로 행동하고, 수많은 양질의 컨텐츠를 카드뉴스 등으로 쉽고 재미있게 가공해 대중적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세대가 함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청년 및 청년단체가 주축이 되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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