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칠 건 없고 몰카를..." 그말에 원룸을 나왔다

[성평등하고 안전한 주거생활 ①] '결혼 없이도 안정적인 삶', 제 꿈이 너무 큰가요?

등록 2018.07.19 19:59수정 2018.07.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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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 특히 여성과 소수자는 때로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이대로 좁은 원룸에서 평생을 살아갈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임대주택 청약 조건마다 '신혼부부'가 우대 조건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볼 때 절망합니다. 왜 주거정책은 모든 사람을 4인 정상가족의 (예비) 일원으로 취급할까요? 현재 주거정책의 사각지대는 어디인지, 평등하고 안전한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위한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청년들의 시각에서 알아봅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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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거의 날을 3일 앞 둔 2017년 9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역 인근 삼영빌딩 앞에서 한평(3.3제곱미터) 크기의 고시원 평면도 위에 생활하는 모습의 ‘한평괴담 플래시몹’이 펼쳐지고 있다. ⓒ 이희훈


불법개조 독서실, 4인실 기숙사, 지방 학사, 창문 없는 한 평 남짓의 고시원, sh대학생임대주택 사업을 통해 구한 원룸, 그리고 월세 계약으로 얻은 다가구주택 투룸. 나는 올해 서른 한 살이고, 앞서 적은 문장은 내가 부모의 집에서 독립한 후 거쳐 온 주거 역사의 기록이다. 사실 그 전에도 우리 집은 내가 집에서 독립한 후 간신히 임대주택에 들어갈 때까지는 매번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더 싼 집을 찾아 헤매야 했기 때문에, 한 동네에 오래 뿌리 내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우리 집은 아이가 많고 공간이 좁아서 늘 되는 대로 해 놓고 살았기 때문에 쉽게 손님을 들일 수도 없었다. 잘 정리된, 곳곳에 사람의 손이 탄 흔적이 가득한 거실이 있는 친구 집에 초대 받아 놀러가면 '이런 집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하고 부러워한 기억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주거 난민'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공덕동에 이사온 지 2년째다. 우리 동네를 거닐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조금 걸어 나가다 보면 도로 하나를 중심으로 한 편에는 수십 층짜리 브랜드 아파트가, 다른 한 편에는 야트막한 다가구/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처음 공덕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좋은 동네로 가네요" 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물론 우리 집이 아주 마음에 들고, 내가 좋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말을 한 사람과 내가 같은 생각으로 이 곳을 '좋은 동네'라 여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 지하철 호선이 겹쳐서 운행되고 있고, 역을 주변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들이 번화가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 동네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리 동네의 모습은 그런 부분만은 아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시장에는 적당한 가격의 반찬가게, 과일가게, 생선가게가 있다. 이 동네는 골목골목의 집마다 화분을 키워서, 시장을 보러 가는 길에는 화분에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들여다 보는 것도 일이다.

조그만 다가구주택의 맨 꼭대기층인 우리집에서 거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보면 하늘이 잘 보인다. 거실에 딸린 작은 발코니에는 일 년 내내 해와 바람이 잘 들어 식물이 잘 자란다. 몇 가지 잎채소와 바질, 초코민트, 까라솔이라는 다육식물을 키우고 있다.

'코뿌리'라는 코뿔소를 모티브로 한 포켓몬을 닮은 집주인 아저씨는 골목 건너에 사는데, 말하는 게 좀 퉁명스럽기는 해도 좋은 사람이다. 우리 자매가 처음 이사왔을 때 아저씨는 이삿짐을 번쩍 들어서 같이 날라줬다. 제일 무거운 짐이었던 디지털피아노도 이삿짐센터 기사님이랑 둘이 번쩍 들어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까지 날라줬다.

아저씨는 평소 건물 관리도 야무지게 잘 해서 건물이 늘 깨끗하다. 집에 뭔가를 설치해야 하는데 공구가 없다고 말하면 다른 집에서 빌려주기도 한다. 그럴 때 "고마워서 어떻게 해요?" 하면 으레 퉁명스럽고 투박한 말투로 "막걸리나 한 병 사다 줘!" 한다. 우리집 식구들은 제주도라도 갔다 오면 고마운 코뿌리 아저씨에게 땅콩 막걸리 세트를 사다 주곤 한다.

