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사람 사이의 약속을 어떻게 바꿔놨나

사람과의 만남, 카톡·영상통화로 대치돼 진중함 떨어져

등록 2018.07.26 16:42수정 2018.07.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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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는 연구 주제가 하나 떠올랐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사람 사이의 약속 이행률이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대한 주제다. 아무도 연구한 적이 없는 주제일 것이다.


스마트폰을 유용하게 쓰던 시절은 다 갔다고 보면 된다. 관계가 역전되어 스마트폰이 주인의 일정을 좌지우지하는 실정이다. 폰 주인의 감정과 기분까지 쥐락펴락한다고 여겨진다. 나만 그렇게 여기나?

오늘 있었던 작은 일화가 발단이었다.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달라진 생활 풍속이 한둘이 아니지만 사람 사이의 약속 이행률도 그렇고 약속이 맺어지는 유형도 사뭇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 오후 이른 시간이었다. 놓친 전화가 있었는데 화면을 보니 강원도에 사는 친구였다. 전화 온 때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전화가 연결되기 바쁘게 내가 집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장탄식을 하면서 아쉬워했다. 방금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그냥 지나쳐 갔다는 것이다.

통화가 됐으면 분명 나들목으로 빠져서 우리 집으로 올 작정이었나 보다. 그렇다. 요즘 이런 식으로 불쑥 들르겠다는 연락이 많다. 약속을 즉흥적으로 한다. 어쩌다 짬이 나면 만날 만한 사람에게 연락을 해 본다. 문자 답변이 바로 없으면 두세 사람 더 연락을 한다. 안 되면 말고!

그러다 사달이 난다. 두 군데서 동시에 오케이라고 답신이 온다. 큰일 났다. 약속 시간대를 엇갈리게 하여 보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하나는 취소해야 한다. 스마트폰 탓에 하루 일정이 출렁댄다. 갑자기 핸들을 틀고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고 집으로 연락도 해야 한다.


그래서 약속의 이행률도 문제가 생긴다. 스마트폰이 늘 손바닥에 있다 보니 가볍게 약속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취소한다. 몇 년 전에 어떤 연구보고서를 봤다. 이동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람 사이 소통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기대와 다른 결과다. 신속한 이동은 원활한 소통의 소중한 수단이 될 줄 알았지만 결과는 반대라는 것이다.

우회도로가 생기면서도 출발점과 도착점을 연결하는 단선 소통만 이뤄지고 이동 과정에 열려 있던 풍부한 소통들은 죄다 차단된다는 내용이다. 지역 상권도 죽었다고 한다. 신속한 이동을 선택한 대신에 치른 값비싼 대가들이다. 스마트폰은 더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약속의 진중함이 적어졌다. 보험용으로 두세 개의 약속을 중복해 맺기도 하고 약속 이행이 어렵게 되면 기약 없는 훗날을 담보로 쉽게 취소한다. 카톡이 있는데다 버튼을 누르면 언제든지 영상통화도 되니까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약속 이행률이 뚝 떨어졌지만 약속 체결률은 더 높이 치솟았다. 똑똑하고 충직하고 능력 많은 '스마트' 폰 덕분에 치르는 대가들이 또 있다. 침침해진 시력, 거북이 목, 운동 부족과 소화불량, 가벼운 두통, 교통사고의 빈발 등.

기술 발달의 속도가 특이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앞으로 약속의 풍속은 어떻게 더 바뀌어 갈까? 내게 과학적인 기법으로 연구를 수행할 능력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람 냄새가 옅어져 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20∼30년 단절된 인연을 한순간에 이어주기도 하나 편지나 유선전화로 어렵게 맺은 약속날짜를 기다리던 설렘과 그리움은 복원되지 않을 전망이다.

몸의 움직임은 둔해지고 머릿속은 새로운 약속들의 순위를 매기느라 복잡하다. 먼지처럼 날리는 약속들이 스마트폰 속 달력에 빼곡하게 차오른다. 이행률에 대한 장담은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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