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 근무, 오후 3시 출근... 먹고살 수 있냐고요?

[서평]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IT회사 그만두고 독립서점 차린 이유

등록 2018.07.25 08:15수정 2018.07.25 08:15
0
원고료로 응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빠르게 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람들은 빠른 속도를 좋아한다. 때문에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신속,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고 교육받고, 등교시간에 늦지 않게 빨리 준비해야 한다.

빠른 일처리는 유능한 직원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다. 도심에 위치한 직장 근처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 위해서 급하게 달려간다. 급하게 사람 사이를 뛰어가서 환승하고, 회사에서는 엄청난 경쟁 속에서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속도를 강요한다. 물론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이 좋다. 택배가 빨리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계를 넘어선 속도를 계속 추구하고, 속도에 중독되면 인생이 조급해진다. 그런데 사회 분위기는 속도에 중독될 것을 요구하고 이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인생의 속도를 점점 빠르게 높이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고유한 몸과 마음의 속도를 택한 사람이 있다.

a

동네헌책방에서이반일리치를읽다 ⓒ 윤성근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성근씨가 현대 사회의 병폐와 속도의 문제를 말한 학자 이반 일리치의 글과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 만든 책이다.

저자는 원래 서울 강남에 위치한 회사에서 IT 업무를 하던 직원이었다. 바쁜 생활중에도 IT 관련 자격증을 꾸준히 따면서 자기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버 컴퓨터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매우 길었지만 부지런히 살았다. 저자는 원래 남보다 느린 리듬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회사는 더욱 더 빠르게 일하기를 요구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설비들은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최대 성능이 아닌 최대 성능 이하를 구현하도록 설정되었다. 하지만 정작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 능력의 한계 이상을 업무에 쏟아붓고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자 역시 더 급하고 빠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건강을 잃었다. 회사는 더 빠르게 살아갈 것을 요구했다.
말 그대로 '출근 전쟁'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매일 아침 전쟁을 한판 치르고 나서야 회사건물 입구에 닿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직원회의 시간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달라는 건의가 나왔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편하게 출근하고 싶다면 지하철 첫차를 타면 된다는 것이었다. 유용한 예까지 들어줬다. 일찍 출근한 다음 회사 근처에 있는 영어 학원에서 아침 6시에 시작되는 강의를 들으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73P

그러던 저자는 이반 일리치라는 학자의 책을 읽게 된다. 그가 쓴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림자 노동>을 읽고 저자는 '삶'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앞서는 '생활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하고 돈버는 것에 앞서서 그와 균형을 맞추는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퇴사한 저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헌책방을 차리기로 하고 은평구 녹번동에 헌책방을 차린다. 이 헌책방 이름이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다. 헌책방 이름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저자가 지었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는 다른 헌책방과 다른 매우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운영 시간이다. 저자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현대사회는 속도감에 중독되어 있고, 필요 이상의 속도감을 발전시킨 현대사회는 속도가 인간을 앞질러 좌절에 빠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은 이반 일리치의 절제의 사회라는 책의 내용을 저자가 인용한 것이다.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생활방식을 수송수단에 맞추는 움직임은 더욱더 전제적이 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 짧은 시간으로 쪼개어 계속 수정하고 개정할 필요가 생겨난다. 몇 달 전에, 또는 몇 년 전에 예약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러한 결정의 몇 가지는 엄청난 비용을 계속 지불해야 하는 것이어서 결국 지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긴장감을 낳는 지속적인 실패감이 있게 된다. 계획화에 복종하는 인간의 능력은 한정된 것일 수밖에 없다. -63P

저자는 그래서 자신의 생활 리듬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근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저자는 점점 더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다른 사람의 시간관념과 다른 자신만의 속도에 따라서 생활한다. 때문에,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은 일주일에 4일만, 그것도 점심이 한참 지난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문을 연다.

다만 이렇게 헌책방을 운영하면 임대료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쉽지 않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 만들어진 2000년대 중후반은 아직 독립 서점이 자리잡기 전이었다. 저자는 서적의 물량을 중점으로 하는 헌책방을 택하는 대신 문화 교류의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 헌책방을 만들기로 한다.

이렇게 장사해서는 1년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인의 조언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헌책방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심야책방'을 열어서 밤늦게까지 서점을 열고, 가수를 초청하여 음악과 함께하는 헌책방을 운영했다.

그리고 헌책방과 책과 관련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썼다. 소비도 줄였다. 회사에 다닐 때와 달리 전문가가 추천하는 최신형의 물건을 사지 않고 더 단순한 물건을 구매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저자는 지금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좋고 기분이 상쾌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을 사는 것도 어렵지만, 매일 매일의 생활을 제대로 유지해서 사는 것도 쉽지가 않다. 생활을 뒤로 하더라도 더 중요한 과업을 달성해야 할 것 같고, 남이 추천하는 물건을 유행에 맞게 사서 재빠른 삶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분위기가 존재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더 급해지고, 느린 사람은 스트레스 받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윤성근씨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의 생활을 정돈했다. 바삐 살면서 우선순위가 밀려나는 자신의 생활 리듬이 마음에 들지 않는사람, 헌책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독특한 삶에 흥미가 갈 것이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산지니, 2018


#헌책방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이반일리치 #책 #속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