나는 우리 동네를, 우리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늘 좋다가도, 내가 이 동네에 몇 년이나 발 붙이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조금 시무룩해진다. 월셋방의 계약 기간은 고작 2년이고, 아저씨가 마음만 먹으면 월세를 많이 올려버릴 수도 있다. 애초에 들어올 때 너무 좋은 조건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월세가 한 번에 십만 원쯤 올라도 할 말이 없지만, 월세 십만 원 인상은 우리 가계에 너무 큰 타격이므로 이 집에서의 만족스러운 생활을 뒤로 하고 이사를 나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한 후보가 우리 동네 주변을 '냄새 나는' 곳이라고 표현하며, 재개발해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잔뜩 속상하고 걱정이 됐다. 당시 동네에서 다니고 있는 피아노학원 선생님과 "우리는 잘 살고 있는데 왜 그러죠?" 하고 이야기했다. 이러나 저러나 불가피한 상황이 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삿짐을 싸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치 내가 어디에도 뿌리를 못 내리고 떠다니는 부평초 같이 느껴진다.

독서실, 고시원, 불법개조 임대주택... '주거 난민'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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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인' 불편을 조금만 참으면 나는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지만, 이 세상의 누군가는 계속 그런 집에 살아야만 했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pixabay


이사오기 이전에는 서울 최고의 번화가에 살았다. sh공사의 대학생 임대주택에 당첨되어서였다. 생판 모르는 남들과 짧은 기간 동안 공간을 나눠 쓰는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고 잔뜩 들떠 있었다. 나는 이사를 오고 얼마 안 돼서 다이소에 가서 상추 씨앗과 종이화분을 사 왔다. 흙을 담고 물을 주면서 설렜던 건 잠시였다. 옆집 벽과 너무 붙어 있어서 우리집 베란다로는 해가 조금도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추싹이 전부 연노란색으로 자라는 것을 속상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했다.

또 해가 안 들어오는 작은 베란다는 바깥 바람으로부터 우리집을 보호해 주는 유일한 벽이었는데, 외벽이 얇은 유리 한 장인 창문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겨울이면 그리로 찬바람이 몰아닥치는 걸 견뎌야 했다. 보일러를 돌리면 결로 현상 때문에 벽마다 곰팡이가 잔뜩 피는 그 방에 사 년이나 살았다. 당연히 임대료가 싸고, 공부를 계속 해 온 나로서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한 번도 '이 동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나마 다른 임대주택이 서울 외곽에만 위치하고 있는 와중에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입주한 것은 감지덕지였지만, 온통 집 주변이 고층빌딩이라 밥값이며 찻값이며 식료품이 너무 비쌌다. 그나마도 주말이 되면 가게들이 모두 닫았다.

건물 관리도 문제였다. 공용계단의 등이 나가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참이나 깜깜한 데를 걸어 다니기도 했다. 분리수거가 잘 안 돼서 1층 현관에 쓰레기며 담배꽁초가 쌓이는 걸 참다 못해 집집마다 문을 두들기며 돌아다녀서 사람들을 모아 반상회 비슷한 걸 하기도 했는데,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불편을 겪는 세대가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건물은 한 층마다 원룸이 네 개인 것 같지만, 공사에 건물이 넘어가기 전 건물주가 세를 올려 받기 위해서 원래는 한 집인 곳 가운데 가벽을 쳐서 원룸 두 개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설계에서 환기와 통풍의 효율성이 고려 되지 않은 구조였고, 보일러실이 한쪽 방에만 있어서 다른 세대의 보일러가 고장나면 그 집은 옆집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냉골에서 떨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모두 1인 가구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집에 드나드는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우리집 맞은 편에 살던 사람은 장마철이 되자 코트와 가방에 모두 곰팡이가 피었다고 했다. 에어컨은 '기본 옵션'이 아니었는데, 습한 방에 에어컨을 설치할 여윳돈이 없어서였다. 그는 취직을 하자마자 에어컨을 들였고, 얼마 후 도망치듯이 이사나갔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우리집 문의 외시경(밖을 내다볼 수 있는 렌즈)을 누가 빼 간 적이 있다. 경찰에 신고를 하자 '이 집에 훔칠 건 없고 여자가 사는 방이니 몰카(불법촬영)를 설치하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공사 측에 연락했다. 일전에 술에 취한 남자가 집 문 앞까지 따라왔다가 집 안에 있는 동생을 보고 돌아간 적도 있다는 얘기까지 덧붙이며 건물에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없다는 건조한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살다가 이사를 갔다. 그때는 이게 '임대주택'이어서, 내가 가난해서 겪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싼 월세를 받으니 불편을 얼마간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생각한다. 내가 이사간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일시적인' 불편을 조금만 참으면 나는 거기서 나올 수 있지만, 이 세상의 누군가는 계속 그런 집에 살아야만 했다. 그 원룸뿐이 아니었다. 화재가 나도 대피할 계단이 없었던 불법개조 독서실, 한 평 남짓의 고시원, 식당이 없어 자주 컵라면을 먹었고, 열두 시가 통금이라 매번 모기에 뜯긴 채 열람실에서 밤을 새야 했던 기숙사까지….

