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판결 '지록위마' 비판 판사
"대다수 법관은 '사법농단 동조자'"

김동진 부장판사, 강한 내부 비판... "법관들 역시 '처벌에 상응하는 엄단' 대상"

등록 2018.07.20 15:28수정 2018.07.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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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철저 수사하라"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강정-밀양 공동기자회견’이 6월 8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앞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대책위 주민과, 송전탑저지 경남 밀양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김동진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대하는 법관들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2014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1심 재판을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라고 비판했고, 그해 12월 '법관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내가 양승태 처벌의 구호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 행위가 계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대다수 법관들은 과연 진정으로 '피해자'의 지위에만 있을까?"라며 "그 당시에 이에 저항하거나 묵시적으로라도 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동조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법관들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승태 대법원의 처벌을 외치는 대다수의 법관들이 정말로 그렇게 외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라며 "마치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중간관리자 지위처럼 어떤 측면에서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측면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가담자 내지 동조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김 부장판사는 "국민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행위'에 대하여 엄단을 요구하면서 계속적인 항의를 하는 행위에 대하여 나는 동의한다"라며 "그렇지만, 법관들이 마치 피라미드 사기의 중간관리자처럼 자신들이 순수한 피해자에만 머무는 것인 양 행세하면서 국민들의 이런 요구에 편승하여 달콤한 말로 그들의 환심을 산 뒤 힘을 얻고, 그 후 전권을 위임받은 가운데 '판사회의'를 통하여 사법행정권을 독점하려는 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수의 법관들이 '양승태 대법원 엄단'을 외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에 이르지 못하도록 '선을 긋기 위함'이라고 본다. 즉, 국민들을 향하여 '사법농단의 암묵적 동조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다수의 법관들 역시 국민들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처벌에 상응하는 엄단'을 받아야할 대상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원세훈 판결' 비판으로 징계, 이후 청와대-대법원 교감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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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김 부장판사의 이 같은 비판은 지난 2014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결과에 대다수 법관들이 침묵했던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그는 '정치에 관여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해당 판결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비판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올렸다. 이 글에서 김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 가득한 판결일까?"라며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썼다.


당시 대법원은 청와대와 '교감' 속에 김 부장판사의 징계를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메모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가 적혔다. 메모 작성 나흘 뒤 당시 김 부장판사 소속 법원이었던 수원지법은 징계를 청구했다.

최근 공개된 '사법농단' 문건에서도 김 부장판사의 징계 내용이 등장한다. 징계가 결정되기 한 달 전인 2014년 11월 법원행정처는 '김동진 부장판사 징계 결정 후 대응 방안'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에는 징계로 인한 '이상행동'을 막기 위해 '지원장, 동기 부장들의 관심과 지원 필요', '지나친 위로로 오히려 반감을 사지 않도록 주의'와 같은 방안들이 담겼다. 실제로 김 부장판사는 징계 이후 법원장과 동료 판사들의 위로 방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해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조사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내가 그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나의 맘은 점점 착잡해져 갔다. 내가 왜 아직껏 '법관'이란 직업을 유지하면서 이곳에서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다"라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 소리 치며 활개치는 세상에서 나는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동진 부장판사가 20일 페이스북에 쓴 글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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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부장판사 ⓒ 자료사진


