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란 이름의 욕심에 희생당한 라오스 사람들

[주장] 유상원조 자금이 들어간 라오스 댐 사고, 한국 정부도 책임있게 대응해야

등록 2018.07.26 21:39수정 2018.07.2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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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건설이 라오스에서 시공 중인 대형 수력발전댐의 보조댐이 붕괴해 주민 다수가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4일 라오스통신(KPL)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께(현지시간)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 주에 있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의 보조댐이 무너져 인근 6개 마을로 50억 ㎥의 물이 아래 6개 마을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피해 지역 라오스 주민들이 보트로 긴급히 대피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라오스통신 제공


지난 23일 밤, 라오스 남동부 아타푸 주에 있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 보조댐 사고로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인근 여섯 개 마을을 덮쳤다. 사고 발생 사흘째가 지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정확한 피해 규모와 사고 원인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라오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5일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는 26명, 실종자는 131명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6000여 명에 달하는 이재민 중 절반가량인 3000여 명도 아직 고립된 상태로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폭우'인지 '부실 공사'인지를 두고 공방이 난무하다. 시공사인 SK건설 측은 댐이 '붕괴'된 것이 아니라 폭우 때문에 '범람'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댐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서부발전 측은 사고 있기 사흘 전인 지난 20일에 이미 보조댐 중앙부가 침하됐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지난 댐 건설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예견된 인재'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댐 건설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문제들

이번에 사고가 난 세피안-세남노이 댐은 1990년대 후반, 동아건설이 처음 건설을 추진했었다. 당시 댐 인근 마을주민 2000여 명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집과 땅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강제이주를 했다. 생계수단인 어업도 포기한 채 열악한 환경의 이주 지역에서 살아야 했던 주민들은 IMF 이후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그제야 원래 거주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다 2013년 한국 정부의 원조 지원과 한국 기업인 SK건설, 한국서부발전의 투자로 다시 댐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댐 건설을 둘러싸고 과거와 같은 문제들이 계속 반복됐다. 마을 주민들은 또 다시 생계수단과 삶의 터전을 위협받았고, 환경적으로도 인근 숲과 강의 생물다양성 감소 우려가 제기됐다.


또, 이러한 위험성을 포함한 사업 정보가 당시 주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고,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로 인해 현지와 국내 시민사회에서는 사업의 위험성과 대책마련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져왔다(관련 기사: 메콩 파헤치는 댐개발, 한류가 부끄럽다).

물론 건설 과정의 문제점이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과 연관됐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것은 분명하고,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만큼 사업 시행과정을 다시금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상원조로 지원한 사업, 한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 사업이 한국 정부와 기업이 합동으로 추진한 최초의 해외 민관협력 사업으로, 한국 정부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원조'와 '수출'을 결합한 새로운 복합금융 모델이라며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총 사업비는 10억 달러(1조1000억 원) 규모로, SK건설, 한국서부발전, 태국 전력회사와 라오스 정부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SPC) '세피안-세남노이 전력회사(PNPC)'가 공동으로 3억 달러를 투자했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7억 달러를 대출받았다. 이중 한국 정부는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유상원조 자금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으로 PNPC의 라오스 정부 지분을 지원했고, 별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도 진행했다.

한국 정부가 직접적인 사업 주체는 아니지만, 우리 세금으로 원조가 지원됐다는 건 수백 명이 실종되고 수천 명이 터전을 잃은 이 사고에 우리 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고 이후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발전대안 피다 등 국내 환경 및 국제개발협력 단체들도 일제히 성명을 발표해 정부의 책임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물론 한국 정부는 사고 이후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오늘(26일) 대한민국해외긴급구호대(KDRT) 선발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단지 '한국 기업이 참여한 사업'이어서,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사고 수습만이 아니라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태도로 협력해야 한다. 한편, 유상원조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은 현재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 논리의 희생양은 마을 주민들

만약 이번 사고 없이 내년 초 댐이 정상적으로 완공돼 가동됐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댐에서 생산한 전력 90%는 라오스가 아닌 태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다. 그랬다면 '아시아의 배터리'가 되겠다며 우후죽순 댐 건립을 늘려온 라오스 정부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줬을 것이고, 30여 년간 운영권을 가진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에도 막대한 이익이 있었을 것이다.

댐 건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어떤가. 결국 댐 건설로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개발'에 대한 양국 정부와 기업들의 욕심이 이들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끝내 수많은 목숨까지 앗아갔다.

개발 신화 속에서 성장한 한국은 이제 '원조'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늘 반복되는 문제들을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돈만 지원하는 것이고, 책임은 오롯이 현지 정부의 몫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이렇게 큰 사고가 없었을 뿐, 비슷한 일은 라오스만이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일어났다. 이래도 이번 사고가 단지 우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발'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희생돼야 이 흐름을 멈출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유정씨는 공적개발원조(ODA)를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전직 활동가입니다.
#라오스 #댐 #개발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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