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살풍기'로 만든 범인, 이거였어?

[이 물건, 언제 생겼지?] 선풍기

등록 2018.07.20 15:20수정 2018.07.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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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9)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 기자 말

선풍기 없는 여름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후 부모님은 최초로 선풍기를 장만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선풍기 없는 여름을 겪어보지 못한 셈이다. 엄마는 그때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1978년 여름을 확실히 기억해. 선풍기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늬 아빠 친구가 집에 놀러왔었어. 그 친구가 무심결에 선풍기에 손을 올린 모양이야. 비명을 질러서 돌아보니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거야. 손가락이 날개에 부딪쳐서 칼에 베인 것처럼 상처가 났더라고. 얼마나 놀랐는지..."


직접 보진 않았지만 나 역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여름만 되면 엄마 입에서 되풀이되던 레퍼토리다. 엄마는 우리가 선풍기 근처를 지나갈 때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아빠 친구 손가락'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하도 무섭게 이야기하는 통에 난 그 분 손가락이 잘려 나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휴, 이제라도 참 다행이다.

선풍기가 나오기 전엔 부채가 여름 필수품이었다.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윗부분을 가늘게 저며 부챗살을 만들여 편 뒤 문풍지를 붙여 사용했다. 종이가 찢어지면 새 종이를 붙여 재사용했다.

"부채 없으면 여름 나기 힘들었지. 더위도 그렇지만 모기랑 파리 쫓는 데 부채만 한 게 없었거든. 문 주변에 모기가 새카맣게 붙어 있다가 문이 열리면 방안으로 따라 들어온단 말이지. 그래서 늘 툇마루에 부채를 놔뒀다가, 집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부채 바람으로 모기를 쫓아낸 다음 문을 열었어."

"마음만 꿀떡같고 진작 내민 손엔 땀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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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경보가 발령된 16일 오후 밀양시 내일동 전통시장에서 한 상인이 선풍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1933년 6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선풍기에서는 어떤 바람이 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하나 실렸다.


"더위에 가빠지는 여름이 오면 기계 문명으로 빚어진 도회 같은 데서는 사람의 힘으로 바람을 내어서라도 시원히 지내보겠다고 만들어 낸 기계가 선풍기. 그러나 선풍기 바람은 부채바람과는 또 다릅니다. 비행기의 푸로페라와 같습니다. (중략) 그러나 흔히 선풍기 바람을 쏘이면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바람을 받지 않고 있든 것이 갑자기 피부면의 필름이 벗겨지고 벗겨지고 하는 사품에 자극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에 서민들은 선풍기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1960년 이전엔 미국·일본에서 들어온 외제 선풍기를 사치품으로 가진 집이 간혹 있었고, 우리나라 자체 제품은 1960년 3월 금성사가 만들어낸 것이 처음이다." (<한겨레> 1995.6.4.)

그 외에도 선풍기를 사용하던 곳은 또 있었다.

"9일 오전 한 시경 청계천 부근에서 선풍기 절도 한 명이 검거되었다. 범인은 (중략) 화월식당 지점의 '뽀이'로 있으면서 그 식당의 선풍기를 절취한 것이라 한다." (<동아일보> 1933.8.10.)

1960년 금성사가 내놓은 선풍기는 서민층이 사용하기엔 역시 부담스런 가격이었다.

"이것은(선풍기) 일반 서민층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것이지만 생활수준이 비교적 높은 가정에서는 하나쯤 비치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현재 금성사에서는 보기에도 시원한 푸라스틱의 국산선풍기가 디자인으로 보나 성능으로 보나 외제품과 별로 손색이 없는 것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작년도에 생산된 구형은 3만 5000환 정도이며 금년에 생산된 신형은 4만 8000환 정도입니다. 구형은 오랫동안 계속해서 틀면 모오타가 뜨거워져서 끄고 식혀야 하는데 비해 신형은 장기간 사용해도 끄떡없다고 합니다." (<경향신문> 1961.6.7.)

1960년대 중반, 상류층을 중심으로 선풍기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선풍기를 사용할 때의 에티켓을 안내하는 기사도 실렸다.

"더위 속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해서 선풍기 맞바라지에 오래도록 앉아 있게 하거나 머리카락이 후트러질 정도로 선풍기를 돌려놓는 일은 없도록." (<경향신문> 1964.8.5.)

