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정부를 '잘' 비판하는 방법(2)

통계는 어떻게 오용되는가

등록 2018.08.03 16:19수정 2018.08.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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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 현상, 제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상대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그럴듯해야 한다. '그럴듯함'은 주장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요건들을 갖출 때 생긴다. 그럴듯한 근거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객관성'이다. 이를 위해 권위 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주장의 객관적인 근거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자료는 주로 '통계'로 구성된다. 그만큼 숫자가 가진 힘이 세다. 감정적이고,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여, 왠지 중립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조사 기법과 분석 도구가 발달한 요즘은 통계 자료가 더욱 많은 기관에서 발표되고,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 쉽게 활용되고 있다.

통계학 초반에 기초통계를 다룬다. 데이터를 요약하는 '평균(mean)'에 대해 중점적으로 배울 수 있다. 단순히 평균값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균의 함정과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뜰 수 있다. 예를 들면, 올해 전체 공무원의 월평균 세전소득은 522만원이다. 이를 두고 공무원 임금이 너무 높으니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균에만 집중하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9급 공무원 1호봉 기본급은 144만 8000원이다. 어떤가. 평균만 보고 비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평균이 가진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최솟값과 최댓값을 빼고 평균을 구하거나, 평균 대신에 중앙값(median)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통계학을 배우면서 숫자가 가진 오묘함(?)에 놀라 기본의 중요성을 절감한 경험을 떠올린 건, 통계 수치를 두고 정부와 언론 등이 설왕설래하는 기사를 보면서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주장에 통계를 끼워 맞춰 근거로 삼은 '어이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둔화의 요인?

먼저, 최저임금과 관련한 논란이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인상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자영업자 몰락, 대량 실업자 발생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둔화에 영향을 줬다고 하면서 인상 기조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었다. 주장은 있었으나 객관적인 근거는 없었다. 그럴 것 같다는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

올 상반기 취업자 수 증가폭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만2000명에 그쳐 지난해 상반기(36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러나 취업률 하락에 최저임금 인상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상반기 노동시장을 평가하면서 '최저임금은 한계 상황에 처한 일부 부문에서 부분적으로 고용에 대해 부정적이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올해 상반기 고용둔화의 주요 요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이지만 일자리 안정자금, 사회보험료 지원 등 직간접적인 인건비 지원으로 인해 실제 인상률은 7%대 정도'라고 했다. 고용 둔화의 원인으로 15~64세 생산가능 인구의 빠른 감소, 지난해 같은 기간에 교육서비스업과 도소매업 등 일부 서비스업 중심으로 취업자 증가폭이 컸던 기저효과 등을 지목했다.

이와 같이 취업률, 인상률과 같은 수치가 어떤 주장의 근거로 잘못 사용되는 것은 정책현상에서 원인이 되는 변수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서 '정책효과성'을 포함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둔화의 직접적 원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작용해서 그런 건지, 시간을 둔 깊이 있는 분석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성장률 비교 기준의 중요성

다음으로, 경제성장률에 대한 오류다. 얼마 전 한국과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이 발표되자 많은 언론에서 한미 성장률을 비교했다. 한 보수언론 사설에서는 '한국은 2분기 0.7% 성장하는데 그쳤는데, 한국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은 무려 4.3% 성장했다'며 '충격적이고 어이가 없다'고 했다.

이를 보고 전문가들은 실수가 아닌 '의도된 오류'로 본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연율'로 환산된 수치고, 한국은 '단순 성장률'인데 이를 같은 기준인 것처럼 단순 비교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는 직전 분기와 비교해 해당 분기에 기록한 성장률과 같은 속도로 1년 동안 성장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성장률을 의미한다. 반면 한국은 직전 분기와 단순 비교한 '전기 대비 성장률'과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한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을 사용한다.

올해 2분기만 놓고 보면 미국은 전기 대비 연율로 4.1% 성장했지만, 단순 전기 대비로 따져보면 1.0% 성장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2.8% 성장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같은 전기 대비 연율로 따져보면 2.8% 성장했고, 전기 대비는 0.7% 성장, 전년 동기 대비로는 2.9% 성장했다.

보수언론의 오류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 비교 기준을 서로 달리 사용하면서 발생했다. 이에 의견을 낸 전문가들은 언론에서 경제 사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를 모를 리 없다고 하면서, 분명히 왜곡할 의도를 가졌다고 말한다. 한 라디오 뉴스 진행자는 '무식하거나 사악한 것'이란 표현까지 할 정도다. 이렇게 비교가 되는 시점, 조건에 따라 같은 통계 수치가 잘못된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다.

숫자로 표현된 통계는 합리적 주장을 위한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숫자가 가진 특성상 쉽게 그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또는 정책 성과에 대한 지지를 할 경우에도 같은 현상은 나타날 수 있다. 평소 쉽게 생각한 평균도 우리의 논리를 강화하거나, 상대의 주장을 뒤집는 힘을 가지고 있다.

관련 기사 : 정부를 '잘' 비판하는 방법 (1)

#통계 #평균의 함정 #최저임금 #경제성장률 #국가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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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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