내가 이제 더 이상 그런 집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 그런 집에 살고 있다는 현실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일까? 나는 그 원룸에 살면서 알러지 비염을 비롯한 면역성 질환들이 너무 심해졌고, 불안정한 주거 공간을 전전하며 자주 우울하고 불안하고 무기력했다.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것들로 둘러싸인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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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들햇볕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 홍혜은


언젠가 둔촌동의 주공아파트에 오래 산 사람들을 인터뷰한 독립출판물을 읽었다. 한 마을에 오래 발 붙이고 살아 온 사람들이 그 건물에서 어떤 시간을,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냈는지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인터뷰해서 엮은 책이었다. 곧 재개발로 없어질 그 아파트에는 한 집에서 무려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산 사람도 있었다. 오랜 시간 접속해 온 이웃 커뮤니티에서 생겨난 이야기들, 그 집에서 나고 자라서 집을 떠난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인터뷰와 함께 실린 집의 거실 사진은 오랜 시간 동안 사는 사람이 집에 정성을 쏟아야만 가능한 풍경들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풍경을 돌아 봤다. 대충 살고 치울 생각으로 들인 물건들이 가득차 있었다. 합판으로 된 책장, 다이소에서 사 들인 주방용품, 욕실용품, 지마켓에서 주문한 조립식 선반, 행거…. 언젠가부터 내 꿈은 아주 널찍한, 좋은 재질로 된 원목 테이블을 갖는 것이었다. 지난 번 집에는 집집마다 기본 옵션으로 넣어 준 책상과 회전의자가 있었는데, 의자가 책상에 딱 맞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 의자를 깔끔하게 넣을 수가 없이 늘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원룸이라 책상 옆에 이불을 깔고 자다 보면, 조금만 몸부림 치면 의자 다리에 몸의 일부가 걸렸다.

책상은 바람 드는 베란다 벽쪽을 향해 있어서 겨울에는 발이 시려워서 앉아 있기 힘든 것은 둘째치고도, 이런 저런 책과 노트북을 모두 올려 놓고 작업하기는 좁기도 해서 나는 다음 집에서는 꼭 넓고 나무로 된 책상을 사계절 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제일 좋은 자리에 놓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이사를 하면서 알아 보니 좋은 원목 테이블은 너무 비쌌다. 컴퓨터 화면으로 볼 땐 그럴 듯해보이던 값싼 나무 책상을 샀는데, 택배로 받아 보니 상판이 얇은 나무판이었고 친구들은 태권도 유단자가 격파용으로 써도 될 정도라고 놀렸다.

하지만 지금 집에서 가장 좋은 건, 함께 사는 사람들과 쉐어할 수도 있고,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인 거실이 있다는 것이다. 기숙사나 고시원, 원룸에 살 때 나는 늘 그 공간의 주인이 아닌 기분이었다. 그건 그냥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남가좌동, 당산동, 논현동을 거쳐 살아 오면서도 그 동네의 구, 시의원 공약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을 커뮤니티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어차피 잠시 살고 떠나갈 마을이라고 여겼다.

