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기가 역겨워"... 싫다는 뜻이 아니다?

[리뷰] 박일환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등록 2018.07.27 15:48수정 2018.07.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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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이후 가장 짧은 장마라더니, 밤낮 없는 무더위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올 장마엔 빗물 넘치는 논밭에서 미꾸라지 잡고, 머리 위로 토란 잎 하나 얹고 뛰던 날들을 소환할 겨를도 없었다. 손바닥 우산 한 번 얹을 참도 없이 두루뭉실 지나가 버린 장마 덕택에 김소월의 시 <왕십리>를 떠올리며 비오는 날 풍경을 그려본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왕십리>는 쉬운 일상어를 입에 착착 감기는 운율에 담아낸 솜씨가 일품이기에 자꾸 읊조리게 된다. 소월은 '온다'라는 동사 하나만으로도 한 연에서 '온다-오누나-오는-올지라도-왔으면'으로 활용하여 말맛을 살려냈다. 이처럼 비오는 날 풍경을 눈에 선하게 그리고 있는 <왕십리>는 일상어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은 쉽지 않다.

가령, 1연 마지막 행,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를 '닷새쯤' 왔으면 좋겠다고 해석하기 쉬운데, 2연과 함께 읽으면 장마철에 오고오고 또 오고, 지겹도록 또 오는 비가 며칠째 계속 오고 있어서 '닷새만' 왔으면 좋겠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 시에서 소월은 식민지 조선의 암울함 정황을 그리며 서러워했다. 그러나 소월이 처했던 구체적 삶의 현실을 모르면 그저 속절없이 비만 오는 장마철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해 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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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박일환 지음, 한티재 출판 ⓒ 한티재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저자 박일환은 시를 해석함에 있어서 빠질 수 있는 오류, 지나친 단순화를 경계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껏 너무 쉽게 소월의 시를 읽어왔다. 그러면서 김소월의 시를 다 아는 것처럼 여기고 뒤로 밀쳐두었다. 어쩌면 <진달래꽃>만을 소비해 왔다는 말이 어울린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쉬운 단어들로 이렇게 절절하게 슬픔을 표현한 소월은 우리말을 다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 틀림없다. 반면 우리는 소월이 들어 쓴 시어들을 살피는 데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서 사유하려 들지 않는다. 저자 박일환은 독자들에게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시어들을 살피며 의문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 가령, 1연 첫 행에서 '역겨워'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음을 표현한 게 아니라, 문맹상 '역(力)거워'의 뜻을 담고 있고, 풀어 쓰면 '힘겨워'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풀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역겨워'를 '힘겨워'의 뜻으로 해석하고 <진달래꽃>을 읽어보면 시를 지배하는 감정의 흐름이 한층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연 때문에 떠나야만 하는 임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소월다운 방식에 들어맞는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탐구해 볼 만한 지점을 내포하고 있다." -35쪽

또한, 3연 마지막 행,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서 '즈려밟고'를 '눌러 밟다'로 해석하기보다 '남이 밟고 가기 전에 먼저 밟고'로 풀이하는 게 더 그럴싸하다는 부분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즈려밟다'를 김소월이 만든 신어 정도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고 묻는다.

소월은 <님의 노래>에서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라는 표현을 한 바 있다. '포스근히'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우리말을 정감 있게 끄집어낼 줄 알았던 소월에게서 나온 말이다. 시어를 약간 바꿈으로 의미의 중첩과 상승, 그리고 리듬감을 살려내는 건 소월 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 면에서 '즈려밟다'라고 소월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말이라고 부정할 이유가 없다.
"나는 '즈려밟다'를 김소월이 만든 신어 정도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한다. 시인은 말을 창조하기도 하는 사람이고, 시인이 처음 써서, 퍼뜨린 말들도 있기 때문이다. 황동규 시인이 '홀로움'이나 '맨가을' 같은 시어를 처음 만들어 쓴 것처럼 말이다."-37쪽

소월은 민요풍에서부터 이별과 그리움을 담은 서정시, 농민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은 시편은 물로 돈을 소재로 한 세태 풍자시까지 폭넓은 시세계를 펼쳤다. 그러나 식민지 현실은 작품조차 발표하기 어려울 정도로 포악했다. 그 절망의 끝에서 치욕을 감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월 사후에 알려진 시, <인종>은 초고 형태로 완성된 작품은 아니지만, 일제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황군으로 참전하라는 선동을 '독'이라고 일갈한 소월은 치욕적인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실력양성을 노래한 시인이기도 했다.
좋은 슬픔은 인종(忍從)이다.
우리는 괴로워 슬픈 노래 부르자.
그러나 조선의 슬퍼도 즐거워도, 우리의 노래에 건전하고
사뭇 우리의 정신이 있고
그 정신 가운데서야 우리 생존의 의의가 있어
슬프니 우리 노래는 "나아가 싸워라"가
우리에게 있을 법한 노랜가,
가장 슬프다. 부질없는 선동은 우리에게 독이다
우리는 어버이 없는 아기어든
한갓 술에 취한 쓰라림의
되지 못할 억지요, 제가 저를 상하는 몸부림이다. -인종(245쪽)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는 우리가 소월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지만 정작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너무 쉽게 소월의 시를 읽어왔고 소비해 왔던 모습을 지양하고, '실증'을 찾기를 권한다. 소월이 처했던 환경, 삶을 살피라고 말한다.
"시를 텍스트로만 읽어내는 게 아니라 텍스트 안에 드리워진 시인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건 그것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인의 삶과 결부시켜 가며 시를 읽을 때 시인의 마음자리로 들어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으며, 그럴 때 시와 시인을 보는 눈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93쪽

저자 박일환의 주장처럼 실증을 찾음으로 작품을 읽는 독자는 얼마든지 시의 의미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시인의 품을 떠난 시를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김소월 시에 나타난 가락과 정서를 잇는 또 다른 작업을 위해 우리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말한 해체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기존 텍스트 안에 묻혀 있던, 저자조차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발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텍스트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은 소월 이후를 살아가는 시인과 독자의 몫이다.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 새롭게 읽는 소월의 시

박일환 지음,
한티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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