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에 피카소 그림이 걸려 있는 이유는?

비행청소년, 엄벌보다 특수한 치료 필요한 아이들

등록 2018.08.06 08:35수정 2018.08.06 08:35
0
원고료로 응원
a

대전소년원 생활관에 조성한 작은 미술관 생활관의 차갑고 삭막한 공간에 아이들이 직접 예쁜 시트지를 붙인 후, 피카소와 클림트의 따뜻한 작품들을 전시하여 작은 미술관을 조성하였다. ⓒ 최원훈


대전소년원 생활관에는 '작은 미술관'이 있다. 클림트, 밀레, 피카소, 모네, 앤디 워홀... 10대 청소년들의 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엄중한 처벌만이 해결책이라는 여론이 빗발치고, 매년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서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소년원에 웬 미술관일까?        

여론은 아이들이 '나이가 어려서 처벌을 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 형법과 소년법을 악용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해타산적이지 않다. 청소년들은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주변인이므로, 좌절과 불만이 잠재하여 극단적인 사고와 과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a

대전소년원 .대전소년원 소운동장에서 바라본 파란 하늘, 작은 운동장 크기만큼의 파란 하늘이다. ⓒ 최원훈


소년부 법정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거나 소년원 처분을 받고 6개월에서 2년 동안 교육을 받은 후, 가정과 학교로 돌아간 청소년들의 재범률은 약 40%이다. 재범률을 더 낮추기 위해 시간과 인력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은 '소년법의 폐지나 개정을 통한 엄벌'에만 있다.

그러나 청소년 범죄의 실질적 해결책은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보호처분 집행의 활성화와 실질화, 내실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후 소년법을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내놓은 답변이기도 하다. 당시 청와대는 "소년법에 있는 10가지 보호처분의 종류를 활성화시키고 다양화해서 소년들이 사회에 제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시설 내 보호처분을 집행하는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에 재원 중인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의 시작은 비행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비행청소년 또한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물론 아이들의 상처는 마음의 상처다. 비행청소년의 약 30%가 유년시절의 가정폭력과 학대, 부모의 이혼과 사망, 가정의 해체로 인한 트라우마로 ADHD,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 등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은 미술치료, 연극치료, 영화심리치료 등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특수치료 전문가인 정신보건 임상심리사가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또한, 대전소년원은 정신질환·지적장애 보호소년들을 위한 의료처우를 담당하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기능을 수행하기에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a

대전소년원 생활관에 있는 작은 미술관 비행청소년들의 심성을 순화하고 감수성을 깨우기 위해 생활관 복도의 빈 공간에 밀레, 클림트, 모네, 피카소, 앤디 워홀 등의 그림들을 전시했다. ⓒ 최원훈


감수성이 예민하고 가치관이나 인격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소년들은 충동적이고,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기 쉽다. 즉, 소년들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도 쉽지만, 성인 범죄자보다 쉽게 교육을 통하여 비행이나 범죄로부터 단절할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것이다.


과거, 뉴스에 나왔던 청소년 폭행 사건의 한 가해 여학생이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를 받았고,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대중들은 알지 못한다. 필자가 교육현장에서 만난 여학생은 언론에 보도된 잔혹한 폭행 사건의 가해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여리며 해맑은 미소를 가진 소녀였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무관용과 엄벌을 주장하는 여론의 논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싹수가 노란 아이들은 그 싹을 잘라야 한다, 교화는 필요없다" "가해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없는가?" "사회와의 격리만이 해결책이다"...

비행청소년들을 교정·교화하여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의 책무이므로 교화의 필요성을 논할 문제는 아니다. 아이들을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속기관인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 본연의 업무이며, 노력의 결과, 청소년들은 교화될 수 있다는 것을 교육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소년보호기관의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인한 과밀수용 등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소년원의 어둡고 삭막한 공간을 작은 미술관으로 만든 것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소년법의 이념과 목적은 대전소년원 생활관 복도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Mother And Child', 'Music', 파블로 피카소의 'Child With Dove', 장 프랑수아 밀레의 Le Printemps(봄)...
#소년법 #소년원 #비행청소년 #청소년 범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