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처럼 먹고 살기...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우리는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⑩] 초짜의 자연농 소개③

등록 2018.07.27 12:14수정 2018.07.2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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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삶을 꿈꾸면서 로망이나 낭만이 없었다고 한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아직 짧지만 와서 살아보니 역시 낭만적인 생각이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다.

자연농도 마찬가지다. 자연농이 우리의 소박한 텃밭에 딱 맞는 건 분명하다. 어차피 농사로 돈을 버는 전업농을 추구할 것도 아니고, 복잡하고 돈 드는 것도 싫고, 자연에 해도 덜 끼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무언가를 거두어 먹으려면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최근 비를 흠뻑 맞고 어처구니없는 속도로 자라고 있는 풀들이 바로 현실 세계인 것이다.

나는 내가 시골을 좀 아는 줄 알았다. 태어나서 청소년 시절까지 계속 시골에 살았으니 익숙했던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중학교 다닌 게 전부다. 친구들과 뛰어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집에 와서 마우스, 키보드 잡고 놀았다.

할머니께서 매일 농사일을 하셨지만 어지간해선 도와달라는 말씀도 안 하셨다(나와 달리 여동생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훨씬 자주 불려 나갔다. 내가 농사짓는 말에 동생이 코웃음을 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농사는 1년에 한두 번 체험한 수준이고, 언제 뭘 심어야 한다든지 어느 철엔 어떤 나물을 캘 수 있다든지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시골이란 공간의 익숙함에 속아 농사를 모른다는 현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시골을 알고 농사를 안다고 생각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황당할 지경이다.

요즘 말로 '웃픈' 얘기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가 기계화학농이나 유기농 농사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농하기가 좋은 면도 있다. 어느 날 짝꿍이 말하기를, 저렇게 잘 자라서 큰 열매 잔뜩 맺는 농사를 해봤으면 이렇게 잘 안 크고 열매도 조그만 농사를 못 견뎠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밭에 잘도 자라고 있는 옥수수나 양배추 같은 걸 보고 있으면 꼭 수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게 자연 상태에서 가능한 크기가 아니라 질소 비료의 힘이라고, 꼭 큰 게 좋은 것도 아니고 판매할 게 아니니까 굳이 클 필요도 없다고 머리로는 안다. 그래도 돌아서면 금세 또 우리 것만 너무 안 크는 것 같아 어떨 땐 억울하기까지 하다.

농약이나 비료도 안 주고, 벌레도 거의 안 잡고, 풀도 어느 정도는 두니까 할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건 아니고 여기 오기 전 1년 동안 매달 와서 온종일 일도 해보고 말로도 배웠다. 규모도 작고하니까 일이 적어보였다.

자연농, 낭만과 현실 사이

당연히 크나큰 오산이었다. 규모가 작아도 이 작물 저 작물 키우려면 손 많이 가는 건 똑같다. 게다가 자연농이라고 풀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랜 세월 인간에 길든,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을 길들여온 작물들은 야생의 풀을 혼자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 내가 그 작물을 먹고 싶다면 때에 따라 열심히 풀도 베어주고, 갖가지로 녀석의 시중을 들어줘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개구리'님은 김매기 등 작물 돌보는 일을 '시중들기'라 부른다. 녀석들이 상전이다. 식물들이 자연선택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번식방법을 진화시켜왔다면, 작물들은 그중에서도 인간을 부려먹는 방법으로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농사를 짓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농사를 모르니까 농사일은 그저 밭에서 뭘 심고, 풀 베고, 수확하는 정도만 생각했었다. 한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가 하니, 일단 농사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러모로 잘 생각해서 어디에 무엇을 얼마나 심을지 계획부터 잘 세워놓아야 시기를 맞춰 일하기 좋고, 땅도 알차게 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 해 동안 시기별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밭도 만들어야 한다. 새로 시작한다면 고랑을 내어 사람이 다니는 길과 비가 왔을 때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잘 만들어놓아야 한다. 자연농에서는 한번 밭을 만들면 갈지 않고 되도록 건드리지 않지만, 그래도 해마다 무너지므로 보수는 해주어야 한다.

그다음 작물을 심는데, 작물마다 심는 법이 다 다르다. 씨앗을 바로 땅에 심는 곧뿌림(직파)이 적합하지 않은 작물은 반드시 모종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특히 토마토와 고추는 곧뿌림을 하면 성장할 시간이 모자라 한겨울인 1월 말부터 벌써 모종을 키우기 시작해야 한다. 당연히 온실이나 하우스에서 난방하며 키워야 한다.

보통 텃밭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잘 키워놓은 모종을 해마다 새로 사서 심는다. 우리는 시중에서 사기 어려운 토마토 씨도 있고, 모종 키우기부터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올해 토마토와 함께 수박, 참외, 오이, 호박 등의 모종을 직접 키워보았다.

