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죽음과 '정치자금법'

[주장] '지킬 수 없게 설계된' 법이 가장 깨끗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등록 2018.07.23 19:17수정 2018.07.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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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투신, 현장 수습하는 경찰 23일 오전 포털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수사 중인 ‘드루킹’ 김모씨 측에게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투신 사망한 서울 중구 한 아파트에서 경찰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 유성호


#1.
한국 진보정치는 권영길-노회찬-심상정 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노회찬 의원은 원내진입 이전에 민주노동당 부대표와 사무총장 시절, 고 이재영 정책국장과 함께 당시 있었던 '전국구 방식의 선출'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그래서 실제로 제도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우리 모두는 대부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자신이 '쟁취한' 비례대표제를 통해 2004년 비례대표 순위 8번으로, 새벽 2시경에 김종필을 젖히고 원내에 진입했다.

한국 진보정치 역사에 큰 역할을 했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삼가 애도한다.

#2.
노회찬 의원의 죽음은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돈 없는 사람, 인맥이 빵빵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를 못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혹은 '불법을 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강대 서복경 교수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정치자금의 ▲ 유입(입구) ▲ 운영 ▲ 사용(출구)...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규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 같은 경우 유입-사용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고, '운영의 투명성'을 감시한다. 한국의 경우 유입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사용에 대해서도 용도가 모두 특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자금법은 '지킬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3.
그럼, 기존 정치인들은 어떻게 할까?

첫째, '돈'이 많은 경우이다. 정몽준, 안철수 같은 기업인 출신의 경우이다. 이들은 돈이 많아서 현행 정치자금법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둘째, '학벌이 좋고, 인맥이 좋은' 정치인은 '누설의 부담 없이' 돈을 받을 수 있다. 명문고등학교와 명문대를 나온 정치인은, 그 사람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자기 친구들, 선후배 역시 '돈을 잘 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판사-변호사-의사-대기업 임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년~20년의 기간 동안 친구, 선후배로 지낸 경우에는 '누설의 부담이 없기에' 돈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노회찬 의원에게 돈을 준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경기고 동창인 도아무개(61) 변호사였다.

#4.
아마도 한국 정도 되는 경제규모와 민주주의 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OECD 국가를 통틀어 한국이 '국회의원 중에 감옥에 가는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 정치인들이 다른 나라보다 더 부정부패를 밥 먹듯이 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유권자와 만나서 '공약'을 발표하는 것도 '선거운동 개시일' 이전에 하면 전부 선거법 위반이다. 그리고 유권자와 대면 접촉을 가능케 하는 가가호호 방문도 한국의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정치를 하려면, 일상적으로 '유권자'를 만나 자신의 정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밥값-찻값-술값이 들어간다. 그리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돈이 들어간다.

정치를 하다 보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은 상수(常數)에 가깝다. 그런데, 그때 받는 돈은 죄다 불법에 가깝다. 친구들에게 받는 돈도, 선후배들에게 받는 돈도 불법에 가깝다.

한국이었다면, 절대로 오바마나 샌더스 같은 정치인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와 샌더스도 한국에서는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에 걸려 검찰의 '밥'이 되어 온갖 모욕을 당하다가 감옥에 갔을지 모른다.

#5.
국회의원 300명 중에 상당수는 소위 명문대 출신들이다. 한국은 유독 명문고-명문대 출신의 국회의원 비율이 높다.

그 이유 역시도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은 진보이든, 보수이든, '학벌과 인맥이 좋은' 사람만 정치할 수 있다. 그래야 '누설의 부담 없이' 지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후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강남 우파'와 '강남 좌파'만 정치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슬만 먹고 살지 않듯이, 정치인들도 이슬만 먹고 살지 않는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활비가 필요하고, 활동비가 필요하고, 상근자 급여와 사무실 유지비용이 필요하다. 월 단위로, 최소 500만 원~3000만 원이 필요하다.

현역 정치인도, 떨어진 낙선한 정치인도, 혹은 청년-여성 예비 출마자들도 '정치자금'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지킬 수 없도록 설계된' 정치자금법이 한국 진보정치의 큰 별이자, 가장 깨끗한... 노회찬 의원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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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전 인천공항제2터미널 귀빈실에서 열린 5당대표 방미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는 노회찬 의원의 모습. ⓒ 이희훈


덧붙이는 글 필자 최병천씨는 전 민주노동당 당원이며, 현재는 민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 SNS도 중복게재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최병천씨의 동의를 얻어, 해당 글을 싣습니다.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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