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성산 코아상가 501호, 노회찬이 남긴 친필 메모장

[권영길이 노회찬을 보내며] 약자의 대변자이자 충실한 지역구 의원이었던 그

등록 2018.08.02 12:00수정 2018.08.0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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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성산의 노회찬 의원 사무실 모습. ⓒ 윤성효


1. 노회찬 의원 창원 사무실에서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로71 코아상가 501호. 노회찬 의원 지역 사무실이자 2004년부터 2012년까지 8년 동안 '권영길 의원 사무실'이었던 곳. 7월의 마지막 날 한낮의 폭염에 헉헉거리며 그곳에 갔습니다.

조태일 비서관이 '주인 잃은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노회찬의 손 때가 묻은 짐들이었습니다.

"선관위가 8월 8일까지 의원실을 정리하고 후원회비 등의 청산 보고를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무얼 그렇게, 급하게 의원실 정리를 하느냐"는 나의 볼멘소리에 대한 조 보좌관의 설명이었습니다.

행정 규정으로 볼때 선관위의 요청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회찬이 묻힌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가지런히 정리돼 있던 자료들, 책들, 노 의원이 많은 단체들로부터 받은 감사패들이 '짐 보따리'로 전락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다시는 노회찬이 앉을 수 없는 책상 앞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노회찬과 함께 걸은 30년 길이 영상처럼 머리속에 떠오르는데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메모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방IC 진입로 문제"
"사파, 동성 교통 분산책"
"대방천 일방통행 문제"
"남 창원 유통센터 문제" - - - 등등.


여러 사항들이 메모지에 가득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집단 민원"이라고 정의당 노창섭 창원 시의원이 설명했습니다.

노 의원 장례 기간에 어느 언론사 국회 출입기자가 "노회찬 의원은 국회에서 누구보다 가장 바쁜 날을 보내면서도 일주일에 몇 차례나 지역구인 창원을 오르내리는 걸 봤다"면서 "부지런함에서도 으뜸 의원이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 모습을 읽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이 땅의 노동자, 차별받는 사람들, 소수자, 약자들의 대변자 '전국구 의원'이면서 충실한 '지역구 의원'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낸 의원, 노회찬 없는 '노회찬 의원 사무소'가 장례 이후 마음을 추스리려 안간힘 쓰는 내 가슴을 다시 아프게 흔들었습니다.

2.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노회찬은 갔습니다.

30년 진보정치의 길을 걸으면서 권력과 자본이 퍼붓는 숱한 탄압을 이겨내며 거침없이 걸어온 노회찬. 변화하는 시대 상황의 무게에 눌리고 희망의 끝이 보이지 않아 절망에 빠진 동지들에게 희망의 끈을 다시 쥐어주던 노회찬.

그 노회찬이 스스로 삶의 끈을 끊어 버렸습니다.

노회찬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어미 잃은 둥지의 새끼 새'처럼 허둥대고 있을때 국민들이 노회찬을 불러내줬습니다. 노회찬의 육신은 갔지만 노회찬의 영혼을 살려냈습니다.

노회찬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노회찬과 함께 평등 평화 세상을 만들 길을 걸어온 저 권영길,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3. 창원 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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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김영훈 노동이당당한나라운동본부장, 여영국 경남도당 위원장 등이 지난 7월 31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노회찬 의원 장례'와 관련해 감사 인사를 했다. ⓒ 윤성효


삼성 X파일에 담긴 떡값 검사 명단을 폭로해 의원직을 빼앗긴 노회찬이 2016년 4.13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창원에 내려온 것은 2016년 2월 초였습니다. 창원 몇몇 동지들의 강권을 고민 끝에 받아들였던 겁니다.

이후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3월 초에야 '국회의원 (예비) 후보 노회찬'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는 창원 시민들, 성산구 유권자들께서 '진보정치 1번지 창원의 자존심'으로 노회찬을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창원과 연고도 없는 사람"이라며 지역 연고를 강조하는 상대 후보들의 공격을 창원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됐습니다.

그러나 창원 시민들, 성산구 유권자들은 압도적 지지로 노회찬을 다시 국회 의정단상에 세웠습니다. 노회찬이 걸어온 길을 보고 노회찬이 걸어갈 길을 믿었던 겁니다.

그 노회찬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창원시민들께선 "당신은 이 나라 제일의 국회의원이었다" "창원의 자랑 노회찬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창원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저 권영길은 저 세상에 있는 노회찬과 함께 창원 시민 여러분, 성산구 주민 여러분께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4. 노회찬을 불러낸 국민들이 바라는 진보정당의 길

진보정당, 진보정치인들은 이제 노회찬의 무엇이 그토록 뜨겁게 추모 물결을 일으켰는지를 차분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노회찬이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치열한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합니다. 성찰과 반성은 거침없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정당이, 진보정치인들이 노회찬의 영혼, 노회찬 정신마저 죽이는 겁니다. 노회찬을 영원히 죽이지 맙시다.

5.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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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에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심상정 의원, 천영세 전 의원, 권영길 전 의원, 강기갑 전 의원, 유시민 작가 등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권우성


노회찬이 목숨을 던지면서 지키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길은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진정한 민주화는 정치, 사회, 경제 민주화입니다. 정치민주화는 절차적 민주화에서 나아가 일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서는 정치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소득평준화가 이뤄지는 민주화입니다. 진보정당 정치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자는 정치입니다.

서민들 살림살이 나아지게 할 정치의 선결과제는 정치개혁이고 정치개혁의 핵심은 국회개혁입니다. 국회개혁은 현재의 선거제도로는 불가능합니다. 정당명부제 투표, 연동형 비례대표 선출 투표가 실시돼야만 국회개혁,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노회찬을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실시에도 힘을 모아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2018년 8월 1일
사단법인 권영길과나아지는살림살이 이사장
권영길 드림.

#노회찬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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