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근무제 한 달, 웃지 못할 이런 부작용도

저녁 시간 활용할 수 있는 동료들 늘었지만 한편으로 자기계발에 내몰리는 건 안타까워

등록 2018.08.04 16:03수정 2018.08.0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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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퇴근 이후 무엇을 하는지 동료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팀에 기혼자가 많다 보니 주로 '아이들을 챙기는 시간이 늘어났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미취학 자녀를 둔 동료의 경우에는 부부가 좀 더 즐겁게 육아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반면,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경우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늘었다'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렸습니다. 이런 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겠죠.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한 달, 동료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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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첫 화요일인 3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거리에서 직장인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을 하는 동료들이 늘어났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 외국어, 독서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따라 소득이 줄어서 제2의 직업 또는 직장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기사도 접했는데요. 주 52시간 근로가 가져온 삶의 여유가 생존 불안을 야기하면서 자기계발에 내몰리거나 강박감을 가지게 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삶의 여유를 갖고 과로사회에서 벗어나자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다양한 소득구조를 마련해서 일찌감치 직장에서 은퇴하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시간 부자로 살자는 움직임도 많은 것 같아요. 자기 계발서나 투자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젊은 나이에 취업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및 사업으로 성공을 이뤄서 40대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부동산 투자를 통해 월세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자산이 늘어난 사람들을 만나면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며 조금씩 월급을 모으는 것이 하찮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천당 위에 분당'이라고 부동산을 미화하는 단어도 많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건물주가 가장 많다는 얘기도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40대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싶은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야 시간과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고들 말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자영업자의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높고 10년 이상 직장에서 장기근속하는 이의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만큼 근로환경이 불안정하다는 얘긴데요.

그래서 혹시 이른 퇴직과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가 혹시 근로의 불안정성으로 자기계발에 내몰리는 상황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봤습니다. 엄기호 교수 역시 <단속 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좀 우습지 않은가? 그렇게 모두가 자기를 따라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왜 정작 그들 모두는 해오던 일은 제쳐놓고 책을 내고 강의하면서 돈을 벌까?"

일부 자기 계발서나 자기 경영 강의를 보면 회사를 다니는 것, 월급쟁이의 삶은 개인의 미래를 비자발적인 일과 자유롭지 못한 시간에 매여있는 것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얼른 회사를 그만둬야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그런 일들 대부분은 누군가는 일정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야하는 일들입니다. 노동의 가치는 동일하고 신성한데 직장의 이름,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른 월급을 받는다며 금액의 크기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 자유,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솔직히 저도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매일 아침 내 기분이나 컨디션에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해야 하고 쳐내도 쳐내도 끝없이 밀려오는 일들이 언제나 즐겁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겁니다. 직장생활 19년 중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회사 가는 일이 즐겁고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웠던 기간은 3년 남짓한 기간이거든요.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마지못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안타깝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기계발 강의를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어보면 그들 역시 직장인으로서 매우 치열한 삶을 살아온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네들을 보면서 직장 근로자로서 자기 과거를 부정하기보다 치열했던 기간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긍정해주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향후에 없어질 수많은 직업의 자리에서 오랜 기간 헌신해 온 사람들, 특히 부모님 세대의 노고를 먼저 인정해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 하고요. 그래야 다른 사람의 성공이 마냥 부럽고 시기할 대상이 아니라 뒤따르고 배워야 할 가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40대에 은퇴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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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규칙적인 삶,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삶의 장점을 자녀에게도 기꺼이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직장인이자 워킹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Pixabay


저는 회사를 다니는 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적절한 대가를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조직과 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월급만으로도 가장 작은 사회 단위인 가정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규칙적인 삶,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삶의 장점을 자녀에게도 기꺼이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직장인이자 워킹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40대에 은퇴하고 싶지 않아요. 좀 더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육아와 일을 둘 다 하느라 속된 말로 똥줄 타게 바쁘다는 투덜거림을 10년째 하고 있는 중이지만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서야 하고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삶보다 알아서 일도 주고 사람도 부딪치게 해주고 그러면서 월급도 주는 직장에 적어도 20~30년은 더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생활을 은퇴 없이 할 수 있다면 따로 노후준비를 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중심은 내어줘야 하겠지만 회사의 주변부에서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과 역할을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 사실은 이미 회사에서 후배들이 일의 중심이고 저는 약간 중심에서 물러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몇 년 전에는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깊은 자괴감에 빠져있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내가 회사의 중심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꼭 중심에 서 있어야만 회사에 기여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주변부에서도 얼마든지 회사를 위해 일하고 회사가 잘 되기를 응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회사가 즐겁고 신나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회사 안과 밖의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준비하는 자세는 필요하겠죠. 만화 <미생>이 말하는 것처럼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고 그래서 대비는 필요한 거니까요.
#70점엄마 #워킹맘 #자기계발 #5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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