피라미드 사기사건이 적발되어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경우에 피라미드 중간 관리자들의 지위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피라미드 사기를 설계한 집행부에게 현혹되어 그러한 피라미드 구조에 편입되고 자기 스스로 돈을 투자하였다가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피해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입은 손해를 회복할 요량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하위의 판매원들을 모집하여 그렇게 모집한 선의의 다수인들에게 새로운 피해를 가했다는 점에서 '피라미드 사기의 공범자'의 지위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중간관리자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행태가 있다. 즉, 자신이 모집하였던 다수의 하위 판매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도 피라미드를 설계한 그 집행간부에게 속았습니다. 금전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하위판매원인 여러분들을 새롭게 모집할 당시에 저는 이것이 피라미드 사기라는 것을 정말로 몰랐습니다. 여러분에게 선의의 피해를 입게 한 점에 대하여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취해야 할 방법은 이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피라미드를 설계한 그 집행간부를 구속시키고 그의 재산을 찾아내 경매를 집행해서 우리의 피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전권을 위임해 주십시오. 제가 여러분의 피해를 회복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중간관리자들이 하위판매원들을 모집하는 경우에 그것이 피라미드 사기라는 점을 모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기 스스로 그 피라미드 구조에서 손해를 입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것이 '피라미드 사기'라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위판매원들의 전권을 위임받는 경우에는 집행간부를 구속시키고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하위판매원들 모르게 자신의 피해회복부터 챙기고,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추가적인 이익까지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행위가 계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지난 6년 동안 인사상의 압박이나 표현의 자유 억압을 받아왔던 대다수의 법관들은 과연 진정으로 '피해자'의 지위에만 있을까?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 정권의 청와대 및 정치인들과 부끄러운 거래를 시도하여 왔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하여, 과연 대다수의 법관들이 '세부적'은 아니지만 '개괄적'으로나마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 당시에 이에 저항하거나 묵시적으로라도 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동조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법관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런 법관들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양승태 대법원이 그 결과에 있어서 '상고법원 제도도입'에 성공을 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경우에도 상고법원 도입으로 인하여 이미 인사불만이 없어져버린 대다수의 법관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행위를 밝히라!"라고 외치면서 분개하였을까? 아마도 대다수의 법관들은 분개할만한 마음이 안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는 현재의 상황에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현재의 상황까지 오는 과정에서 2014년도의 그 징계 말고 또다시 새로운 징계를 받은 후 사표를 낼 각오를 하고서 '불의(不義)의 위선자들'을 향하여 계속적인 저항을 해 왔다. 그런데 근래의 상황에 있어서는 내가 굳이 '양승태 처벌'의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국민들에게 이미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서 국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정의(正義)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이다. 그것은 '양승태 대법원의 처벌을 외치는 대다수의 법관들이 정말로 그렇게 외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라는 점이다. 마치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중간관리자의 지위처럼 어떤 측면에서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측면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가담자 내지 동조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점이다.

2015년 당시에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원세훈 판결을 둘러싼 모종의 행태를 보일 것이리라는 점은 이미 그 당시에 법조계에 소문이 파다했고, 그런 상황들이 얼마 후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하였다. 단지 '물증'이 없었을 뿐이지 대다수의 법관들이 이런 상황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 봄에 '물증'이 나왔을 당시에 상당수의 법관들이 마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분개하는 액션을 취했을 때,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국민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행위'에 대하여 엄단을 요구하면서 계속적인 항의를 하는 행위에 대하여 나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법관들이 마치 피라미드 사기의 중간관리자처럼 자신들이 순수한 피해자에만 머무는 것인 양 행세하면서 국민들의 이런 요구에 편승하여 달콤한 말로 그들의 환심을 산 뒤 힘을 얻고, 그 후 전권을 위임받은 가운데 '판사회의'를 통하여 사법행정권을 독점하려는 시도에 대하여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법관들 역시 국민들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처벌에 상응하는 엄단'을 받아야할 대상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난 4월경에 다수의 법관들로부터 '뒷담화에 의한 공격'을 받았던 이유는, 내가 위와 같은 맥락의 진실을 법관사회 내부에서 공공연히 말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김 부장님은 가만히만 있어도 높은 자리에 오를 것 같은데요"라고 말을 하는 등, 인간의 욕망을 활용한 회유성 발언을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수의 법관들이 '양승태 대법원 엄단'을 외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에 이르지 못하도록 '선을 긋기 위함'이라고 본다. 즉, 국민들을 향하여 '사법농단의 암묵적 동조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수의 법관들이 소통의 공간에서 행하는 이런 활동에 대하여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활동에 대하여는 공감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과거 루이16세에게 아첨을 하면서 편안하게 살았던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혁명이 발생한 직후 루이16세와 마리 앙트와네뜨를 교묘한 말로 공격하면서 대중의 환심을 산 뒤 권력을 독점했던 불의의 역사를 되새겨볼 때 (그 후 로베스피에르는 독재를 하였다),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온 대다수의 법관들에게 이런 식의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동진 #양승태 #사법농단 #원세훈 #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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