이런 글도 신문에 실리다니, 참 걱정할 것도 많던 시절이란 생각이 드는 글이다. 서민층에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선풍기 값이 비싼 이유는 생산량이 적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거리엔 최신형 선풍기가 구미를 독우고 있지만 아직도 서민들의 더위를 가시게 해주기엔 선풍기는 그림의 떡과 같다. 마음만 꿀떡같고 진작 내민 손엔 땀이 흐르고, 하루 속히 선풍기 정도는 대량생산을 서둘러서 싼값으로 많은 서민들이 혜택을 입게 되어야 하겠다." (<경향신문> 1968.6.29.)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 괴담의 출처는 어디


아직 선풍기가 대중화되기 전인 1969년, 여름 밤 공포에 떨게 할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엔 선풍기의 등장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말이 꼭 한 가지 있다. 잠 잘 때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고. 특히 밤에 잠 잘 때는 더욱 위험하다고 전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주위에서 가끔 듣고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체온조절기능에 이상을 초래하거나 호흡곤란을 들 수 있다. 누구나 무더위 속에서 선풍기 앞에 나서면 약간은 숨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계속되는 경우 과연 사람은 죽는 것일까."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중략) 선풍기의 바람은 계속해서 체온을 뺏어가 혈관의 수축을 가져온다. 잠 안 잘 때는 몸을 움직여서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방어할 수 있으나 잘 때는 체온조절 중추만이 작용하므로 피부의 열을 뺏기다보면 몸속 열까지 뺏겨 몸이 식게 되어 위험하다. 체온조절 중추는 마치 냉장고의 온도조절기처럼 항상 삼십칠도에 고정되어 있어 체온이 내려가는 데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어 결국 사람은 죽고 만다."

기사는 한 의학자의 경고를 예로 들어가며 선풍기 바람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선풍기로 인한 사망사건 소식이 여름마다 등장했다.

"희 산소 탓 통풍 안 되는 좁은 방에서 선풍기 틀고 자다 절명"(<동아일보> 1972.7.18.) "선풍기 켠 채 자다 회사원 절명"(<동아일보> 1973.7.6.) "선풍기 켜고 낮잠 자던 고교생 절명 (<동아일보> 1973.7.26.)" "선풍기 켜고 모녀 자다 생후 석 달 딸 절명"(<동아일보> 1973.8.28.) "선풍기 켠 채 자다 사망"(<경향신문> 1989.6.28.)

선풍기는 '살풍기'라 불렸다. 잠을 자기 전 선풍기를 끄거나 시간 예약을 해놓아야 한다거나, 방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를 틀어야 질식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대비책이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심지어 한 생산업체는 선풍기로 인한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역풍선풍기를 만들어 "밤새 켜놓고 주무셔도 안전한 금성역풍선풍기"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이 (역풍)선풍기는 전자방식에 의한 자동 시간조정장치가 되어 있어 처음 한 시간 동안은 앞쪽으로 강풍 약풍 미풍 등의 바람이 교대로 불다가 갑자기 반대로 날개가 돌기 시작, 선풍기 뒤쪽으로 바람이 나와 벽의 반사를 받아 앞으로 돌아나온다. 선풍기를 켜 놓은 채 자다가 사망하는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해 개발된 것" (<경향신문> 1976.6.1.)

1983년엔 선풍기 질식사로 처리했던 사건을 이후 극약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정정하기도 했고(<동아일보> 1983.8.2. "일가 선풍기 질식사 동반 자살로 밝혀져") 1991년엔 선풍기로 인해 사망했다면 재해원인 사망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기도 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걸 대부분 안다. 여름철 세찬 바닷바람을 아무리 맞아도 호흡곤란으로 죽는 경우는 없으며, 저체온증은 체온이 심각하게 떨어져야만 발생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잘 일어나지 않는 증상으로 선풍기 따위로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 그리고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틀면 질식사 한다는 내용도, 문을 닫는다고 해서 방안이 밀폐될 리 없으니 이 또한 과학적인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방안에서 선풍기를 아무리 돌려봐야 방 안의 온도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선풍기는 우리 피부의 땀을 빠르게 증발시켜 시원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도 나는 자기 전 선풍기 시간 맞추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여름마다 품귀 현상을 일으키던 선풍기는 1978년 들어 금성사, 대한전선, 삼성 등 생산업체들이 생산시설을 풀가동해 전년보다 생산량을 100%나 끌어올린 결과 더위가 한풀 꺾인 8월부터 재고량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서민들의 생활 수준도 많이 올라간 때였다. 우리 부모님이 선풍기를 들여놓은 시기와 일치한다. 서민들은 누구나 선풍기 한 대 쯤은 집안에 들여놓고 한층 쾌적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에어컨 시대에 부채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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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7일 오전 서울 세종로사거리에서 한 시민이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선풍기가 필수품이 되자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선풍기 없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 했다. 죽부인과 부채로 시원함을 달래던 조상의 슬기를 칭송하거나(<동아일보> 1983.8.6.) 부채가 실내 장식용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등 부채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사가 심심찮게 실렸다(<동아일보> 1989.6.9.).

에어컨이 흔해빠진 세상에 선풍기의 위력을 말하는 건, 선풍기 시대에 부채 운운하는 것만큼이나 구닥다리 소리로 들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선풍기 없는 여름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보니 한참 전에 선풍기를 두 대나 꺼내 놓았지만 아직 에어컨은 커버를 벗기지도 않았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물건역사 #선풍기 #선풍기사망 #더위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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