좁은 집에는 친구 두세 명만 놀러 와도 내 일상의 공간이 모두 꽉 차버렸기 때문에 친구를 자주 부를 수가 없었다. 고등어를 구우면 온 이불과 옷가지에 냄새가 배긴다는 걸 알고는 주방도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 그런 곳들에 그런 불안정한 형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미래를 함께 도모하는 관계를 만들기가, 그런 관계 속의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방이 두 개, 거실이 하나 있는 집에서 네 명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함께 좀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미래를 꿈꿔 보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함께 사는 법을 잘 모색해 보려고 해도, 좀더 안정된 주거 환경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실은 이렇다. 월세가 많이 올라서 쫓겨나거나, 재개발 때문에 쫓겨날 걱정을 한다. 임대주택을 찾자니, 우리 또래는 대학생, 사회초년생 취급을 하고 1인 가구로 상정해서 원룸을 나눠준다. 장기적으로 살 만한 주거 환경을 얻으려면, 물론 결혼을 하면 된다. 임대주택 정책의 가장 큰 부분은 '신혼부부 우대 정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결혼만이 내 인생의 정답처럼 놓인 이 상황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결혼은 성애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 두 남녀만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로 인정하면서, 남녀가 속한 너무 다른 배경의 두 집안을 강력하게 묶어 버린다. 반면 시집간 언니와 여동생은 그 이전에 얼마나 친했더라도 부부가 포함된 원가족보다 먼 사이로 만들어버린다. 언니, 동생 둘, 언니의 애인이 같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커플의 결혼이 우리 관계들의, 공동생활의 종착지라고 여겼다.

나는 고민했다. 정말로 내가 결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에도 우리들의 삶이 사회의 존중을 받으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이 삶을 지켜나가고 싶다. 하지만 법이 지켜주는 계약은 힘이 세고, 그 밖의 삶은 너무 위험하고, 개개인의 굳은 약속과 다짐은 시간이 지나며 흐려져 갈 것이 걱정이었다.

결혼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결혼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이 우연히도 모두 좋은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런 경우도 못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률과 개인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모른다. 점점 떨어지는 혼인율, 개인의 삶을 향한 윗 세대의 피할 수 없는 간섭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 사례, 기혼 여성에게 주어지는 '독박 육아/독박 가사/대리 효도' 3종 세트의 부담, 높아지는 황혼이혼율은 이 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모두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지표로서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라는 환상의 나라가 나 한 사람에게만은 파라다이스일 것이라고 현실을 외면한 채 주어진 제도 내 삶에 뛰어드는 대신, 지금 내게 주어진 공동체를 더 건강하고 안정적이게 꾸려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했다.

빚도 결혼 없이 4인 가족이 된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앞서 적었듯, 우리는 언제 재개발이 될지 알 수 없는 동네에 월세 생활자로 아슬아슬한 정을 붙이고 사는 중이다. 인간은 대개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 낯선 남자가 내 방 문 앞까지 따라왔던 그때, 그날 집에 동생이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인간이 살 만한 곳에서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건강하게 맺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오래 함께 잘 살고 싶다. 우리도 엄연한 '4인 가족'인데, 혼인 관계로 맺어진 부부와 아이 둘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책의 어디에도 끼어 들어갈 곳이 없어 헤매는 중이다.

우리는 계속 잘 살 수 있을까? 화분에 물을 주는 순간에도 몇 번씩 질문한다. 한 마을의 일원으로 장기적인 인생의 설계를 해 나가며 살고 싶다. 너무 거대해서 내게 다가오지 않는 담론이 아닌, 내가 사는 이 동네를 위한 소소한 정치 공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시민의 자격을 누리며 살고 싶다. 감당치도 못할 만큼 잔뜩 빚을 냈기 때문에 매달 주택담보대출 정산이 삶의 가장 절박하고 유일한 목적이 아닌 채로 살고 싶다. 그런 것들 대신에 더 나은 나의 삶이 무엇인지,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를 꿈꾸며 살아 가고 싶은 우리, 너무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가족부 ‘성평등드리머(청년정책참여단)’ 1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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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저자.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관심사는 마이너리티/섹슈얼리티/몸/시민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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