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것들의 거대한 공격

재앙 앞에 선 인간의 문명

등록 2018.07.18 08:10수정 2018.07.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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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리면 눈앞에서 깔끔하게 사라져주던 쓰레기가 지저분한 채로 눈앞에 놓여있는, 그야말로 '쓰레기 대란 사태'가 평안하던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았다. 이 대란은 직접적으로는 재활용 업체들이 재활용품 수거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재활용 업체들은 병, 폐지처럼 그나마 돈이 되는 폐품을 가져가면서, 비닐이나 스티로폼처럼 돈이 안 되는 폐품도 같이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환경 보호를 이유로 재활용품 수입을 금지하자 안 그래도 낮던 폐품 가격이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재활용 업체들은 당연하게도 쓰레기 수거를 거부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1992년 이래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72%를 수입해서 전 세계의 쓰레기 집하장 역할을 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1년에 국민 1인당 일회용 컵 510개, 비닐봉투 420개(환경선진국 핀란드의 100배), 포장용 플라스틱 62㎏(세계 2위)를 버리며 편안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종이와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고, 판지와 금속 등 기타 재활용 쓰레기에 대해서도 '오염도 0.5% 이하'의 것만 수입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갈 곳 잃은 쓰레기들은 버려진 그 자리에서 버린 우리들에게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아무런 갈등과 걱정 없이 수시로 쓰고 버리던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비닐은 연간 약 1억장이라고 한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매량이 1억장이라고 하니, 민간 영역까지 합치면 2억장 정도로 추정된다. 1인당 연간 종이 소비량은 170kg이다. 30년생 원목 3그루를 베어야 만들어지는 양이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자각하게 된 우리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내놨으나 이후 규제가 느슨해졌고, 쓰레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전환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2003년 도입됐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2008년 폐지됐고, 2013년에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도 사라졌다. 그래서 이곳저곳의 쓰레기통에서 일회용 컵 등 테이크아웃 제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플라스틱은 100년, 스티로폼은 500년, 알루미늄캔은 80~100년이 지나야 완전히 썩는다는데, 우리의 일상은 이런 물품들에 점점 더 의존하며 돌아가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적인 추세는 일회용 쓰레기에 대해 점점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과 접시, 비닐봉지 같은 썩지 않는 일회용 제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모든 일회용 포장지를 재사용 또는 재활용 포장지로 바꾼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은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가 점차 확산되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일회용품 사용 금지 계획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비록 늦었으나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태평양에는 1조 8천억 개의 쓰레기 조각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7배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크기의 이른바 '쓰레기 섬'이 떠있다. 그리고, 플라스틱이 이것의 99%를 차지한다. 이 섬에서 물고기나 새들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알고 삼켜서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괴로운 소리를 토해내는 피흘리는 거북의 영상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들을 힘들게 하였다.

가까이서 보더라도 강, 바다, 산 등 자연의 곳곳에 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조각들은 우리가 먹는 생수, 어패류 등에서 검출되고 있고, 우리는 국내산 어패류를 통해 매년 1인당 평균 210여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그물에 얽혀있는 존재인 한 우리의 행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영향을 되돌려줄 수밖에 없다.


나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제주도의 경우, 해안에서 수거되는 쓰레기 양이 2012년 9600톤이던 것이 2017년 14000톤으로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또한, 2017년 제주도민 1인당 1일 배출 쓰레기의 양은 1.92kg이나 된다고 한다. 쓰레기 더미에 짓눌린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제주가 그립고도 안타깝다.

요즘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보다보면, 거대한 자연의 역습이 시작된 듯하다. 이게 시작이 맞다면, 앞으로는 도대체 어떤 것들이 어떻게 몰아칠지 아찔해진다. 성장과 발전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자연을 약탈해온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동안 공격해온 그 이상으로 자연은 우리의 문명과 생명을 집어삼킬 것이다.

자연의 괴로운 뒤척임 앞에서 인간의 빛나는 기술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 요즘 들어 새삼 절감하고 있다. 농담반 진담반 누군가는 말한다. 인류가 멸종하면, 지구는 그때 비로소 살아날 것이라고. 공존이 아닌 대립과 약탈의 역사가 지속된다면, 어떻게든 자연은 최후의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쓰레기 대란 #플라스틱 #자연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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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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