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도 웃게 만드는 수학 책

[십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고전 이야기] '수數의 황홀한 역사'

등록 2018.07.24 13:39수정 2018.07.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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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너한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아빠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을 포기했단다. 요즘 말로 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수포자'라고 하는 모양인데 아빠는 수학까지 갈 필요도 없이 산수에서 이미 숫자와는 인연이 멀어졌어. 굳이 말하자면 '산포자'라고 해야겠구나.

내가 대학원까지 포함해서 학교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초등학생 시절 구구단을 암기하지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할 때였어. 초등학생 때는 구구단 6단(7단이 그렇게 외우기 힘들더구나)이, 고등학생 때는 집합의 기본 개념이 내 수학의 한계였어.


아빠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잖아. 외국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힘들기는 했어도 죽을 때까지 숫자로 하는 공부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 행복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처럼 숫자 공포증 환자들에게 수학이란 인간미나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앙상한 뼈에 지나지 않는 학문이지. <수數의 황홀한 역사>는 아빠의 생각이 달랐다고 말하는 책이란다. 얼핏 생각하면 수학은 인문학과는 반대쪽에 있는, 숫자로 계산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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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수의 황홀한 역사 표지 ⓒ 지혜의숲


그런데 그거 아니?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네가 수학 시간에 지겹도록 만나는 '좌표계'를 도입한 수학자라는 사실이 말이다. 데카르트가 도입한 '좌표계' 덕분에 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돼. 수학이라는 학문을 단지 숫자로 계산하는 것이라든가 철학이나 인문학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않겠니?

<수數의 황홀한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딱딱한 수학이 얼마나 아름답고 인간 생활의 역사와 밀접한지를 말해준단다. 수학책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유머도 넘쳐. 수에 관한 명상이자 수학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詩)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책이라는 구나. 과학책에 대해서 이보다 더 찬란한 칭찬이 있을까 싶다.

솔직히 아빠는 이 책은 온전히 이해하고 읽지 못했어. 아무리 아빠에게 좀 더 편안한 인문학적 요소를 담고는 있지만, 태생이 수학책이어서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고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을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하거든. 그런데도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충이라도 읽어낸 생애 첫 수학책이란다. 그만큼 다른 수학책과는 남다른 점이 있는 책이란다. 적어도 아빠에게는 그렇다.


인간과 어떤 동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수 감각(number sense)이라는 능력을 타고난다는구나. 수 감각(number sense)은 어떤 집합에서 일부가 없어지거나 더해지는 경우 그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야. 지허스님이 쓴 <선방일기>를 보면 수 감각이 남다른 스님 이야기가 나와.

1970년대 스님이 되기 위해서 고행하는 수행자들의 일상이 담겨있는 책인데 한겨울에 수행자들이 밭이 아니고 절 부식 창고에서 감자 서리를 해서 구워 먹는 일화가 있어. 한동안 재미나고 맛나게 감자 서리를 했는데 수 감각이 유달리 뛰어난 부식 창고를 관리하는 스님이 감자의 재고를 눈여겨보고는 수행자들이 감자 서리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귀여운(?) 응징을 하는데 "유달리 감자를 사랑하는" 수행자들을 위해서 삼시 세끼를 모두 감자로만 도배했단다.

갑작스러운 감자 폭탄에 수행자들이 손을 들고 감자 서리를 그만두었단다.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된 곳은 상원사라는 큰 절이야. 여러 가지 먹거리가 있을 것이고 저장된 감자의 양도 많았겠지. 그런데도 감자의 수가 줄어든 것을 정확히 파악한 그 스님의 수 감각은 보통사람을 훨씬 뛰어넘는 거지.

아빠는 일부 새들도 가지고 있는 수 감각을 겨우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구구단 7단도 겨우 암기했지 않겠니? 수 감각은 우리가 닭대가리라고 부르는 새들도 가지고 있지만 수 세기(counting)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란다. 아빠는 물론 수 세기 능력이 결핍되어 있음이 분명해. 수 세기는 본격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시작되는 첫 단계란다. 이토록 중요한 수 세기가 열 손가락 덕분에 발전되었다는 것이 아빠에게는 신기했어. 

