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우리에게 남은 '그의 꿈'

[부고] 노동운동에서 정치운동으로, 진보의 대표적 정치인이 되기까지

등록 2018.07.23 19:17수정 2018.07.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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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장은 '새 시대의 상징'으로 불렸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10선이 노회찬 민주노동당 선대본부장에게 막혔다. 2004년 4.15 총선 다음 날인 16일 새벽, 민주노동당과 자민련의 정당투표 득표율이 엇갈렸다. 비례대표 8번 후보였던 노 의원은 김 총재를 밀어내고 299번째로 배지를 달게 됐다.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먹어서 판이 이제 새카맣게 됐다. 이젠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

총선 한 달 전, KBS 심야토론에서 이 발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노 의원이 '판갈이론'을 직접 실천한 셈이다. 새벽 2시 반, 방에서 자고 있던 그를 흔들어 깨우며 당직자가 지상파에서 '당선 확실'로 보도된다고 전하자 그의 첫 마디는 "AFKN에는 어떻게 나와?"였다고 한다. 그렇게, 그에게는 '유머'가 일상이었다.

그 덕에 국회에 입성 후 14년 동안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촌철살인에는 '유머'가 곁들여졌다. 그는 시민들 곁에 있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익힌 말솜씨다. 지친 노동자들에게 정치건 경제건 재미있고 쉽게 이야기해줘야 그들도 이해하고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서민들과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표현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총칼로 권력을 얻고 차떼기로 돈 나른 이들이 무슨 푸근한 유머를 구사할 수 있겠나?" - 2004년 6월 11일, <경향신문> 인터뷰

노동운동에서 정치운동으로, 진보의 대표적 정치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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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4일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그는 "대법원의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8년 전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운동가였다. '유신독재 반대, 박정희 타도'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노동운동 투신을 결심했다. 용접 기술을 배워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1987년 6월 항쟁 후, 노 의원은 인천·부천 지역 노동운동 단체들 연합인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출범시키는 데 힘썼다. 1989년 그는 인민노련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현장 노동운동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 그는 합법적 정치세력화를 꿈꾸며 진보정당운동에 뛰어들었다. 1992년 초반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대표를 맡았고, 이후 국민승리21을 거치며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노 의원은 민노당 창당을 두고 "내 인생 목표 절반이 이뤄졌다"라고 표현했다. 그랬던 당을, 그는 2008년에 탈당했다. 진보신당을 창당했고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냥 밖으로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나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돼갔다. 분당 사태의 본질은 정치력의 문제였다. 다양한 생각을 공존하게 하는 능력이나 노력이 서로에게 부족했다. NL과 PD가 함께하는 당의 얼개 자체가 어그러졌다." - 책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중

이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합당을 추진했으나 결국 부결됐다. 이에 심상정, 조승수와 함께 진보신당을 탈당했고 이후 2012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했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노원구병 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0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삼성 X파일 사건 관련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떡값 받은 검사들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오히려 노 의원은 유죄가 선고됐다.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됐다.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 권력의 비리에 맞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이다." -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 박탈 직후 낸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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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사진은 2016년 4월 13일 총선일, 선거사무소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 ⓒ 윤성효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성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7대·19대·20대 국회의원, '노동운동가 출신' 3선 의원이 됐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운동으로까지 나아간 첫 세대다. 그의 삶은 대한민국 진보정당운동사의 축약이다. 지금 '진보의 재구성'을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바로 그, 노회찬이다." - 2014년,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노회찬·구영식 공저) 중

'진보의 재구성'을 넘어 이제는 '진보의 도약'을 이끌어갔어야 할 그가, 23일 사망했다. 드루킹 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고 적었다.

노회찬, 우리에게 남은 '그의 꿈'

2010년 서울시장에 출마한 노 의원은 자신의 공약집을 책으로 펴내며 '여는 글'로 자신의 꿈을 적었다. 거기엔 그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말했다. "그 꿈은 나의 곁에, 우리 곁에 와 있다"라고,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나는 꿈을 꿉니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 보다도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 그 꿈은 나의 곁에, 우리 모두의 곁에 와 있습니다.

모자란 것은 서로의 지혜로 채워 넣고, 힘이 부족하면 서로 어깨를 걸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지혜와 의지를 나눠야 합니다.

- 노회찬의 약속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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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원구성 협상과 현안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노회찬, 그가 걸어온 길

1956년 8월 31일, 경남 부산시 초량동에서 출생(2남 1녀 중 장남)
1969년 부산 초량초등학교 졸업
1972년 부산 중학교 졸업
1976년 경기 고등학교 졸업
1976년 육군 입대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1982년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 취득
1983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8년 결혼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1992년 만기 출소
1992년 백기완 대통령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
1992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사무총장
1992년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1995년 진보정치연합대표
1997년 대선기구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 정치개혁추진위원장
2000년 민주노동당 초대 부대표
2002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2004년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비례대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2005년 안기부 X파일 전·현직 검사 실명 공개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2008년 진보신당 공동대표
2008년 18대 총선 낙선(노원 병)
2009년 진보신당 대표
2010년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출마
2012년 19대 총선 당선(노원 병)
2013년 안기부 X파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대법 판결, 국회의원직 상실
2013년 진보정의당 공동 대표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낙선(서울 동작을)
2016년 20대 총선 당선(경남 창원 성산구)
#노회찬 #정의당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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