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녹화 당일 노회찬 형과의 마지막 통화가...

[노회찬을 기리며] 빈소에서 오열했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그 사연

등록 2018.07.30 18:53수정 2018.07.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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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 사이로 영정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존경하고 사랑하는 회찬 형을 아직도 보낼 수 없네요.

황망한 일입니다. 갑자기 세상이 정지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제 미국에서 막 돌아오신 것 같았는데... 제가 북한 나진항을 가기 위해 출발하는 날, <썰전> 녹화방송을 했습니다. 회찬 형과 통화했습니다. "북한에 잘 다녀와라", "의미 있는 행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활발하지 않고 어딘가 그늘이 져 보였습니다.

엊그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방미 때 노회찬 형 상태가 어떠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방미 일정 내내 특파원들이 미국인사들 면담내용을 물어보지 않고 드루킹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 대단히 신경이 날카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다 방미 마지막 날 밤 포도주 한 잔을 하면서 3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는데 회찬 형이 이야기를 주도했다고 합니다. 인천지역 노동운동 이야기를 하면서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활동 등 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회고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당시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술 한 잔 같이 나누면서 형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하는 회환이 듭니다.

남산 지하실에서 나와 만난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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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6일, 상영관 축소 논란을 빚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서울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당시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이 안내하고 있다. ⓒ 유성호


1986년 인천지역 노동자연맹에 소속되어 인천 주안6공단 동방상사라는 벽시계 공장에 위장 취업해 일하다가 5.3 인천항쟁을 앞두고 국정원에 검거됐습니다. 남산 지하실에 끌려갔습니다. 한 달 동안 남산지하실에서 고초를 겪고 나서 저는 사상적으로 무장해제된 채 낙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회찬 형을 만났습니다.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만들면서 한국사회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에 대한 사회 구성체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대환, 노회찬, 이경재, 이원주 등 많은 분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찬 형은 이념과 이론을 넘어서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형이었습니다. 국정원에서 몸과 마음이 해체된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선창산업 노동자로 위장취업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친구 이정우 변호사가 마련해준 돈으로 인천 송림동에 만화 가게를 차리면서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자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 남영신을 불러 같이 동거하게 되었습니다. 회찬 형, 형수(김지선씨)와 부부간에 친하게 지냈습니다.

회찬 형이 운수노동운동을 맡아달라고 제안해서 박형규 목사님의 아들 박종열 목사, 이원주 선배와 함께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를 만들고 그 안에 운수노동상담실을 설치해 운수노보를 발행하면서 택시, 버스, 화물 노동자운동을 조직하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호활동보고를 하고 제 자취방에 들러 소주 한 잔할 때도 많았습니다.

항상 열린 자세로 저의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존중해주었던 형은 제가 1991년 노동운동에 회의를 느껴 소련, 동구권을 돌아보고 와서 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도 잘 읽어주고 일부 공감을 표시해주었습니다. 사법 시험공부를 위해 인천 지역 노동현장을 떠날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정치활동을 하면서 회찬 형을 볼 때마다 죽산 조봉암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6.25가 막 끝난 상황에서 북진 통일론이 한창일 때 평화통일을 주장하고 진보정치를 주장했던 죽산 조봉암의 꿋꿋한 진보정치에 대한 신념을 회찬 형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불판을 갈아보자"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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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3일, 당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도중 '잠들지 않는 남도' 합창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초선 의원 시절 노회찬 형과 TV토론에서 여러 번 논쟁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유명한 "불판을 갈아보자"는 말도 저와 TV토론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당시 그 말이 너무 설득력 있게 다가와 적절하게 반박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미FTA 추진과정에서 저와 견해를 달리해 논쟁하기도 하였지만 변함 없이 존경스러운 형이었습니다. 분노와 비판을 하되 사람에 대한 악의나 적대감이 들어있지 않고 이 사회의 진보와 가난한 서민대중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깔려 있는 분이었습니다.

회찬 형의 촌철살인 어록들은 우리 서민들을 시원하게 만들었고 기성정치에 물들어 가려는 우리들에게 죽비로 내려치는 시원한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넘어 스스로에게 그토록 모질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가 속한 정당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 형의 고민이 안타깝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바보 같은 결단이라고 하소연도 합니다. 형을 생각하면 다시 설움이 복받치기도 합니다.

국회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저의 손을 잡고 "정말 좋은 사람이 저렇게 먼저 갔다"며 흐느끼실 때의 아픔이 아직도 귓전을 때립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가 이렇게 절절하게 다시 들릴 줄 몰랐습니다.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난 노회찬,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회찬 형을 그냥 이대로 보낼 수 없네요. 제 가슴에 담고 회찬 형이 추구했던 가치를 구현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시대의 새벽길을 개척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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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회찬 #송영길 #인민노련 #썰전 #조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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