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규제하겠다는 정부, '무지방 곰젤리'는 어쩔건가

[서평] 키마 카길, <과식의 심리학>... 과식은 개인 아닌 제도의 문제

등록 2018.07.31 16:52수정 2018.07.3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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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비만 대책으로 먹방을 규제하겠다는 말이 돌고 있다. 영화에서 라면 먹는 장면만 나와도 군침이 도는 나로서는, 먹방과 식욕 간의 관계가 분명해 보이기는 한다. 다만, 정부가 개개인의 식습관에 참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경제에 악영향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

<운동화 신은 뇌>를 읽으면 운동이 하고 싶고, <그레인 브레인>을 읽으면 과자봉지를 멀리하게 되듯이, 읽는 동안에라도 폭식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책 <과식의 심리학>을 골랐다. 그런데 너무 잘 읽히는 훌륭한 책이라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식욕 자제가 단 이틀에 그치게 생겼다. 걱정이다.

보상심리와 마케팅 천재들

<과식의 심리학> 표지 ⓒ 루아크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보상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그렇게 군것질을 하는데 어떻게 살이 안 찌냐고 묻는다. 나는 운동하니까 괜찮다고 대답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난 뒤에는 화이트 초콜릿이든 단팥빵이든 더 떳떳하게 대하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보상심리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운동 후 폭식이라면, 적어도 그다지 기껍지 않은 일을 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바람직한 행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보상심리가 작용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다른 패스트푸드보다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서브웨이 같은 식당에서 먹을 때 소비자들은 주식에 포함된 칼로리가 적다고 생각하므로 칼로리 높은 음료와 디저트 같은 부식을 마음 놓고 주문한다.

저자는 후광 효과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내용은 같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라는 '건강한' 샌드위치를 선택한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고칼로리 음료 좀 마시면 어떠냐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보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점심을 안 먹는 것도 아니고, 더 악랄한 정크푸드를 먹을 수도 있는데 '건강한' 샌드위치를 먹는다는 이유로 고칼로리 음료라니. 자, 그럼 갈 데까지 한 번 가보자.
가장 어이없는 사례는 무지방 곰젤리다.

차범근도 좋아한다는 곰젤리는 나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곰젤리가 설탕 덩어리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명백한 사실이다. 이걸 바람직한 행동으로 바꾸는 마법은 다름 아닌 '건강한' 간식이라는 후광이다. 건강한 곰젤리라니! 모순의 미학인가?

픽사베이에서 '음식'을 검색했는데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 곰젤리라니, 우연이겠지. ⓒ Pixabay


사실 무지방 곰젤리보다 더 어이없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글루텐 프리 생수다. 물은 순수한 H2O다. 미네랄이 좀 섞일 순 있어도, 단백질 혼합물인 글루텐이 검출된다면 아주 심각한 오염이다. 이쯤 되면 '무설탕 휘발유'나 'GMO 불검출 타이어'라는 광고도 고려해봄 직하다.

식품 산업이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구는 '자연산(natural)',' 저지방', '무설탕' 등 무궁무진하다. 이중 가장 잘못된 것이 '자연산'이라고 저자는 절규한다. 미국법에 의하면 자연산이란 표현을 쓰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따라서 자연산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산이라는 타이틀을, 무농약, 유기농, '유전자조작 식품 없음(GMO-free)' 등 아주 다양하게, 그러나 한결같이 최상급의 건강 타이틀로 인식한다. 유감스럽게도 '자연'이라는 타이틀은 우리나라 식품업계에서도 아주 인기 있는 타이틀이다. 원재료에 GMO 콩이 섞여 들어간 것도 모르고 '자연산' 두부를 만들어 파는 업체도 있었다.

과식은 개인의 문제일까?

이 그림, 왠지 남 얘기 같지 않다 ⓒ Pixabay


미국 정부는 식품에 첨가당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나를 표기하려 했다가 실패했다. 식품업계의 거센 반발이 원인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댔지만, 그들의 첫 번째 주장은 식품에 당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어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보면 이것은 언어 트릭이다. 즉, 질문과 다른 답을 내놓고 우기는 전략이다. 질문은 '첨가당'에 관한 것이었는데, 대답은 '당'에 관한 것이다.

식품에 얼마만큼의 당이 포함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표기하는 것이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첨가당'은 식품업계에서 원재료에 추가하여 넣은 당을 말한다. 컵케이크를 만들면서 설탕을 얼마나 넣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고발 다큐나 사회문제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돈이 얽힌 문제에서 인간은 한없이 비열해진다. 와인, 커피, 초콜릿(폴리페놀)이 몸에 좋다는 기사가 매일 쏟아지는 배경에는 거대 자본에 무릎 꿇는 연구자들의 양심이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건강한' 대안 식단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에 의하면 셀리악병이나 글루텐불내증이 없는 일반인에게 글루텐 프리 식단이 건강에 더 좋다는 실험 결과는 없다고 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그레인 브레인>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펄머터 등 반론을 펴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저자는 '건강'이라는 브랜드가 단지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고 말한다.
환자들이 다이어트 식품이나 '순한', '저지방' 같은 문구가 박힌 상품을 사려고 하면 나는 대개 말리는 편이다. 이런 문구는 거짓말이다. 맛도 끔찍할 뿐 아니라 식욕을 채워주지도 못하고 소비만 늘린다.

위 인용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라. 그리고 '건강한' 대안 식품을 먹었던 경험을 떠올려 보라. 정확한 진단 아닌가? 나는 스위스에 살 때 거의 석탄과 같은 검은 색의 '초건강' 잡곡빵을 산 적이 있는데, 그 맛은 간단히 말해 악몽이었다. 단 두 쪽에 5천 원이나 하고 벽돌과 같이 무겁던 그 빵도 소화되고 나면 다른 빵과 마찬가지로 단당류로 분해될 뿐이다. 소화가 되기나 한다면 말이다!

저자의 결론은 단순명쾌하다. 과식을 끊임없이 부채질하는 우리 시대의 소비체계는 체계 자체의 문제이다. 과식하는 개인을 탓하기에 그 시스템은 너무나 정교하고 치밀하다. 자본주의가 신성의 색채를 발하는 우리 시대에는, 많은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는 한다. 저렴하면서도 현란한 맛을 자랑하는 식품이 상점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 개인이 저항할 수 있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비만과 가난의 관계를 다룬 칼럼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는 가난한 사람들을 날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덜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단지 가난한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가난하게 '그리고' 뚱뚱하게 만드는 제도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과식의 문제에 대해서뿐 아니라, 저자는 소비 전반에 대해 이러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음식뿐 아니라 모든 것을 덜 소비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경제학에도 외부불경제라는 개념이 있다. 과식, 비만, 질병이 국민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은 계량하기가 어려울 뿐, 분명히 존재한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고려하면, 과식의 문제를 단지 개인의 선택에 맡겨두는 것은 정책입안자에게 직무유기일지도 모른다.

과식의 심리학 - 현대인은 왜 과식과 씨름하는가

키마 카길 지음, 강경이 옮김,
루아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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