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왜 집단탈북사건 조사 안 했나

[광화문 인사이드]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 고려해 타협?

등록 2018.08.02 10:19수정 2018.08.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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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통일부,외교부,국방부,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7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 제2위원회는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집단탈북사건'(아래 집단탈북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접 조사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낸 진정을 조사해왔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를 전격 결정한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 하나는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독립적 진상조사' 요구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지난 7월 10일 방한해 "이 사건의 철저하고 독립적인 진상규명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국방부 직할인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가 북한식당 여종원들의 탈북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정보사는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이 중국에서 빠져 나오는 초기 과정에 개입했고, 이들이 제3국(말레이시아)으로 이동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는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가 직권조사를 결정함에 따라 조사대상은 기존의 국정원,통일부에서 국방부와 정보사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원래 집단탈북사건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에서 조사했어야 할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이를 적폐청산 목록에서 제외해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나서게 됐다.

'국정원 적폐청산 목록'에 집단탈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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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지난 2016년 4월 7일 입국했다고 밝혔다. ⓒ 통일부 제공


지난 2016년 4월 7일 중국 저장성 닝보 소재 '조선식당 류경'에서 일하던 1명의 남성 지배인과 12명의 여성 종업원들이 상해 푸동공항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4.13 총선(20대 총선)을 닷새 앞둔 때였다.

하지만 불분명한 탈북 동기, 이틀 만의 입국, 입국 다음날 탈북 사실 전격 발표, 입국 사진 언론 제공 등은 '기획입북 의혹'을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가 유리한 선거국면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기획탈북'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기획탈북의 실행자로 국정원이 지목됐다. 북한쪽도 "국정원이 식당 지배인을 매수한 뒤 종업원들을 유인해 납치극을 벌였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집단탈북사건 발표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이 총 167석을 얻어 과반의석 이상을 차지했고, 이후 1000만 명의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부 출범이 이어졌다. 촛불의 정신에 따라 집단탈북사건도 적폐청산 대상에 올라야 했다. 국정원 개혁과도 연결되는 문제여서 중요했다. 하지만 집단탈북사건은 국정원 적폐청산 목록에서 제외됐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6월 9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출범시켰다. 위원회 산하에는 '적폐청산TF'과 '조직쇄신TF'를 설치했다. 특히 적폐청산TF는 국정원이 이전 정부에서 벌인 의혹 사건들을 조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국정원 내부 적폐를 도려내는 핵심조직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 적폐청산TF는 같은 해 7월 재조사 대상으로 ▲ NLL(북방한계선)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 국정원 댓글공작 ▲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문건 작성 ▲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뒷조사 ▲ 극우단체 지원 관여 ▲ 세월호 참사 관련 ▲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필명 ▲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구입과 민간인 사찰 ▲ 추명호 6국장 비선보고 ▲ 헌법재판소 사찰 등 13개 사건을 확정했다.

"개별 정권 차원 아니다... 사실이어도 묻고 갈 사안"

하지만 집단탈북사건은 이 '13개 목록'에는 없었다. 왜 '북풍공작'으로 충분히 의심할 만한 집단탈북사건이 국정원 적폐청산 대상에서 제외됐을까? 국정원 적폐청산TF가 13개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확정했을 무렵에 만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의 얘기는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먼저 이 관계자는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을 북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는 "(서훈) 국정원장에게 확인해 보니 '되돌이킬 수 없는 사안'이라고 하더라"라며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이)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됐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다는 거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을 북송하면) 한국이 국가책임을 버리는 일이고, 그런 예도 없고, 억류와는 성격이 다르다"라며 "돌려주는 거는 안되고 역망명을 해야 하는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처음에는 그렇다 해도 이미 상당기간이 지났고, 설령 가고 싶다 해도 이들이 다시 공개석상 또는 제한된 공간에 나와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자기들 의사를 밝히는 것 자체도 싫어한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기획탈북(공작) 의혹과 관련, 이 관계자는 "나도 의심하는데 (국정원쪽에서는) 그렇다고는 얘기하지 않는다"라며 "내 짐작으로는 몇몇은 한국에 오기를 원했는데 전체가 다 온 거는 공작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북한이 이걸 카드로 쓰다 얼버무릴 것으로 본다"라며 "북이 핵 이외에 쓸 카드가 별로 없고, 한국을 비판할 수단이 별로 없어서 지금 북이 억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응용으로 사용하다 묻혀져 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집단탈북사건이 국정원 적폐청산 목록에서 제외된 이유와 관련, 이 관계자는 "(적폐청산 대상에) 들어가기 어렵다"라며 "확실한 공작으로 나오면 국정원 묻닫으라고 해야 할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별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설령 (공작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건 묻고 가야 할 사안이다"라고 토로했다.

"남북관계를 고려해 조사 안했다"

또한 국정원 적폐청산TF 활동을 잘 알고 있는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집단탈북사건은 남북관계 등 조금 정무적인 것 때문에 대상에서 뺐다"라며 "(입국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 중에) 남고 싶다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괜히 남북관계가 안좋아질 수 있어서 조사를 안했다"라고 말했다.

"최소한 국정원에서 기획탈북인지 자진탈북인지는 조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그걸 조사하게 되면, 한 번 뚜껑을 열게 되면 (적폐청산 대상으로 조사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남북관계 등을 헤아려 집단탈북사건을 국정원 적폐청산 목록에서 뺐다는 얘기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현실'과 타협했다는 것인데, 국민들이 이에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적폐청산과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가 높은데 말이다.

[관련기사]
12명의 탈북 종업원, 국정원이 '특별관리'해야 하는 이유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탈북 사건 #국정원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국정원 적폐청산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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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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