인류가 계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관절이 있는 열 손가락 덕분이다. 손가락 덕분에 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수의 범위를 무한정 늘릴 수 있었다. 이런 도구가 없었다면 수를 다루는 인류의 기술은 기초적 수 감각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손가락이 없었다면 수 개념의 발달은 큰 장애를 겪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물질문명과 지적 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과학도 발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수數의 황홀한 역사 24~25쪽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하는 셈법이 일류가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기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수학 포기자 아빠로서는 좀 재미나. 손가락 셈법은 그저 유아들의 숫자놀이에 지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 공부에서도 참 중요하다는구나. 최근 미국에서는 정해진 규칙이나 답을 강요하지 않고 학생들이 각자의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수학 교육방식에서 전통적인 계산과 개념 외우기 교육방식으로 선회를 하고 있다는 구나.

NCTA(전미수학교사협의회)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문제해결 방식 교육보다는 계산하고 외우는 전통적인 수학교육방법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과가 나왔거든. 이 책은 수학이라는 것이 수학자들만의 암호가 아니고 인간의 사유재산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생활 일부라고 말해.

수학이 사람들 각자의 가축이나 토지를 비롯한 소유물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구나. 기하학만 해도 그렇다. 원래 기하학이라는 것이 나일강 유역에서 홍수로 범람한 이후에 토지를 적절하게 재분배하기 위해서 측량이 필요했고 이 토지 측량에 의한 도형의 연구가 기하학의 시초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잖아.

인류가 점차 발전하면서 산업, 토지를 비롯한 재산, 노예, 세금, 군대 조직이 복잡해졌고 좀 더 정교하고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졌지. 수학은 인류의 이런 실생활의 필요에 따라 발전했고 주판과 같은 기계가 등장했어. 주판은 오늘날의 전자계산기 조상이고 전자계산기는 좀 더 발전해서 오늘날의 컴퓨터가 되었잖아. 결국 아빠 같은 수학 포기자들도 수학의 발전 열매를 누리면서 사는 거지. 아빠는 컴퓨터가 없으면 글을 못 쓸 지경이거든.

일반인들은 수학적 능력이란 빠른 계산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학자시라고요? 그럼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 문제없으시겠군요?" 이런 말을 최소한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수학자가 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는 무의식적 빈정거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초에 높은 수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수학자가 있기는 한 걸까? - <수數의 황홀한 역사>. 44쪽

아빠가 <수數의 황홀한 역사>에서 가장 재미나게 읽은 부분이란다. 뭔가 수학자들의 비애가 담겨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아빠는 조금 웃겼어. 특히 마지막 문장은 읽다가 웃음이 터져 나오더구나. 수학과뿐만 아니라 심리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심지어 운세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컴퓨터를 전공한다고 하면 고장 난 컴퓨터는 쉽게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잖아. 수학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 즉 수학이란 그저 계산하는 공부라는 것에 대한 소심한 반박으로도 읽히는데 이 책을 읽을수록 수학은 또 다른 언어의 체계이며 숫자로 읽은 인간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는 평생 영어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영어로 된 인간의 기록물과 지식을 읽지 못하니 얼마나 손해냐고 말하곤 했거든. 그런데 말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수학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정보 접근성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 경제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중요한 한 갈래인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취미 삼아 심리학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 통계자료가 등장하거든.

심지어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에도 통계 수치는 수도 없이 나와. 수학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를 위해서 자료를 보기 좋게 만든다고 해도 숫자 자체에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건너뛰는 경우가 많아. 또 용케 그 자료들을 본다고 해도 그 자료에 감춰져 있을 수도 있는 이면을 알아채지 못하지. 너도 알겠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많은 통계자료 중에는 자신들의 논조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 있거든.

<수數의 황홀한 역사>는 '수학은 원래 재미가 없는 과목이 아니란다'라고 말해주는 좋은 수학에 대한 입문서라고 해도 무방하겠어. 

수의 황홀한 역사 - 수의 탄생에서 현대 수학 이론까지

토비아스 단치히 지음, 심재관 옮김, 정경훈 감수,
지식의숲(넥서스), 2016


#수학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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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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