결과는 솔직히 성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집안이니 온도가 바깥보단 높았지만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상토를 사서 쓰지 않고 근처 산에서 조금 파온 흙을 썼는데 그리 거름지지 않아서인지 어느 정도 이상 자라주질 않았다. 크기를 기다리다 시기도 좀 놓치고 결국 아주 작은 모종인 채로 밭에 아주심기(한자말로는 '정식', 밭에 완전히 옮겨 심는 것)를 했다. 출발이 늦어서인지 아직도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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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싹 6월 말, 선비잡이콩의 싹이 막 나오기 시작할 때 모습 ⓒ 김진회


씨앗으로 심은 것은 싹이 날 때를 잘 보고 있다가 둘레의 풀을 잘 정리해주어야 한다. 사람도 신생아일 때가 가장 약하듯이 작물도 막 싹이 날 때는 근처에 먼저 난 풀이라도 있으면 쉽게 죽기 때문에 좀 클 때까지는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

막상 씨앗을 심어놓으면 어디에 심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초심자라면 줄을 잘 맞추어 심고 표시를 잘 해두는 게 좋다. 역시 가장 일이 많은 건 풀을 관리해주는 일이다. 작물 주변에서 직접 작물을 방해하는 녀석들만 정리해주는 데도 일이 많다. 며칠 안 가면 훌쩍 자라있다. 요즘 같은 시기엔 특히 잘 자란다.

소박함을 꿈꾸지만...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무사히 잘 키웠다면 시기에 맞춰 수확해야 하고 그다음엔 보관에 유의해야 한다. 이 부분을 해보기 전엔 고민해보지 못했다. 애써 농사지은 걸 다 썩힐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수확과 보관법 역시 작물별로 다 다르고, 다음 해에 심을 씨앗을 받고(한자말로 '채종'이라 한다) 그걸 보관하는 일도 작물마다 방법이 다르다. 저온저장고는 고사하고 김치냉장고나 창고도 없는 우리에겐 어려운 과제였다.

지난해에는 쪼끄만 우리 배추를 가지고 김장을 해봤는데 그걸 밭에다 김장독을 묻어 보관하는 실험까지 했다. 일단 밭이 멀고 날이 추워 자주 가질 못해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래 보관하게 됐고 나중엔 결국 골마지라고 하는 하얀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골마지는 그 부분만 걷어내고 먹어도 되니까 나름 한두 달 정도 보관하는 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건물 복도에 감자, 고구마, 토란, 양파 같은 것들도 나름대로 저장한다고 했는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이나 길어도 두 달을 넘기기는 참 어려웠다.

농기구도 관리해주어야 한다. 낫 등 날이 있는 농기구는 자주 갈아서 날을 잘 세워두는 게 중요하다. 날이 무뎌지면 일하는 데 힘과 시간이 두 배 이상 더 든다. 또 자연농 방식에서는 특히 초기에 밭에 풀을 덮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밭에서 나는 풀만으로 모자라는 경우가 많아 논둑, 밭둑이나 근처 냇가나 숲에 가서 큰 풀들을 좀 베어다 넣어주는 게 좋다. 이것들이 썩어서 거름이 되기도 하고, 덮어놓지 않으면 흙도 유실되고 풀도 많이 난다.

이웃에서 자연농을 같이 배우는 '도토리'님은 이 작업을 열심히 했는데 우린 안 했다. 봄에 작물을 심으면서 나름 덮는다고 덮었는데, 다른 풀을 못 나게 하려면 생각보다 아주 두툼하게 '풀멀칭'을 해야 한다. 그래야 풀들이 햇빛을 못 봐서 잘 못나게 되고 김매기 작업이 쉬워지는 것이다. 겨울에 게으름 피운 벌을 여름에 받고 있다.

나는 손도 느린 편이다. 어릴 때부터 키보드를 잡고 놀아서 타자는 빠른데, 일하는 손은 영 시원찮다. 작은 땅콩밭 김매는 데도 서너 시간이 넘게 걸리니 그 많은 농사일을 하자면 큰일이다. 손도 손이지만, 나의 가장 큰 적은 아직 농사를 생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급을 꿈꾸긴 하지만 밭에서 먹을 것이 많이 나오지 않아도 굶는 건 아니다. 스스로 자급하는 생활을 꾸려본 적이 없다. 이러니 냉정하게 보면 아직 취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너무 힘들어 농사가 싫어지는 것도 염려스럽지만, 때도 못 맞추고 심어놓고선 끝까지 해내지 못해 가끔 별미나 간식 먹는 정도에 그치는 것도 싫어 매번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그래도 수확이 좀 있어야 신도 더 나고 보람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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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김매기 전 장마에 훌쩍 큰 풀들 덕에 토란이 어딧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 김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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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김매기 후 풀에 파묻혀있던 토란을 구조(?)했다. ⓒ 김진회


어제는 아침 일찍 가서 토란 전체에 김을 매주었다. 밭 한쪽 끝 습한 밭둑 둘레로 토란을 심어두었는데, 더 약한 녀석들 돌보느라 대부분의 토란을 한 달 넘게 방치하다시피 했다. 상당수가 이런 곳에 어떻게 심었나 싶을 정도로 갈대를 비롯한 온갖 풀에 완전히 파묻혀서 보물찾기하듯 토란을 하나하나 새로 발견해야 했다. 햇빛도 못 받을 것 같은데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 토란 같은 경우는 우리가 제대로 못 돌봐준 것이지만 제때제때 잘 해낸다 해도 비료, 퇴비 팍팍 주고 '비닐멀칭'해서 키우는 남들보다 작으니 자연농을 시작하려는 분들은 각오하셔야 한다. 우리 몸과 자연, 지구에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일은 일대로 하고 수확물은 남들보다 작아도 정말 괜찮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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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지금은 홍천에서 자연농을 배우고 있는 한량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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